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호형호제(呼兄呼弟) - 아바 아버지 2000년 01월 01일
작성자 권혁순
오랫만에 한자를 쓰다 보니 제대로 썼는지 모르겠군요? 이 단어는 제가 고등학교 때인가 국어 교과서에 실린 홍길동전에서 본 것입니다. 길동이 서자로 장성하여 큰 뜻을 품고 길을 떠나려고 할 제,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지요. 요즘 한국에서 한창 인기 있다는 동의보감의 허준도 서자로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불우하게 지냈다고 하던데, 어엿한 부모님 밑에서 호강하며 자란 제가 호형호제라는 말 뜻이 그리 가슴에 다가 오지 않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물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 단어가 생각났냐고요? 다름 아니라 바로 하영이 때문입니다. 저희는 식사 때마다 식구들이 돌아가면서 기도를 합니다. 식사 기도는 거의 기도하는 내용이 정해져 있기 마련이지요. 늘 새로운 내용을 찾아서 감사드리려 해도 음식을 앞에 놓고 하는 기도의 내용은 크게 달라지지 않죠. 하영이의 기도는 거의 정해져 있습니다. 아직 어려서 그런지 기도에서 감사의 내용을 거의 넣지 못하고 있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이거 해주세요, 저거 해주세요 하고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아멘. 하고 마친답니다. 해 달라는 내용도 거의 정해져 있죠. '하영이가 쑥쑥 크게 해 주세요', 요즘에는 여기에 한 가지 더 붙여서, '하영이가 쑥쑥 크게 해주세요. 그리고나서 또 쑥쑥 크게 해주세요"라고 한답니다. 거의 자신의 희망 사항이 기도에 들어가는데, 가끔 한국에 계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생각날 때는 '할머니, 할아버지 건강하게 해주시고, 이곳에 비행기 타고 놀러오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한답니다. 그런데 며칠 전 갑자기 기도 내용이 바뀌었답니다. '용민이가 아빠를 아빠라고 하고, 할아버지를 할아버지라고 하게 해주세요' 갑자기 바뀐 기도 내용에, 그리고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알 수가 없어서 하영이에게 무슨 소리인지 물어 보았죠. 하영이의 답은 참 간단했습니다. '용민이가 아빠한테는 아빠라고 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그런 기도가 며칠 계속 되는 것이었습니다. 왜 이런 기도를 할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죠. 한국에서 할머니와 함께 있는 용민이가 전화를 붙잡고는 아무 소리도 못내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왔던가 봅니다. 저희가 한국을 떠나올 때 막 아빠, 엄마 소리를 하기 시작했었는데, 아직까지 아빠, 엄마 소리를 못내고는 사진을 보면서 그냥 '아-, 아-' 한다는 것입니다. 어린 나이에 멀리 여행하는 것이 힘들고, 어른들도 살기 힘든 곳에서 고생할 것이 걱정이 되어 두고 왔었는데, 참 마음에 걸립니다. 하영이도 동생과 말이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말도 못하는 동생이 참 안타까웠던가 봅니다. 전화를 붙잡고 용민이에게 아빠, 아빠 소리를 들려 주지만 용민이는 그저 웃기만 한다는군요. 참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아빠를 두고 아빠라고 부르지 못하는 용민이의 모습에 가슴이 아픕니다.

아바 아버지.
이 표현도 성경 어디엔가에서 본 기억이 납니다. 하늘 아버지를 이제 우리의 주인(主人)으로서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돌보아 주시는 아버지로 부를 수 있다. 바로 곁에 계신 아바 아버지를 과연 아버지로 부르며 살고 있는가? 가까이 계신 그 분을 만날 만한 때에 만나야 하는데, 함께 즐거운 시간을 지내야 하는데. 참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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