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휴가에서 느낀 점 2000년 01월 01일
작성자 정숙
안녕하세요? 토요일에 영화 한 편 보면 좋을텐데 전 이렇게 집에서 놀고 있

네요. 앞으로는 혼자 있는 시간을 줄이고 밖에서 보내는 시간을 늘이려고 하

죠. 집에서 휴가 보낸 이야기 해 드릴께요 . 매일매일 다른 소재로 정말 재

미있고 감동적이었거든요. 목사님이 새로 오셨는데, 사모님과 조그만 아

이들 셋도 함께 왔죠. 교사들 식사를 집에서 했어요. 닭을 잡고-저희 맥일려

고 키운 거랍니다- 홍합을 끓이고 동치미를 삭힌 조촐한 식사였죠. 저녁 6

시 30 분에 식사를 시작했는데 10 시까지 모두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안 하시더군요. 상을 치우고는

찐 옥수수를 아이들-여러 명-은 반 개씩 잘라주고 어른들도 몇 개씩 드

시고, 냉커피 한 잔씩 더 했죠. 참 좋은 시간이었어요. 아이들은 시골집의

큰 방에서 뛰어 놀고 ,목사님과 아버지는 밖에서 몇 시간을 따로 대화를 하시

고,여자들은 불을 꺼 놓은 마루에서 이 얘기 저 얘기 했답니다. 아줌아,애기엄

마, 노처녀, 몇 달 뒤 시집 갈 언니가 모였는데도 화제가 떨어지지 않았어요.

우리 엄마가 교회 다니기 시작하시면서 일요일에 바다에 나가 김을 캐오지 못

해 옆 집에서 해 온 김이 널려있는 걸 보고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깔깔거

리고 다 웃었어요. 겨울이 되면 반찬을 준비하기 위해 그리고 약간의 현금이

되니까 엄마가 하시던 아르바이트였거든요. 욕심쟁이 엄마!

지난 번 목사님은 점잖으시고 참 좋으신 분이었는데 교인분들과 갈등도 있

었어요. 뭐냐하면 교인분들은 목사님께서 매사에 자상하게 해 줘야한다고 생

각했죠. 그런데, 자상함의 도를 넘어서서 자신들을 위해 존재하기를 바랬을 거

예요. 목사님께서는 어린아이의 신앙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신 것 같고,그래

서 일부러 내비두셨던 것 같군요. 개척교회라 뭐든 쉽지 않았어요. 게다가,

큰 교회에서 따르고 받기만 하던 분들이라 스스로 서는 걸 고통스러워했어요.

더 어려운거죠. 목사님께서는 그래도 자신의 길을 가시다가 얼마 전에

떠나시고 새 목사님이 오셨죠. 아버지는 새 목사님을 좋아하신다고 엄마가

그러시더군요.아버지는 무척 까다롭기때문에 아버지 맘에 드는 사람이라면

흠이 없는 분일 꺼예요 아마. 청렴하고 순수하고 성실한 분이신 것 같더군

요 . 새 목사님에 대한 아버지의 애정이 느껴지는 얘기 해 드릴께요. 저희 부

모님은 밤 늦게 가까운 기도원에 매일 가시거든요. 그러면 새벽 1시 반에 돌아

오시는데요 그리고 아버지는 다시 4시 30 분 교회 새벽 기도회에 가신데요.

제가 너무 놀라니까 엄마가 그러는데 가서 졸거나 주무신데요. 그래도, 큰오

빠 연배의 젊은 목사의 기도회에 자리를 채우고 싶으신 것 같아요. 귀엽죠?

또 한 가지 이야기. 제 친척 동생이 방학이라 놀러왔어요. 좀 외롭게 지

내는 아이죠. 그냥 찌개에 밥에 먹고,시골에 특별한 오락도 없어서 지겨워할까

봐 걱정이 되더군요. 요즘 아이들은 그런 걸 못 견디잖아요. 그런데, 이 아이

가 그냥 재미있어 하고 저희 집에 있는 걸 그냥 좋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어

요.

전 알게 됐어요. 이렇게 형들과 누나가 있고 가족들이 북적거리며 사는 것이

아이에게는 큰 행복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아이 옆에는 가족들을 원망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제가 서 있더군요. 가족들에 대한 제 마음의 벽이 그 순

간 다 허물어졌답니다. 이제 저는 다른 걸 해야겠군요.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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