친교실

제목 바람.바람.바람 2001년 01월 01일
작성자 손성현
요 며칠 바람의 위력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저녁까지는 진눈깨비와 함께,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황사 흙먼지를 몰고 다니던 바람을 맞으며
저는 예전과는 다른 경험들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부터 <단비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작년 말에 저희 교회에 오셔서 "농촌목회 이야기"를 들려주신
정훈영 목사님이 섬기는 교회지요.
굽은 허리로 조심조심 교회를 찾아오신 할머니들,
그 사이로 간간히 눈에 띄는 3,40대 젊은 분 서넛,
그 분들의 자녀인 듯한 아이들 몇이 예배 인원 전부였습니다.
그 전부터 세차게 몰아치던 바람은
예배가 시작되자 더욱 집요하게, 더욱 거세게
비닐 하우스로 지어진 예배당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 중에는 그 바람의 공세가 어찌나 거칠든지
이러다 예배당이 날아가면..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나긋나긋한 정목사님의 목소리보다 바람의 목소리가 훨씬 강렬하게 저의 뇌리에 남았습니다.
그 바람이 비닐 하우스 위에 쌓여있던 눈들을 쓸어내리는 소리며,
구름이 태양을 덮었다 내놓았다 할 때마다
조명이 완전히 달라지던 그 작은 예배당...
단비교회 공동체에서 드린 첫 예배의 설레임 뒤로 맺혀진 풍경입니다.
저는, 바람 앞에서 존립이 위태로운 이 작은 예배당을 위해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어제는 장날이었습니다. 병천 장은 1일, 6일 장이거든요.
조금 늦게 가야 파장 분위기에 조금이라도 싸게 물건을 살 수 있다는
계산을 하면서 퇴근 뒤 어슬렁 어슬렁 병천 장에 나섰습니다.
6시가 채 안된 시간. 평소같으면 하나라도 더 팔아볼 요량으로
걸죽한 소리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부르는 아저씨들과,
"떨이요, 떨이!" 외치는 인심 좋게 생긴 시골총각들,
북적거리는 시장 한복판에서도 여유롭게 담배한 대 태우고 계시는
할머니들이 명실상부 장사진을 이루어야 할 텐데...
어젠 분위기가 썰렁하더군요.
아침부터 난폭하게 불던 바람이 벌써
천막 서너 개를 날려버렸다는
얘기를 슬쩍 전해들었습니다.
애써 기른 농산물을 팔려고 시장에 나왔다가 바람에 기세에
풀이꺽인 "땅의 사람들"이 느릿느릿 보따리를 싸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부랴부랴 찬거리며 과일이며 사가지고 돌아오면서도
웬지 힘빠져 있는 듯한 시장의 풍경이 끝끝내 안타까웠습니다.
저는,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시는 그분께
이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람의 힘은 정말 대단합니다.
그런데 그 불어닥치는 바람 앞에서 너무나 위태로운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 우리의 기도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1년 3월 7일
천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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