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졸업 2001년 01월 01일
작성자 박범희
저희 학교는 어제 졸업식을 하였습니다. 밋밋하였습니다. 다만 2학년 때 저의 반이었던 아이들이 드링크 1박스 사들고 와서 고맙다고 할 때 잠시 콧등이 시큰거린 정도였을 뿐입니다. 아이들이 참 고마웠습니다. 맨날 자기 일에 바빠서 아이들한테 별로 시간을 주지도 못한 걸 생각하면 더욱 그랬습니다.
'졸업'하면 제가 여러 단계를 거치며 겪었던 졸업식이나, 선생을 하면서 아이들을 졸업시켰던 기억 등이 생각나기 마련인데, 얼토당토 않게도 저에게는 제가 중학교 졸업식 때-그 때가 아마 1977년이었을겁니다- 아버지의 모습이 가장 강하게 떠오릅니다.
그때 저의 집은 무척이나 가난했습니다. 납부금을 겨우 내거나 아니면 그것도 밀려서 낼 정도였으니까요. 중학교 졸업식 때 성적이 좋은 학생이 대외적인 상을 받는 것은 지금이나 그 때나 마찬가지였어요. 그런데 일반적으로 대외적인 상을 받는 학생은 담임 선생님에게 일정한 턱(?)을 냈었나봐요. 그래서인지 저의 담임 선생님은 저를 불러놓고 한참을 주저하시다가 그런 비슷한 말을 한 것 같아요. 저는 솔직하게 우리집은 가난하다, 정 그렇다면 상을 못받아도 할 수 없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선생님께서는 그러면 할수없다고 하셨어요. 어린 마음에 믿었던 선생님이 야속했어요.(하지만 지금은 그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른 반을 맡고 있는 동료들은 이런 저런 대접을 받았다는 말을 들었을텐데, 자기가 맡고 있는 반에서는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요. 지금은 사회 일반적인 상황이 그렇지 않아서인지 만약 제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 선생님처럼 하지는 않을거예요. 즉 그 선생님을 이해는 하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않을거라는 말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아들이 이렇게 훌륭한(?) 상을 타는데 아무것도 해 줄 능력이 안되는 아버지가 미웠어요.
졸업식 때 - 저는 부산에서 학교를 졸업했어요. 그런데도 제 기억에 무척 추웠어요.- 아버지와 어머니가 학교에 오셨어요. 아버지는 그 때 낡은 검정 외투를 입고 계셨어요. 두 분은 참 기쁜 표정이었어요. 없는 집안에 오로지 믿고 있는 아들이 공부를 잘 해서 다른 아이들이 타지도 못하는 상을 전체 앞에서 받았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담임 선생님을 모시고 사진을 찍자고 하셨어요.
그런데 저는 그 때 우리 아버지가 너무나 왜소하고 처량해 보였어요. 친구들한테 이분이 우리 아버지라고 말하지도 못했어요. 하물며 담임 선생님-상때문에 있었던 담임 선생님과의 이야기는 부모님께 하지 않았어요. 어차피 해결할 수도 없는 문제로 고민만 하실 것 같아서요-과 사진을 찍다니요? 어림도 없는 말씀이었지요.
여늬 졸업식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을 먹었지요. 그 때 짜장면처럼 맛없는 짜장면은 없었을 거예요.
그후로 철이 들면서 아버지를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어요. 자식에게 아무것도 해 줄수 없었던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를요. 제가 생각하기에 우리 아버지는 착한 분이었습니다. 남때문에 보증섰다가 모든 재산 잃어버리시고도 도대체 남에게 해가되는 일이라면 결코 당신한테 득이된다 생각해도 하지 않으셨으니까요. 미화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저의 기억 속에는 그랬습니다.
10여 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제가 선생이 되어 해마다 교정을 떠나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검정 외투를 입으신 초라한 아버지의 모습과 아버지의 아픔과 저의 철없음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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