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쓸쓸한 저녁 넋두리 2000년 01월 01일
작성자 권혁순
주일 저녁입니다.

주일 예배 마치고 곧장 집으로 돌아 가지 못하고 연구실로 왔습니다. 무슨 할일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딱히 할 일이 없기 때문이랍니다. 아니 할 일이 없는 것도 아니고 손에 잡히지 않기 때문이라는 표현이 정확하겠지요?

금요일 저녁 집사람과 아이를 공항에서 배웅하고 돌아왔습니다. 이제 딱 이틀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세상이 텅 빈듯 합니다. 함께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몰랐는데, 역시 떨어져 보아야 소중함을 느낀다는 말이 맞는가 봅니다.

처자식과 모든 가산(家産)을 먼저 건네 보내고 쓸쓸히 염려의 밤을 보냈던 약복 나루의 야곱을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에 하나님께서는 찾아 오시었던가요? 하나님을 만날까 공연히 두렵기도 했답니다. 그러나 역시 신앙이 부족한 저에게까지 오시지는 않더군요.

바로의 궁궐에서 40년간 잘 살다가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 연단의 세월을 보내고서야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름을 받았던 모세를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제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 참 부족함 없이 잘 살아 왔더군요. 이제 필요한 것이 연단의 시간이라면 참 걱정입니다.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러나 감당할만한 시련을 주시리라 믿고 주님께서 쓰시기 위해 단련시키시는 것이리라 믿고 싶습니다.

오늘 예배 시간에 목사님 설교 말씀을 들으면서 네 본토와 아비 집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 하나만 의지하고 나아간 아브라함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미 나의 본토인 한국 땅을 떠나 이역 만리 이 곳까지 왔는데...그런데, 저에게는 부족한 것이 참 많더군요. 본토를 떠나기는 했지만 과연 어느 정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았는가 하는 질문에 차마 답을 하기 민망하더군요. 그저 정처 없이 떠도는 나느네로서의 삶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보호해 주리라 믿는 여러 가지 잡다한 것들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따르라는 말일텐데 말이죠.

점점 주변 환경이 어려워짐을 느끼지만, 신기하게도 그렇게 크게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밤이 깊을수록 신새벽이 가깝다는 말처럼, 주님의 은혜의 시간이 가까이 온 것이리라 믿고 싶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름답게 보이던 단풍과 낙엽들이 이제는 발 밑에 스려지면서 비명을 지르는군요. 이제 그만 접고 저의 넓은 집으로 가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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