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공개된 일기 2000년 01월 01일
작성자 장혜숙
남홍아, 나 초등학교 일기 쓴다. 아줌마 칸은 없어서 여기다 쓴다.

지난 주간은 내게 참 힘든 날들이었다. 내 삶엔 셀 수도 없이 많은 일들이 있는데, 그 셀 수도 없이 많은 것 중에서 아주 작은 것 하나 바꿔보았는데, 그것이 그렇게 힘들었다.
기도였다. 십 수년간 하던 기도의 방법을 바꿔본 것이다. 물론 한시적이다.
구하는 말은 빼고 감사하는 말만 하기로 작정을 했었다.
우선 결론.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는 하루하루를 지탱하기가 참 힘들었다.

그러나 감사하는 말만으로도 기도를 잘 할 수 있었다.
그이는 유럽 출장 중이다. 나는 하나님이 그이와 동행하며 잘 보살펴주도록 기도해야 했다. 그것은 무엇을 어떻게 해달라는 기도여서 나의 결심을 어기는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결심을 꺾지 않았다.
"하나님, 그이와 늘 동행해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언제나 그의 손을 잡고 앞서서 인도해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했다. 이번 출장에도 동행해 달라는 말은 꿀꺽 삼켜 버렸다.
그 단계가 힘들었는데, 구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시다는 말이 번개처럼 떠오르고 나는 "됐다!"하는 배짱(턱 믿고 맡기는)이 생겼다.
그렇게 내가 바라는 것들을 이미 이루어 진 일처럼 무조건 "~ 해주시니 참 감사합니다."로 다 말해버렸다. 말만 바뀌었을 뿐, 구하는 일들을 다 고했다.
"그럼 이런 시도는 말 바꾸기 놀이인가?"
이런 생각이 나를 수시로 괴롭혔다.
다시 결론. 그건 말 바꾸기 뿐이 아니었다. 마음도 바뀌었다.
마음은, 생각은 말로 표현되지만, 때로는 이미 해버린 말이 생각이나 마음을 바꾸기도 한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계속 말하다 보면 정말 감사함을 느낀다.

두 아이들이 새 학년의 시간표를 복사해서 내게 주었다. 아침에 제때에 깨워주고, 등교시간 맞춰서 밥 달라는 뜻이라도, 그래도 나는 감사한다. 나를 따돌리지 않아서. 엄마라는 사람은 참 이상한 사람이다. 자식에게서 그깟 종이 쪽지 하나 얻어 갖는 것 만으로도 행복하니 말이다.

어제는 목욕탕 손잡이가 걷돌아 도저히 닫힌 문을 열 수가 없었다. 세 아이들이 각종 연장을 들고 씨름하다가 문도 열고, 손잡이도 고쳤다. 이것도 감사하고 행복하다. 닫힌 문이 열릴 때의 감사함이라니!
더운 물이 나오지 않아서 짜증이 났었다. 우리집 엔지니어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는가보다. 그런데, 주인 아저씨가 와서 고쳐줬다. 따뜻한 물, 그 따뜻함이 얼마나 행복한가!
나는 잠시 생각한다. 닫힌 문을 열리라. 따뜻한 사람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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