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고마운 지적 2000년 01월 01일
작성자 김기석
gyber님의 지적에 감사합니다.
누가 내 설교를 읽을까 생각했는데, 그래도 우정을 가지고 읽는 분이 있다는 걸 확인한 셈이니까요.

사실 난 과학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다만 세상을 설명하려는 방식에는 여러가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 뿐입니다. 철학, 과학, 신학이 어쩌면 가장 중요한 세 가지 패러다임이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이들 학문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태도가 비슷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문학이나 철학에서만이 아니라 인간 인식의 마지막 지점에 이른 과학적인 진술조차 은유를 채택하고 있다니 참 재미있습니다.

쿼크에 대해서는 물리학을 전공한 저명한 신학자가 설명하는 것을 듣고 참 그럴 듯하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그게 내가 지향하는 '관계의 신학'을 설명해주는 좋은 틀이 된다고도 생각했구요. '관계의 신학'이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기본적인 인식틀에서 '신'과 '인간'에 대해 말해보자는 것인데, 어찌보면 불교의 '연기론'(한자를 어떻게 올려야 한느지 잘 모르겠네)과 같지만 목적론적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어요.

과거의 지성인들은 철학과 신학 과학을 총체적으로 연구하면서 자기 학문의 체계를 세웠다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지요. 그래서 전문가가 생기게 되었고, 일반인들은 전문가들의 연구를 수용하는 정도에 그치게 되지요. gyber님의 말대로 믿음도 참 좋지요? 남의 말을 그렇게도 못믿는 우리가 전문가들의 말은 진리로 받아들이니 참 모순된 상황이지요. 지금 한국에서는 비타민C 열풍이 불고 있는데, 서울대학교 아무개 교수가 한 말이라면서, 비타민C가 만병 통치약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꽤 많아요.

인간은 '무'에 대한 근원적인 끌림을 느끼지만, 또 '무'에 본능적으로 저항하기도 하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뭔가 자기를 지탱해줄 든든한 버팀목을 가지고 싶어하고. 뭔가를 믿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의 뿌리는 그게 아닐까 싶어요. 근원적인 불안, 시간 속에 살고 있는 이들의 운명이지요.

gyber님, 공부 열심히 하세요. 과학의 길도 결국 '하나'에로 향하는 것 아니겠어요? 과학과 신학의 접점을 찾는 작업에 귀하게 쓰임받기를 빌께요. 가족들에게도 안부를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물론 학문을 하는 태도는 그런 믿음의 체계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반성을 해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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