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어이 견디리? 2000년 01월 01일
작성자 제자

요즘은 공연히 마음만 분주해서 정신을 집중하지 못하고 삽니다. 뭔가 할 일이 있어 자리에 앉으면 해야 할 다른 일이 떠오르곤 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고 말지요. 촛불을 켜놓고 자리에 앉아 가만히 불꽃을 바라봅니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와도 일렁이지만 수직의 중심을 금방 되찾곤 합니다. 참 고요합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을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기회로 삼으라 했는데, 그게 참 어렵네요. 스산한 거리를 이리저리 뒹구는 낙엽을 보면 참 안타까워요. 돌아가야 할 땅을 빼앗긴 채, 사람들의 발에 밟히다가 결국은 애물단지가 되어 쓰레기 청소차에 실려가 온갖 문명의 찌꺼기들 틈에서 썩어갈 것을 생각하니 말이에요. 왠지 그 낙엽의 운명이 남의 일 같지 않네요.

시름에 겨워 앉아 있자니 빈센트 반 고호의 <씨 뿌리는 사람>이 떠오르네요. 그리고 그 그림에 붙인 서정주님의 시의 한 구절이 생각나구요.

"분홍 구름도 몇줄
동녘 하늘엔 들러리 섰나니,
이 봄날의 대지(大地)에
씨 뿌리지않고 어이 견디리?"

'씨 뿌리지않고 어이 견디리?' 이 말이 제 나른한 몸과 마음을 잡아 흔드네요. 그리고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갔는데......" 하는 우리 님의 음성이 들려오네요. 벗님들 정겨운 목소릴 듣고 싶어요.
목록편집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