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일어나지 않은 일 2000년 01월 01일
작성자 김기석

새벽 하늘에 별이 총총 합니다.
서울 하늘에 웬 별이 총총이냐구요?
그래요.
옛날에 어머니 무릎 베고 보았던, 은하수 흐르던 그 별빛은 아니지만
그래도 초롱초롱한 별빛을 보는 것이 기분이 좋더군요.
자기 존재를 알리느라 목청껏 떠드는 풀벌레들의 소리가 가을임을 알립니다.
바람도 이 정도면 시원하구요.

한껏 좋은 기분에 교회에 왔습니다.
낯선 사람 하나가 교회 현관문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더군요.
반바지 차림에 슬리퍼, 입에서는 술내가 푹푹 풍겨나오고요.
"어떻게 오셨어요?"
"예배드리러 왔어요."
"네, 그러면 이쪽으로 오십시오."
그는 나를 따라 교육관에 들어왔습니다.
앞에 앉아 있으면서도 내 마음은 그에게로 가있었습니다.
그가 어떤 행동을 할는지 마음이 쓰였던 것이지요.
술 취한 사람이 예배를 방해하는 일이 가끔 있었거든요.
마침내 그가 내게로 오더니 성경, 찬송을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나는 다목적실에 들어가 성경 찬송을 그에게 가져다 주었어요.
속으로는 '갖출 건 다 갖추는구나', 하면서요.
여차하면 그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는지 마음으로 계산이 끝났어요.

예배가 시작되었고, 찬송가를 몇 곡 불렀습니다.
우연히 제 눈길이 그의 얼굴을 스쳤는데, 나는 놀랐습니다.
그가 열심히 찬송을 부르는 것도 놀랐지만, 그가 손수건을 꺼내 연신 눈물을 닦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그도 또한 길을 잃은 어린양이었던 것이지요.
그가 술에 취해 교회를 찾은 까닭이 무엇인지 저는 알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교회에 와 찬송을 부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에 평안을 얻은 것 같았습니다.

기도회가 끝나, 불을 껐을 때(개인 기도를 위해 불을 끕니다)
그는 조용히 일어나 나갔습니다.
나는 그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를 의심하고, 위험시하고, 마음으로 박대했던 것을 말입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은 일어나지 않은 겁니다.
어떤 사람을 대하더라도 '선입견'의 노예가 되지는 말아야 할 텐데요.
우리는 사람들에게 제멋대로 색을 칠해 그를 조롱하고 멸시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아닌가요?

그가 머물다 간 자리에는 성경과 찬송가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박명 속에 비추인 그 성경과 찬송가가 많은 이야기를 하더군요.

여름내 눅진눅진했던 마음을 이 따가운 햇살에 널어 말려야 하겠어요.
그래서 마음이 보송보송해지면, 하나님도 기쁘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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