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저도 박 종선 권사님의 영전에 이 글을 드립니다. 2000년 01월 01일
작성자 윤 석철
6-15-2000

한 쪽에서는 하늘 무너지는 것 같은 슬픔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어도 다른 사람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하루의 일과, 그렇게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일과, 나에게 생긴 조그만 일들에 정신을 빠뜨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그 인생을 마감하고 저 다른 세상으로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난다 하여도 우리는 짧은 애도의 묵념과 그분과의 일들에 대한 회상과, 그리고 그분이 그렇게 아끼고 도저히 놓고 떠날 수 없었던 그 가족에 대한 안타까움의 정중한 표현을 한 후 다시 우리는 우리의 일상으로 돌아 가는 모양입니다.

저는 오늘도 대학 써클 창립 32주년 기념식을 치루고 웃고 떠들고 얘기하다가 자정도 넘은 시간에 집에 돌아 왔습니다. 그 모임을 이끌고 있는 책임자 이기때문 만은 아니고, 이런 일 저런 일을 동시에 잘도 치루어 내는 그 뻔뻔함과 생활의 능숙함으로 아무런 주저 없이 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교회 홈페이지에 접속하였고 제 아내 장혜숙 집사가 영국에서 올린 글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던 분이 우리 곁을 떠났다는 사실이 갑자기 충격처럼 저에게 다시 다른 의미로 다가 왔습니다.

박 종선 권사님이 운명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제2 남선교회 회원 10여명은 6월 13일 저녁 일산병원 영안실을 찾아 조문을 하였습니다. 지난 주 토요일,6월 10일, 강화도 고창 기도처로 기도회 모임을 갖기 위해 저희 회원들이 교회에서 모여 출발하면서 병세가 심상치 않다는 박 권사님의 소식을 듣고 일산 병원 중환자실로 모두 문병을 갔지만 면회시간이 아니라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리고 말은 적이 았습니다. 우리는 박 권사님을 마지막 뵐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날밤 기도회에서 우리는 박 권사님이 쾌유 하시기를 오래 오래 기도 드렸습니다.
성가대 대장으로,
성가대 지휘자로,
그리고 성실하고 착한 우리의 동료로,
아, 그 시원스럽고도 은혜로운 목소리로 찬양을 드리는 성도로
우리 곁에 계시던 그분,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고
우리 곁에서 같이 의논하고 봉사할 일이 많은 그분,
우리는 그분에게 좀 더 시간을 주십사 하고 하나님께 기도 드렸습니다.

지금 우리 곁에 계신 많은 분들이
멀리 또는 가까이
언젠가는 우리 곁을 훌쩍 떠나실 것입니다.
그 나이의 많고 적음이 순서가 아닐 것임을 우리는 압니다.

제 손을 붙잡고 간장이 끊아질 듯 흐느끼던 김성자 집사님의 안타까움처럼,
우리는 모두 그일을 겪을 것입니다.
그 일은 바로 내가 겪어야 될 일이고
또한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던 사람들로 하여금 겪게 만들 수 밖에 없는 일입니다.

저희가 박 권사님과 그 가족을 알기 훨씬 이전 부터 그분은 우리 교회에서 몸과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헌신하고 계셨습니다.
사실 저희 가족은 늘 교회의 성도 여러분들께 신세를 끼치고 살아왔다고 생각 합니다.
우리가 예배드리고 있는 지금의 성전 건축에 저희 가족은 벽돌 한장 봉헌하지 아니하고 나중에 편안하개 교회를 다닙니다.
모든 성도님들이 한마음으로 봉사하던 그때에 저는 하나님과 멀리 멀리 떨어져 하나님 백성 아닌 사람처럼 살고 있었고 1983년 말에서야 우리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처음 시작하는 저희들 가족의 신앙 생활에 안내와 인도를 해 주신 분들중의 한 분이 바로 박 종선 권사님이셨습니다.
그 분의 평화로운 얼굴은 저희들에게 넉넉한 위안이 되었고,
그 분이 힘차게 부르던 찬송가 구절 구절은 저희들도 찬양의 기쁨이 무엇인지 깨닫도록 해 주셨습니다.

파바로티나 도밍고가 열연하는 오페라 필름을 외국에서 사가지고와 박 권사님께 보여드렸을 때 그렇게 기뻐하고 즐거워 하시던 그 분의 웃음 짓는 그 얼굴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우리가 무슨 말로
쉰 아홉에 돌아가신 박 권사님,
남편을 떠나보내고 믿을 수 없어 하는 김 성자 집사님,
그리고 그분이 그렇게 사랑하시던 아들과 딸들에게
사람의 위로말씀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그 뜻을 우리가 무어라 설명하겠습니까?
하나님 곁에 이제는 그 육체의 고통을 내려 놓고 편안히 쉬고 계실 것 입니다 말씀드리지만
그 남은 가족의 애통이 저의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그렇게 일찍 훌쩍 떠날 것이면 아무렇게나라도 한번 살아보지..."
김 성자 집사님의 그 흐느낌이 박권사님의 삶이 어떠하였는지를 얘기하여 주는 것 같아 제 고개가 절로 수그러 집니다.
제가 제 가족의 손을 놓고 훌쩍 떠났을 그때의 모습을 지금 보면서 저와는 다른 삶을 살으신 박 권사님을 생각하며 저는 제 부끄러운 모습에 몸이 작아집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소망,
그 소망이 나중의 일만이 아닌 지금의 일인것을 압니다.

저를 담고 있는 제 그릇을 늘 깨끗이 닦아 놓고,
그 날이 언제이던
조용히 받아들일 수 있기를 기도 합니다.

평소의 박 종선 권사님 모습 그대로
평안히
아버지의 부름 따라 나선 박 종선 권사님,
저희 모두가 사랑 했습니다.
저에게는 형님 같았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요.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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