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옥수수 2000년 01월 01일
작성자 권혁순
미국에서 음식을 먹을 때는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 가족은 하루 세끼를 집에서 밥과 김치로 해결합니다. 외식은 거의 생각도 못하지요. 주문한 음식이 어떤 맛을 가지고 있을 지 종 잡을 수 없기 때문이랍니다.

미국에 와서 며칠 되지 않은 어느 날, 슈퍼마켓 비슷한 곳에 갔는데 하영이가 딸기가 먹고 싶다고 하여 먹음직스러운 딸기를 샀답니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 하영이는 딸기를 먹지 않습니다. 슈퍼에서 딸기 진열대 앞을 지나 가면 '어휴 맛없는 딸기'하면서 손가락질을 합니다. 겉 모양은 똑같은데 어찌나 쫄깃쫄깃 한지....

그러나 바나나 맛은 동일하더군요. 오렌지는 기가 막히게 맛있고요. 사실 바나나와 오렌지는 한국에 비해 무척 싸고 맛도 좋아서 자주 사 먹습니다.

미국에 온 지 거의 두 달을 매일 비슷한 음식을 먹다 보니, 질릴대로 질렸나 봅니다. 새로운 것을 먹기 위해 한 뷔페 식당에 같습니다. 이곳에 5년전에 온 학교 선배가 저렴하며 맛있는 곳이라고 추천한 곳이었습니다.

미국 식당이라 그런지 역시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음식들은 찾기 힘들더군요. 고기는 대부분 짠 경우가 많고, 빵 종류는 대부분 달기 때문에 저는 졸지에 채식주의자가 되어 풀만 많이 뜯어 먹었습니다. 물론 진열된 모든 음식의 맛을 다 보았지요, 혹시 입맛에 맞는 것이 있을까하여.

음식을 고르고 있는데 갑자기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한국 말이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한국 말을 듣는 것은 참 반가운 일이지요. '언니 조금씩 담아가요' 고개를 돌려 보니 한 50대 후반의 아주머니 두 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는 제 눈길이 바로 그 아주머니의 접시로 갔습니다. 이곳에 별로 입맛에 맞는 것도 없었는데 무엇을 그리 많이 담았을까 궁금하였지요. 접시에는 삶은 옥수수 두 토막이 올려져 있었습니다. 그 아주머니 왈, '야, 별로 먹을 만한게 없다.' 순간 그 아주머니에게 할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으나 바로 다른 곳으로 가시는 바람에 말을 전하지 못하였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문 옆에 한국 사람으로 보이는 아저씨 한 분을 보았는데, 혹시나 하여 접시를 보았지요. 아니나 다를까 옥수수가 세 개나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 아주머니에게 하려던 말은,

'그거 맛 없어요. 조금만 가져 가세요'였습니다.

겉보기에는 우리 나라에서 보는 옥수수와 똑같이 생겼고, 어찌 보면 더 오동통하게 살이 쪄 있었지만, 저와 집 사람은 한 입 물어 보고는 더 이상 식욕을 상실하였답니다. 옥수수 특유의 단 맛은 어디 갔는지 알 수 없고 버터를 발랐는지 원래 그런지 모르겠지만 느끼함 만이 혀 끝을 감돌 뿐이었습니다. 또한 옥수수가 어찌나 통통하던지 깨물면 주변에 있던 옥수수 알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주변의 미국인들은 잘 먹고 있던데, 아까 그 아주머니는 어찌했는지 궁금하더군요. 물론 저는 남김없이 다 먹었지요. 오천명을 먹이고 남은 음식을 버리지 않으셨던 어떤 분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서요.

겉모양보다 속을 보라고 한 말씀을 상기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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