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동작다리 2000년 01월 01일
작성자 윤석철
11-20-2000.

"11월에 내리는 비" 속에 차를 몰아 동작다리를 건널 때 입니다.
동작동에서 용산 쪽으로 한 3~400 미터 쯤 지나려니까 웬 할머니 한분이
진행 방향의 왼쪽 난간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오후 2시에 시내에서 만나기로 한 어느 그룹회사 높은 중역과의 약속시간에 15~20 분은 늦을 것 같은 초조감에 약간 빠른 속도로 차를 몰던 나는 "어, 저러면 위험한 데!" 하면서 그냥 지나쳤습니다.

할머니는 왼 손으로 난간의 굵은 쇠 파이프를 잡아가면서 천천히 걷고 있었고,
언뜻 본 제 기억으로 하얀 비닐 우비를 입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흘깃 본 할머니의 머리는 79살 되신 우리 어머니 머리카락 만큼 하얗던 것 같습니다.

할머니를 지나쳐 10 미터도 못가서 부터 나는 얼굴 붉어지는 부끄러움과 걱정에 사로잡히기 시작하였습니다.

앞을 바라다 보니 그전에는 무심히 건너던 동작다리의 저끝은 가믈 가믈 보이지도 않을 만큼 멀고, 자동차는 모두 미친듯이 쌩쌩거리며 달리는 데, 아! 나는 왜 저 할머니옆에 차를 세우고 태워드릴 생각을 못하고 지나쳐 왔는가? 왜 할머니가 빗속에 동작다리를 걸어서 건너는지 알아보지 않았는가? 아 이 위험한 길을.... 아 이 위험한 길을.....

제 차 뒤로도 이미 많은 차들이 빠른 속도로 바짝 붙어 달려 오고 있어서 어떻게 해 볼 도리도 없이 저는 다리를 건너야 했습니다.

용산가족 공원 앞에서 U 턴을 하여 다시 다리를 건너가 이수교 쪽에서 다시 U 턴하여 돌아 오는 길에 할머니를 태워야지..... 아니 약속에 늦을 텐데, 누군가가 어떻게 하겠지..... 그래도 위험한 데, 위험도 위험이지만 왜 할머니가 혼자 동작 다리를 걸어 건너신담.... 혹시?

그 짧은 시간에 참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휴대폰으로 경찰에 신고할 생각을 했습니다.

급한 마음에 "동작다리에 할머니가 걸어가고 이다. 동작동에서 용산으로 진행방향이다..." 하면서 두서 없이 신고를 하는 데 전화 받은 112 신고쎈터의 여자분이 상냥한 음성으로 "이미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중"이라면서 걱정하지 말고 빗속에 운전 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무사하실 것이고 경찰이 알아서 잘 처리하리라 생각하니 금방 마음이 편안하여졌습니다.
할머니로 인해 약속시간에 더 많이 늦어지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에 우선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그러나 정작 저는 지금, 몇시간이나 지난 지금 많이 부끄러워하고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제 모습을, 억지로 외면하면서 보지않으려 애쓰던 제 모습을 오늘 그 동작다리 위에서 다시 보고 말았습니다.

제가 바쁘게 걸어가고 달려가는 그길,
어프러지고 거꾸러지면서도 가려하는 그길,
하나님이 그길 구비구비마다, 고개 마루턱마다, 징검다리 건너는 개울마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베풀어 놓으시고서, 거기 그렇게 하나님이 저를 마주하시면서
"아들아, 여기서 좀 쉬어 가렴.
아들아, 네 눈을 돌려 저것들을 좀 보련.
인생이 아름답지 아니하냐?
저것들의 손을 잡아보고, 잠시 쉬며 그 얘기를 좀 듣지 않겠느냐?

아들아,
내 아들아,
눈을 좀 들어 보렴.
하늘을 좀 보려므나.
네 걸음 세어가면서 땅만 보고 걷는 일이 무에 그리 중하단 말이냐?"

수도 없이 저를 불러 세우셨던 것을......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는 듣되 알아 듣지를 못하고
하나님의 모습을 뵙기는 뵙되 알아 보지 못하는
눈 멀고 귀 먹은
불쌍한 영혼......

고개 숙이고 땅만 보고 걸으니 저는 지금 제가 동쪽으로 가는지 서쪽으로 가는지 알지 못합니다.
걷기는 무던히도 많이 걸었으나
얼마를 더 걸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정신은 후패하여 회칠한 무덤같고
몸은 탐욕에 절었습니다.

푸마의 무녀의 소원처럼
"죽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또한
이 정신적인 방자함과 오만함과 사치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것들이 하나님의 그 손을 잡지 못하도록 이미 제 두손을 꽉 잡고 있습니다.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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