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오자(誤字) 2001년 01월 01일
작성자 권혁순
오늘 우연히 오자(誤字)를 우리 교회 홈페이지에 발견하였답니다. 거의 매일 들락거렸는데, 오늘에서야 겨우 눈에 띄였다는 게 신기하였습니다. 그냥 무심히 넘어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만, 저는 거의 직업병처럼 오자를 그냥 두고 보지 못하는 이상한 심보가 있답니다.

1.
그러니까 벌써 10 여년 전의 일이군요. 제가 석사 과정에 막 들어 갔을 때, 연구실에서 세미나 발표를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선배님과 교수님을 모신 자리에서요.당시만 해도 워드 프로세서가 막 보급되던 시절이었지요. 5.25인치 플로피 5장에 담긴 아래 한글 첫 버젼이 나올 때였죠. 글씨를 잘 못쓰는 저에게 워드 프로세서는 참 반가운 녀석이었습니다. 또 컴퓨터의 최신 프로그램을 다룰줄 안다는 자만심을 키워주던 녀석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그 세미나 자리에서 저는 망신을 당했답니다. 그 워드 프로세서 때문에요. 저는 과학교육을 전공하고 있는데, '槪念(concept)'이라는 단어를 많이 쓴답니다. 한 시간 세미나 발표에 수십 차례 나오죠. 그런데 제가 열심히 워드 프로세서로 만들어서 배부한 자료집에 그 단어 대신 다른 단어가 나왔답니다. 저는 분명 이 글자를 쳐 넣었는데, 그만 마지막 받침자로 왼손의 새끼 손가락으로 눌러야 하는 자판 대신 약지 손가락으로 자판을 눌렀던 것입니다. 참으로 엄숙한 학문 발표의 자리에서 이런 상스런 단어가 수 십번 나왔던 것입니다.

펜으로 글을 썼을 때는 오자가 거의 나오지 않지만, 컴퓨터를 사용하여 글을 쓰게 되면서 오자가 자주 나오게 되지요. 글을 쓰면서 분명히 신경을 쓰는데도 불구하고 완전한 글을 위해서는 몇 번씩 다시 읽어 보아야 합니다. 문명의 利器, 사람을 편하게 해 준다는 것이 가끔은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다른 일로 사람을 시달리게 만드는 것을 보면서 참 우습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인류가 문명을 발달시켰다고 하지만, 그러면서 오히려 인간의 생활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분주해지는 것을 봅니다. 과연 문명이 발달하는 것인지....

2.
사람의 눈은 믿을 것이 못됩니다. 우리가 사물을 본다고 하지만 정말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과학에서 실험과 관찰이 중요하고, 객관적 관찰을 통하여 과학을 발전시킨다는 생각이 아직도 주류를 차지하고 있지만, 현대의 과학 철학자들은 이에 대해 이견(異見)을 가지고 있답니다. 우리의 지각은 주관적이라는 것이죠. 주변의 여건에 따라 지각하는 것이 달라지기도 하고요.

(예: 아래의 두 그림 중 어느 것이 더 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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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생각하는 것에 따라서 동일한 것도 다르게 보이죠. 특히 글을 교정하면서 많이 느끼는 것입니다만, 자신이 쓴 글에서 오자를 찾는 것이 참 어렵죠. 이미 자신의 머리 속에 그 글의 내용과 흐름이 들어 있기 때문에 사소한 오자는 눈의 망막에 분명히 자리를 잡고 있지만 뇌에서는 망막의 상과 다르게 해석하여 그대로 넘어 갑니다.

'Seeing is believing'
과연 그럴까요? 도마는 예수님을 보고 나서야 부활을 믿었다고 하는데,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보지도 않고도 믿고 있지 않습니까? 오히려 믿음이 있기에 새로운 삶을 보게 되고 그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의 생각이 보는 것을 바꾸게 됩니다.

3.
참, 이제 처음으로 돌아가서 오자에 대하여 말씀드려야겠군요. 홈페이지 관리하시느라 수고하시는 안 집사님께 오자 하나를 고쳐 달라고 말씀드리기 보다는 그 페이지의 글 전체를 바꿔 달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이런 의미는 아닙니다. 단지 저는 세 번째 천년대가 시작된 지 오래 되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더불어 청파 문집 6호도 올려 주시면 더욱 고맙고요.

수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http://www.chungpa.or.kr/talk.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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