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녹색기독인 2000년 01월 01일
작성자 김기석
바람이 많이 부는 월요일, 느긋하게 집에 앉아 책도 보고, 잡지에 보낼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언제나 데드라인이 되어야 글 쓸 생각이 드는 이 게으름을 이번엔 청산하자, 굳게 다짐했거든요. 나 때문에 잡지 편집자가 늘 애먹는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든거예요. 산에 가고 싶었지만,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이들을 생각하면서 자제했어요.

하지만 전화가 원수지요. 느긋하게 책을 펼쳐드는 순간 벨리 울려요. 받을까말까 망설였지만, 혹시 급한 전화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수화기를 들었지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후배였어요. 최근에 쓴 책을 한권 드리겠노라고 하는데, 그것 말고도 어떤 용건이 있는 것 같았어요. 서둘러 시내에 나갔어요. 후배와의 대화 내용을 공개할 필요는 없겠지요. 함께 점심을 먹고 헤어졌는데, 얼핏 집에 들어갈 생각이 안드는 겁니다. 으레 그러듯이 서점 순례에 나섰어요. 교보로 해서, 종로서적으로, 영풍문고로, 나중에는 문학전문 서점인 한신문화사까지. 물론 몇 권 책을 샀어요. 언제 읽을지도 모르는 책을요. 쌀쌀한 바람이 부는 거리를 혼자 걸으면서, 아무개가 틈난 나면 옷을 사는 거나, 내가 책을 사는 것이 본질상 다를 것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물론 St.Augustinus의 "Confessions"를 9,600원에 산 게 꽤 기분좋긴 해요. 어거스틴의 고백록은 언제나 내 손 가까이에 있거든요. 대학원에 다닐 때 영어로 한번 읽긴 했는데, copy해서 봤거든요. 글을 읽은 흔적이 많아서, 이제 새 책으로 한번 더 봤으면 했는데, 오늘 그 책을 구한 거예요. 책도 다 인연이라는 게 있거든요. 이렇게 예기치 않게 만난 것은 그 책이 내게 할 말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이제 그런 기대를 가지고 고백록과 만날 겁니다. 누군가가 그 책을 함께 읽는다면 참 좋을 텐데.

아, 내가 왜 이 잡설을 쓰기 시작했지? 아, 그래요. 오늘 집에 돌아와서 한국교회환경연구소에서 낸 자료를 읽다가 우리들이 함께 나누었으면 싶은 글이 있어서 그것을 소개한다는 것이 그렇게 됐네요. 녹색기독교인의 십계명이라는 건데, 여러분들에게도 의미있게 읽히길 바래요.


1. 일회용품을 쓰지 맙시다.
2. 이용합시다. 대중교통.
3. 삼갑시다. 합성세제.
4. 사용합시다. 중고용품.
5. 오늘도 물, 전기를 아껴씁시다.
6. 육식을 줄이고, 음식을 절제합시다.
7. 칠일은 하나님도 쉬셨습니다. 시간에 쫓기지 않게 삽시다.
8. 팔지 맙시다. 소비광고에 한눈을.
9. 구합시다. 작고, 단순하고, 불편한 것!
10. 십자가 정신으로 가난한 이웃을 도웁시다.

아시지요? 은총은 녹색의 은총과 적색의 은총이 있다는 것. 녹색의 은총은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에게 주신 보편적 은총입니다. 돌아가신 시인 천상병님은 하나님이 초록색을 좋아하시는 것 같다고 했어요. 세상에 초록색이 가장 많으니까요(시인은 아마 초여름에 그 시를 썼나보지요?). 적색의 은총은 우리를 위해 당신을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입니다. 지금까지 교회는 적색의 은총을 강조해왔어요. 하지만 이제 녹색의 은총에 눈을 떠야 할 때예요. 위의 계명은 녹색의 은총을 소중히 여기는 이들이 가슴에 새겨두고, 삶 속에서 실천해야 할 내용이 아닌가 싶어요. 찬미 예수! 녹색 은총이 우리 모두에게!
고백합니다. 오늘 나는 써야 할 글을 또 쓰지 못했습니다. 아, 이 대책없는 게으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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