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수업 참관 2000년 01월 01일
작성자 권혁순
오늘은 하루 종일 고등학교 수업을 참관하였습니다. 미국의 고등학교는 오늘이 새로운 학기 개학날이랍니다. 거의 두 달이 넘는 여름 방학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오는 날이지요. 상가와 슈퍼마다 빽투스쿨 세일이라고 요란을 떠는 것과는 달리 학교의 모습은 차분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아! 웬 수업 참관이냐고요?
제 전공이 과학 교육이다 보니 과학 수업을 참관하면서 그 가운데 일어나는 교육적 사건을 찾아서 이론을 만드는 것이 일이지요. 미국에 와서 거의 6개월간 이일 저일 하다가 드디어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가게 된 것이지요. 한 교사를 정해서 그 교사의 수업을 매일 매일 지켜보고 학생들과 인터뷰도 할 예정이랍니다. 세인트 프란시스 디 세일즈 하이스쿨이라는 기다란 학교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카톨릭 교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입니다.

미국의 학교는 우리의 학교와 참 여러 면에서 다르더군요. 일단 학교에 담이나 교문이라는 것이 없고 학생들이 자가용을 가지고 와서 수백대가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는 것이 첫 눈에 들어 왔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대학교에서도 학생들 자가용 진입을 금지 시키고, 중고교에서는 학부모가 자가용으로 등교 시켜 주는 것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았는데, 좀 문화 환경이 다르더군요.

그러나 학교 건물에 들어 섰더니, 역시 개학 첫날이라 그런지 왁자지껄한 학생들의 소리는 동일하더군요. 우리 나라와 달리 자신들의 교실이 없기에 모두들 복도에 있는 자신의 사물함 근처에 서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더군요. 이 학교는 좀 엄격한 학교라서 모든 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있었는데, 교복이라 하더라도 화이트 셔츠(우리 말로 와이 셔츠)에 넥타이를 맨 것인데, 셔츠의 색이 한 6가지 정도로 다양하더군요. 넥타이는 제 각각이구요. 획일적인 것을 좋아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교복을 입히더라도 다양성을 존중하는 모습이 보이더군요.

제가 참관할 교실에 들어 갔더니, 한 반에 20명에서 25명 정도의 학생들이 매 시간 들어 오더군요. 우리 나라 한 교실 학생 수의 절반 정도라서 그런지 교사는 학생들의 이름을 금세 외우더군요. 계속 학생들을 이름으로 불러 주고요.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참 중요하고 좋은 일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던데, 저는 한국에서 중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수업 시간에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지 못했거든요. 심지어는 제가 담임을 했던 반 아이들의 이름도 일년이 되도록 다 외우지 못했는데, 좀 부럽거군요. '20번 일어나서 -- 해', '야! 너, 아니 너 말고 그 뒤에 조는 얘' 이런 식으로 사람의 이름 대신 번호나 대명사가 주로 쓰이는 교실에서 과연 인간적인 교감이 어느 정도 이루어질까요? 빨리 우리 나라도 한 교실 당 학생 수가 획기적으로 줄어 들어야 할텐데....

어떤 교사는 학생 수만 줄어들면 교육의 문제가 많이 해결된다고 하덴데, 그렇지는 않은듯 하더라구요. 제가 중학교 때는 한 반에 70명이 넘게 있었지만, 요즘 중학교는 32명이 있는 학교도 있더라구요. 절반으로 줄었지만, 학교 문제는 계속 되던데, 이것은 학생 수의 문제 뿐 아니라 다른 문제도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서론이 좀 길었지만 오늘 수업 참관에서 인상 깊었던 것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교사의 열의가 문제인 것 같습니다. 우리 학교의 선생님들 툭하면 박봉이니 업무가 과다하니 불평이 참 많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선생님들이 계시기에 이런 말 하기가 좀 조심스럽긴 하지만, 우리 나라의 선생님들은 좀 더 분발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표현을 상당히 자제했는데, 괜찮았어요? 쩝. 오늘 참관한 학교는 모든 학년이 동일하게 하루에 7시간의 수업이 있는데, 한 교사가 6시간을 내리 수업하더라구요. 미국은 주 5일만 근무하는 것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주당 30시간을 수업하더라고요. 정규 수업만 30시간이라면 상당한 것 아닌가요? 수업 사이에 쉬는 시간은 단 3분으로 정말 화장실 갔다오기에도 짧은 시간이더군요. 양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수업 진행 면에서도 참 열심히 하더군요. 우리는 개학 첫 날 청소한다, 개학식한다하여 많은 시간을 빼앗기고, 개학 첫 주는 담당 교사 소개한다, 수업 내용 소개한다하면서 헐렁하게 보내는 사례가 많은데, 첫날 부터 꽉 채워서 수업을 하더라구요. 물론 학교에 용역이 있어서 잡일을 모두 하기 때문에 교사는 가르치는 일에 학생은 배우는 일에 전념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개학 첫 날, 또는 입학 첫날의 산만한 분위기가 전혀 없이 진행되더라구요. 참 놀랬는데, 왜 그렇게 될 수 있었는지는 좀 살펴 보아야겠지요?

이 학교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카톨릭에서 운영하는 학교라고 했지요. 그래서 그런지 수업 시간 시작하면 교사가 학생들이 다 왔는지 둘러보며 간단히 안부를 묻고는 기도를 하더라구요. 물론 저는 익숙치가 않아서 눈 뜨고 구경했지요. 몇 명은 저와 눈길이 마주치기도 했지요. 무상 교육을 시키는 공립학교를 마다하고 사립학교에 온 학생들이기에 사립학교의 교육 이념에 뭐라 반대하지 않는 분위기라 하더군요. 우리 나라의 미션 스쿨이라는 곳과는 여러 가지 정서가 다르기에 비교하기 어렵지만. 매 시간 기도하면서 수업을 시작하는 교사가 있기에 그 수업은 좋은 수업이 되리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규율로 되어 있기에 기도로 수업을 시작하는 것일수도 있지만, 오늘 참관했던 수업에서는 주문 외우듯이 하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영어로 해서 완전히 알아 듣진 못했지만, 'guide us, help us'라는 말이 제 귀를 파고들어 가슴을 찌르더군요. 하나님이 인도해 주시는 수업. 정말 대단한 수업이 될 것 같지 않으세요? 하나님이 도와 주시는 수업. 과연 지식의 전달만 이루어질까요? 미국 사람들은 참 잘 웃는다고 하지만, 6시간 내내 쉬지 않고 서서 수업하면서(떠들어 대면서) 입이 귀까지 올라갈 정도로 계속 웃는 모습이더라구요. 힘도 좋아.

그런데, 참 이상한 모습도 보았어요. 수업 끝나는 종이 치자 모든 학생이 벌떡 일어나서는 일제히 교실 밖으로 나가더라구요. 교사는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데 말이죠.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이 많더라구요.) 3분간의 쉬는 시간에 다음 교실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인가요? 교사도 설명을 하다가 말을 더 이상 맺지 못하고 그냥 끝내더군요. 교회행사 같으면 '자, 기도하고 마칩시다' 할텐데, 좀 아쉽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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