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호암미술관 답사기 2000년 01월 01일
작성자 고재중
2000년 4월 16일
호암미술관(경기도 용인 소재)
싱가폴 출장으로 몸을 무리하게 썼더니 콧물이 아직도 그칠줄을 모르는군요.
화창한 봄의 유혹을 이길수가 없어서, 마침 같이 사는 친구가 새로 구입한 중고차(유로 액센트) 테스트도 겸해서 용인의 호암 미술관을 다녀왔습니다.
면허 따고 처음 모는 스틱이라 10번정도 엔진을 끄터렸지요. 뒤에 따라 오던 차들이 얼마나 놀랬을까? 날씨가 좋아서인지 차들이 마성 톨게이트부터 밀리기 시작하여 도무지 나가지를 않는군요.
덕분에 스틱 연습만 무지 했습니다. 아직도 파킹시킬때 엔진을 잘 끄터리지요.

삼성의 창업자인 고 이병희(일명 돈병철, 돈이 억수로 많아서랍니다)가 수집한(사실 여기에도 말이 많습니다. 거의 대부분이 장물이니까. 그래서 호암미술관의 전시품에는 정확한 출처가 없지요. 하기야 이때 그렇게라도 사두지 않았으면 지금 구경도 못할것이니 고맙기는 합니다만.) 도자기를 비롯한 문화재가 대다수인데, 이중에는 국보급이 수두룩하지요.
이병희씨 기증품으로 삼성문화재단이 세워지고, 용인의 호암미술관과 서울 중앙일보 사옥내 호암갤러리, 그리고 삼성그룹 본사옆의 로댕갤러리를 관리한답니다. 삼성문화재단은 제가 삼성그룹내에서 유일하게 일해보고 싶은 곳이기도 합니다. 붙여주려나?
용인의 호암미술관은 한국식 정원인 '희원'이 별미입니다. 벅수들이 덤숭덤숭 박힌 대나무 숲을 지나 전통 한옥의 담장을 통과하면 잘 가꾸어진 정원이 시선을 끌지요. 아기자기한 정원은 일본이 유명한데, 거기에 비할바는 못되지만 한국에서는 꽤 잘 가꾼 정원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한옥 스타일의 본 전시관도 꽤 잘 지은 건물입니다. 다만 시선을 버리는 것은 본 전시관 좌우의 불국사 석가탑과 다보탑 가짜를 너무 크게 만들어 놓아 석탑의 균형과 절제미를 기가 막힌 방법으로 망신시키고 있다는 점이지요. 누구 아이디어인지... 문화재단에서 이미 짤렸으리라 확신합니다.
또 하나의 명물은 외국의 조각공원을 본뜬 부르델 조각공원! 얼마를 주고 사왔는지 모르겠으나 외국에서나 볼 수 있는 거대한 청동상들이 여러개 있지요. 좀 엉성한 느낌이 드는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호암미술관에서 단연 저의 시선을 끄는 것은 벅수들입니다. 대강 세어 본바로는 100쌍 이상의 벅수들이 있더군요.
벅수란 돌정승을 이르는 말로, 마을 입구에 세워 재앙이나 잡귀가 마을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 의미를 지니지요. 제주도에 가면 돌하루방이 유명한데 이것도 일종의 벅수입니다. 현존하는 것들은 17~18세기에 주로 세워졌는데, 모든 동네마다 하나씩 있었다고 보면 됩니다.
이 많은 벅수들을 어떻게 모았는지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틀림없이 왜놈들이 훔쳐낸 것을 장물로 샀거나, 아니면 외진 산골마을에 가서 어수룩한 노인들에게 돈만원 쥐어주고 뽑아왔으리라 짐작됩니다.
아무튼 엄청나게 깜찍한 벅수들이 정원 곳곳에 깔려있습니다. 크기도, 형태도 제각각으로 다양합니다. 얼마나 깜찍하던지 셔터를 마구 눌러댔지요.
98년도에 1주일정도 제주도답사를 갔었는데, 현존하는 43(? 44, 45?)쌍 중 23쌍를 직접 둘러보고 온적이 있습니다. 그때와는 다른 느낌을 주더군요. 현무암으로 만든 돌하루방과 달리 화강암으로 깜찍하게 만든 벅수들을 꼭 보시길 바랍니다.
벅수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담겨져 있는데, 마을의 안녕과 질병으로부터의 방어를 기원하는 의미가 제일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인/무인을 쌍으로 조각하거나 남녀를 한쌍으로 조각하지요. 아주 정교하게 조각된 것부터 거의 형체만 알아볼 있는 서민적인 것까지, 크기도 다양하답니다.
화창한 봄날, 벅수들과 지내봄이 어떠하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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