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아름다운 집 2000년 01월 01일
작성자 장혜숙
방금 집주인이 다녀갔다.
며칠 전에 변기가 깨져서 그가 오늘 새 변기를 가지고 왔다.
(화장실이 두개니까 걱정 마세요.)
어제 내가 외출한 사이에 상황을 보러 왔었다.
거실에 있는 전자기타를 보고 그는 아주 기뻐했단다.
옛날에 자기가 쓰던 기타와 똑같은 거라고 아주 반가와했단다.
그는 지금 우리가 식당으로 쓰고있는 방에서 친구들과 함께 밴드 연주를 했었단다. 기타를 머리 위로 넘겨 (아 이걸 그림으로 그려야하는데, 어떻게 설명할까) 몸을 꼬며 연주하는 폼을(상상해보세요) 잡다가 천장에 있는 전등을 건드리곤 했다고 한다. 그 때가 1960년대 후반기였다고 한다.
우리 컴퓨터의 배경 화면에 이 집 건물 사진을 깔아 놓은 것을 보고 아주 좋아하더란다.
그는 머리가 하얗게 센, 아마 60세쯤 된 사람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이 집에서 살았고, 이번에 처음으로 세를 놓았다.
늙으신 어머니는 양노원으로, 자기들은 이보다 좀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갔다.
처음에 와서 우리는 이 집이 노인이 살던 집이란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화장실 벽, 샤워실 벽, 현관, 곳곳에 앉았다 일어날 때 붙들 수 있는 손잡이를, 침실엔 인터폰을 설치해 두었고, 계단이 꺾어지는 부분에는 거울을 달아 아래층과 이층에서 서로 볼 수 있도록 해놨다.
집안 곳곳에 설치된 그 손잡이들을 볼 때마다 나는 어머니를 배려하는 아들의 손길을 느끼곤 한다.

우리가 이사 온 후 곧 그는 전화도 없이 불쑥 두 번을 찾아왔었다.
처음엔 그냥 볼일도 없이 왔고, 그 때 내가 좀 춥다고 했더니 그 다음엔 전기난로를 사가지고 왔었다.
이제 생각하니 그는 이 집에 그냥 그렇게 오고싶었던 것 같다.
전자기타를 보고 아주 반가와하며 자기가 저 식당방에서 친구들과 연주하던 시절을 회상하던 그의 마음이 애틋하게 내 가슴에 와 닿는다.
그가 이 집을 떠난 후로도 그의 마음은 얼마간 이 집에 머물렀을 것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담긴 집, 모든 추억의 창고, 거기서 꿈꾸었던 미래 (그 미래도 어느 시점에서부터는 과거가 되지만) … …
그가 이 집에서 태어났는지는 묻지 않아서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기타를 치던 시절부터 35년 정도를 이 집에서 살았는데, 그동안 그는 결혼도 했고, 자식도 낳았고, 그리고 어머니는 이제 생의 마감을 준비하는 단계에 들었고 … …
이 집은 건물로서만의 집이 아니라 그의 인생이다. 그의 영혼이다.

집은 그래야 할 것 같다. 집은 소유의 한 목록이 아니라 인생을 담는 그릇으로 존재해야한다.
정원의 나무들, 꽃들이 어제와 다른 느낌으로 내게 다가온다.
그가 몇 살 때 이 장미를 심었을까, 이 꽃이 처음 폈을 때 그의 가족들은 얼마나 큰 기쁨으로 이 꽃을 즐겼을까. 이제 생의 막바지에 와있는 그의 어머니의 젊은 모습이 장미 송이에 떠오른다.
아들의 전자기타 연주를 그 어머니는 때론 즐거워했고, 때론 그 굉음에 시달리기도 했었겠지. 지금의 나처럼.

모든 존재는 아름답다. 정신이 깃든 모든 물질은 더 이상 무생물이 아니다.
무생물에 사람의 호흡이, 손길이, 사랑이 닿으면 그것은 생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따뜻한 체온으로 사람과 함께 존재하는.

나는 참 아름다운 집에 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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