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납치범이 될 뻔했어요 2000년 01월 01일
작성자 김기석

입원한 교우 심방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평소에는 12층까지는 걸어올라가고 내려오곤 했는데,
그날 따라 걸을 마음이 생기지를 않는 거예요.
엘리베이터 앞에 마치 부끄러운 일을 하는 사람처럼
서있었어요. 그런데 아까부터 휠체어에 앉아있는
영감님 한 분이 눈에 들어왔어요. 곁에는 아무도 없구요.
직감적으로 '아, 어디 치료실에 가야 하는데 도와줄
사람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감님에게 다가가 물었어요?

"치료실에 가세요? 제가 도와드릴까요?"

그때 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했어요.

"엘리베이터 타셔야 하지요?"

영감님은 말없이 손가락으로 엘리베이터를 가리키시더군요.
천천히, 조심스럽게 휠체어를 밀고 그 네모난 박스 안으로
들어갔지요. 몇 층이냐고 여쭈었지만 대답하지 않았어요.
그냥 일층으로 갔지요. 일층에는 치료실이 있었거든요.
여기가 맞냐고 물었지만 영감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어요.
그제야 영감님이 말씀을 하실 수 없다는 것을 알아챘어요.
무작정 치료실 앞으로 가서 서성거리다가, 안되겠다 싶어
치료실 문을 빠꼼히 열고 의사 선생님을 불러냈어요.

"이 환자분 여기서 부르셨나요?"

의사 선생님은 아니라고 하면서 친절하게도,
"3층에 가시면 물리치료실이 있는데, 거기 가시는 길일 거"라고
가르쳐주셨어요. 나는 다시 영감님을 모시고 3층 물리치료실에
갔어요. 물리 치료실의 문고리를 보더니 영감님은 반갑다는 듯
문을 열라는 몸짓을 하셨어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아무도 없는 거예요. 한참을 기다렸지만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휠체어를 밀고 밖으로 나왔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복도 저편을 보니 "언어 치료실"이라는 방이 보였어요.
'아, 이 영감님이 언어 치료실 환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언어 치료실을 들여다 보니, 의사 선생님 두 분이
장난을 하고 계셨어요. 그래서 선생님을 불러냈지요.
선생님은 그 환자를 보더니, 본 적이 있다면서 자기가 부른 것은
아니라고 하며, 병실에 모셔다 주는 것이 좋겠다고 하더군요.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하며 열적어 하고 있는데,
복도를 따라 당황한 표정의 아주머니가 달려오고 있었어요.
그 아주머니는 휠체어에 탄 영감님께 다가오더니,
울먹이는 환자의 뺨을 쓸어주며 안심을 시키더군요.
그러더니 누가 이분을 여기에 데려왔냐고 물으셨어요.
영감님 목에서 가래를 빼드리고 손을 닦느라고 잠시 화장실에
들어간 사이에 휠체어가 없어졌더래요.
말도 못하고, 손발도 임의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남편)가
없어져서 별 생각이 다 들었다는 거예요.
'혹시 계단으로 추락하지는 않았나?'

나는 그간의 자초지종을 이야기했지요.
그랬더니 아주머니는 연신 고개를 숙이면서 고맙대요.
나는 본의 아니게 납치범이 된 셈인데 뭐가 고맙다는 것인지요?
영 민망하고 죄송했어요. 그런데 책망이 아니라,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으니 이게 웬일입니까. 그래서 말했어요.

"죄송합니다. 돕는다는 게 그만 이렇게 되었군요.
저는 목사입니다. 환자분을 위해 기도하고 싶습니다."

그 아주머니가 동의하는 표정이길래 그 환자의 치유를 위해
함께 기도했어요. 두 분은 될뻔한 납치범의 기도에 아멘으로
응답하셨어요. 이게 웬 인연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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