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친구와의 대화 중에서 2000년 01월 01일
작성자 장혜숙
나이 50에 가까운 한 친구가 방송통신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두 아들들의 학비 걱정이 없게 된 때 자기 자신이 공부를 시작한 겁니다.
그 친구는 소설 “가시고기”를 읽고 내게 말했습니다.(책 내용은 생략함)
자기 아버지는 자기가 어려서 일찍 돌아가셨는데, 그동안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다가 이 책을 읽은 후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됐다고.
우리나라에 상품들이 변변치 못했던 우리들의 어린 시절에, 외국 출장이 잦았던 자기 아버지는 머리핀에서부터 양말까지 출장길에 한번도 걸르지 않고 자기 것을 사다주셨다고. 그런데 자기는 아버지께 아무것도 해드린 게 없다고.
그저 받기만하던 어린 아이일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자기가 아버지께 해드린 것은 하나도 없다고.
그 친구는 자기가 아버지께 아무것도 해드린 것이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자꾸 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흘릴 눈물이 그 친구보다 훨씬 더 많거나, 아니면 흘릴 눈물이 전혀 없지요. 아버지로부터 아무 물건도 받아보지 못했고, 내가 아버지께 아무 물건도 드려보지 못했으니까요.
그러나, 그러나 아버지는 내게 생명을 주셨고(생명을 주신이는 하나님이라고 말해야 신앙적인가요?), 내 아버지는 내가 잉태되었다는 소식 한가지 만으로도 내게서 큰 기쁨을 받으셨을 겁니다.

나는 그 친구의 눈물을 닦아주어야했습니다.
“ 자기는 왜 아버지께 드린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우리 아이들이 태어나서 정말 아무것도 못하고 오줌 똥만 싸던 그 시절들에도 그 애들은 우리에게 아주 큰 기쁨을 주었는데…
그렇게 생각해봐. 자기가 아버지에게서 귀한 물건들을 받기만 하던 그 시절에도 자기는 아버지께 충분히 기쁨을 많이 드렸을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해. 예쁜 머리핀을 받고 기뻐서 팔짝팔짝 뛰는 자기 모습을 본 그 한 순간의 행복이 아버지에게는 무엇보다도 귀한 순간이었을거야. 지금 자기가 자기 자식에게서 느끼는 것처럼 말이야.”
그런 말로 친구를 위로하는 내 마음에도 새로운 다짐이 생겼습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서 받을 것을 이미 충분히 많이 받았으니 더 이상은 받기를 기대하지 말자는 다짐을 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태어나던 순간, 아니, 그 이전부터도 그 애들은 나에게 아주 큰 기쁨을 주었다. 평생동안 더 이상 아무것도 받지 않아도 될 만큼의 큰 기쁨을.
친구도 위로했고, 나 자신도 새롭게 솟아오르는 기쁨에 충만했습니다.
어쩌면 점점 커나가는 자식들에 대한 기대의 체념인지도 모릅니다… …

‘관계’의 굴레에 함께 들어있는 사람들끼리, 어느 한 순간이나마 느낀 기쁨이 있다면, 그것으로 평생을 버텨나갈 힘을 만드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이런 지혜는 어린 아이로부터 아주 늙은 어른들까지 다 갖추어야 할 지혜입니다.




목록편집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