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회색인 | 2001년 01월 0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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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지선미 | |
눈이 무섭게 내립니다. 불가항력적인 자연의 몸짓은 우리 인간들의 연약함을 적나라하게 노출시키고 마는군요. 자연을 경원시하며 그 앞에서 위세 당당했던 인간들이 온 몸을 잔뜩 구부리며 긴장한 채 한발 한발을 조심스럽게 내딛는 모습, 영동고속도로에서의 뒤엉킨 차량들이 인간의 연약함을 넘어 선 경지를 드러내 주는 모습…… 하얗게 내리는 눈과 지저분하게 녹는 눈의 이중성 앞에서, 그리고 그 지저분함을 다시 하얗게 싸 안는 눈발을 바라보노라면 심기가 불편해집니다. 어찌 이것이 눈 탓이겠는지요. 요즈음의 저는 무중력상태에 빠진 듯한 느낌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주위의 상황이 제 의식가운데 묻혀 있던 ‘회색인’이라는 단어를 캐내어 심장에 녹여 붓고 있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어느 시의 마지막 구절이 생각나는군요. ‘운명처럼 그대를 사랑한다. 어디에도 희망은 없으므로’ 저는 이 구절을‘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저의 운명입니다. 그것은 그 어디에도 희망은 없기 때문입니다.’이렇게 바꿔서 기도해 봅니다. 그러나 짧은 기도가 채 끝나기도 전에 저는 기도의 거짓됨 앞에서 몸을 떨고 맙니다. 제가 회색인인 이유는 몸과 영혼 사이에 두터운 벽이 가로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어디에도 희망은 없다고 말하면서도 욕망의 끈을 놓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기자는 ‘가난한 이는 복이 있다’고 했겠지요. 그러나 저는 믿습니다. 내 사랑하는 이는 내 입술의 거짓됨을 넘어 서는 제 영혼의 절규를 받아 주실 것을 말입니다. - 샬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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