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11월의 이야기 2000년 01월 01일
작성자 지선미


저에게는 3명의 여동생이 있습니다. 맨 아래로 남동생이 있었지만 어린 나이에 제일 먼저 저희 곁을 떠났지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주 토요일에는 꼭 전 가족들이 부모님댁으로 모이고는 합니다. 연이은 주말의 저녁 한끼니를 손쉽게 해결하면서 (>) 사랑하는 부모님과 동생들을 만나는 일석이조의 속셈(?)을 모른 체, 어떻게 매주 부모님을 찾아 뵙느냐면서 효성이 지극하다고 주위에서 칭찬들을 하실 때는 약간 뜨끔하기는 하지만요……

그러던 11월 첫 주말의 일이었습니다. 막내가 상기된 표정으로 부엌으로 들어오더군요. 6살 된 자기 아들 지호(목사님의 아들이 아님)가 그러더래요.

“엄마! 왜 남자들은 거실에 있고, 여자들은 부엌에만 있어요?”

평소에도 가장 신세대답게 여자들은 설거지하다가 얘기 한번 제대로 못하고 헤어진다면서 문제를 제기하던 막내 동생이 자기 아들한테서 그런 질문을 들었으니 제대로 충격을 받은 셈이 되었지요.

곧바로 회의가 소집되었습니다. 안건은 ‘아이들 교육에 본이 되지 않는다’였고, 그 사실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문제가 있다’라는 점에는 다들 동의했지만 나름대로 그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에는 고충들이 있음을 털어 놓았지요. 부모님께서는 일주일에 한번 사위들에게 저녁 한끼 주면서 어떻게 설거지까지 하라고 하느냐시며 ‘나 죽고 나거든 그렇게 하라’고 하셨지만 명분이 워낙 분명하다 보니 결국 주말마다 한집씩 돌아가면서 설거지를 맡기로 합의(?)를 했답니다.

먼저 문제를 제기한 막내네부터 설거지를 하기로 한 주말이 되었지요. 식사를 마친 후 설거지를 해야하는데 먼저 식사를 끝낸 지호 아빠가 컴퓨터에 푹 빠진 나머지 2층에서 도무지 내려 올 생각을 안하는 겁니다. 막내 동생은 남편이 원래 내성적인 성격이라 부끄러워서 그러는 거니까 가만히 두라고 하면서 자기 처가 혼자 고생하는 것이 안타까우면 내려올거라고 우리를 부엌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게 했습니다. 병원에서 퇴근한지 얼마 안되어 피곤한 채로 혼자 설거지를 감행하는 동생을 지켜보랴, 감감 무소식인 2층을 올려보랴 이래저래 부모님과 나머지 식구들은 안절부절 가시방석 그 자체였지요. 설거지가 끝나갈 무렵, 마침내 지호 아빠는 내려와서 부엌으로 들어 갔고 그제서야 나머지 식구들은 가슴을 쓸어 내렸답니다.

셋째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아직 미혼인 관계로 건너 뛰고, 둘째네 차례가 되었습니다. 동생의 남편은 워낙 붙임성이 좋고, 남의 부탁을 거절 못하는 성품을 지녔지요. 아마 유일하게 자기네 집 식구들의 설거지 차례를 기다린 인물일 겁니다. 앞치마까지 식구들 수에 맞추어서 세트로 준비해 놓았는데, 그 깊은 속도 모른 체, 제 동생이 그 중의 하나를 남에게 선물해 버려서 엄청 속상해 하기도 했었지요. 미처 식사가 끝나기도 전부터 앞치마를 두르고 종횡무진 부엌과 식탁을 누벼대서 정신이 혼미하기는 했었지만 참 편안하고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보관하기에는 그렇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남은 음식들을 딱딱 긁어서 입 안으로 들여 보내는 모습을 수차례 연출함으로써 부엌에 들어간 지 채 한시간도 안되어 아저씨가 아줌마로, 남편이 여편네로 바뀔 수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흔히들 남성적, 여성적으로 나누는 범주는 생래적이라기 보다는 사회적이거나 구조적인 인습의 영향임을 동생의 남편을 통해 느꼈다고 한다면 너무 극단적인 비약이 되나요?

새삼스레 교사마당에 올리려다 잊고 만 기억 한줄기가 떠오릅니다. 어느날 목욕탕에 들어가서 이를 닦으려고 치약을 들다가 깜짝 놀란 일이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때 저희 부모님께서 하신 대로 저는 항상 치약을 칫솔대로 밀어서 최후의 한방울까지 짜서 쓰고는 했지요. 그런데 아직 여유가 있어서 그럭저럭 쓰고 있던 치약이 칫솔대로 말끔하게 밀어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제 딸아이의 작품이었음이 밝혀졌을 때 저는 왠지 두려운 마음이 왈칵 솟아 올랐습니다. 평소에 입술이 닳도록 이래라 저래라 했던 일들은 전혀(?) 먹혀 드는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 같은데, 단 한번도 그 아이에게 요구해 본 적이 없던 치약을 칫솔대로 밀어서 사용하는 일이 딸애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는 사실에서 교육은 ‘보여줌’이며, ‘본이 되는 것’임을 피부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나의 잘못된 행동은 나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후손들이 그대로 보고 배운다는(흉을 보면서도) 사실이 마음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이제 돌아오는 주말이면 저와 제 남편 그리고 지민이가 설거지를 하게 됩니다. 남은 가족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그리고 남편이 설거지를 같이 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도록 재미있게 설거지를 하려고 합니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속담을 실감시켜준 11월에게 감사하면서 말이지요.
목록편집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