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Living Room, TV, 어머니 2000년 01월 01일
작성자 장혜숙
거실 한쪽 벽에 낮은 장식장이 있고, 그 위에 TV가 있고, 의자들이 그 쪽을 향하여 놓여있는, 이런 모양의 거실을 나는 원치 않는다. 눈높이로 낮은 곳에 맑은 수채화 몇 점을 화랑처럼 걸어놓고, 둥근 테이블에 꽃무늬 프린트의 테이블보를 덮고, 편안한 팔걸이 의자를 두개 마주보게 놓아 누구와 함께 차를 마실 수 있도록 하고, 커다란 창 밖을 향해 흔들의자를 놓고, 출력이 낮은 스피커를 네 귀퉁이에 설치하고, 작은 오디오셋트를 한 구석에 놓고, 좋아하는 CD와 책 몇 권 가지런히 놓아둔 그런 거실이 내가 꾸미고싶은 모양이다. 웅장한 오디오, 한 벽에 가득찬 책, CD, 그런 것 다 싫고, 공간을 넓게 남기고 물건은 간단히 조금 둔 모양이 좋다.
그렇지만 나는 가족이 함께 TV를 볼 수 있도록 거실에 TV를 놓고 그것을 바라보는 자리에 소파를 놓았다.
어머니는 다른 집들처럼 어머니 방에 TV를 따로 두고싶어하실지도 모른다. 편안한 자세로 원하는 곳을 마음대로 볼 수 있도록. 그러나 나는 어머니께 TV한 대 사드리는 것에 인색하다. 효도를 한답시고 어머니 전용의 TV를 사드리면 그것은 효도가 아니라 어머니를 가족으로부터 고립시키는, 어머니를 방에 가두는 일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TV 연속극을 즐겨 보신다. 우리가 함께 앉아서 보면 지난 줄거리의 설명에 열중하셔서 상영되고 있는 화면의 대화는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극중에서 남자가 바람을 피운다든지 그럴 때 '저런 죽일 놈'하고 내가 한 마디 하면 어머니는 그 남자의 그간의 행각에 대해 열심히 설명을 하신다. 내가 그 극을 열심히 보고있는 표를 내는 것이 어머니의 '연속극보기'에 얼쑤 추임새가 되는 것이다.
모두들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집안의 노인들을 어떻게 즐겁게 해드릴지…
TV에 눈팔고 있는 것은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젊은 이가 있다면 하루에 얼마나 집안의 노인과 대화를 나누는지, 그 대화의 내용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노인과 나눌 수 있는 공동의 대화는 무엇인지를.
'아메리칸 뷰티'의 내용이 적합한지, 모짜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뮤직'이 적절한지 생각해 보자. 늙으신 어머니와 함께 질 낮은(?) 연속극 내용을 서로 얘기하고, 가요무대의 세련되지 못한 노래를 같이 듣고 그러는 것 때문에 우리의 삶이 TV나 들여다보고 있는 수준낮은 삶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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