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문화답사]용주사 & 건릉, 나혜석 미술전 2000년 01월 01일
작성자 고재중
교우들중 문화답사에 관심을 표하는 분들이 계셔서 여기다 연재합니다.
저에게 답사여행은 삶입니다. 유물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조상들과 이야기를 가능하게 해 줍니다. 미술은 사회를 이해하는 수단입니다. 미술에는 그시대의 정신이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18일날은 용주사와 융릉/건릉을 답사했습니다. 왜 비운의 사도세자 이야기 아시지요? 아들 정조가 억울하게(물론 관점에 따라 다를수 있지만)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를 위해 왕비 홍씨(옛 여인들은 왕비라도 이름을 몰라요)와 함께 합장묘를 화성에 만들었거든요. 그게 융릉입니다. 그리고 건릉은 정조대왕과 황후 김씨의 합장묘이고요. 부자(비운의 아버지와 훌륭한 업적을 쌓은 아들?) 부부의 합장묘가 한 곳에 나란히 있는데 기분이 묘합니다. 정조는 아버지의 죽음이 어떤 면에서 애달팠기에 이렇게 극진했을까요?

용주사는 적어도 고려 이전에 지어진 사찰인데, 사도세자의 무덤을 만들고 그 영혼을 기리기 위해 정조는 이 절을 선택하여 크게 보수하고 용주사라 칭했지요. 그 때 정조는 불경중에 '부모은장경'이란 부모의 은혜를 가르친 훌륭한 불경을 읽고 이런 짓(?)을 벌렸다고 하더군요. 대웅전 우측에 부모님 은혜를 설한 부처님 말씀이 새겨진 탑이 있습니다. 혹시 주위에 불효한 아이가 있다면 교육상 한번 데리고 가심이 좋을듯 합니다. 저는 그 탑 주위를 돌며 고향에 계신 부모님 생각이 간절해지더군요. 부모님, 이불효자를 용서하세요.
아침 일찍 갔더니 마침 예불 중이더라구요. 밖에서 한참을 서성거려도 끝이 안나길래 문을 빼꼼히 열고 들어갔지요. 정조가 특히 신경을 쏟아 당대의 최고 화가이던 김홍도가 후불탱화까지 그렸답니다. 사실 저의 목적은 김홍도님이 그린 후불탱화를 보기 위해서 용주사를 찾았던 것인데, 그래서 감히 예불을 깨뜨리고 들어갔지요. 한켠에 서서 후불탱화를 한참 바라보고 있노라니 열심히 부처님께 기원을 하던 신도께서 빈방석을 가르키며 눈치를 주더군요. 아마 제가 낯설어서 저렇게 멀건히 서 있나부다 하고 생각하셨겠지요? 고맙기도 하셔라. 스님의 염불소리에 맞추어 오체투지를 열심히 하시고 기도도 간절히 하시든데, 보통 경을 외운후 끝에 가족의 안녕과 입신을 비는 염불을 덧붙이더군요. 인간의 기원이란 교회나 절이나 역시 별반 다를게 없더군요. 30분정도 이어지는 염불소리를 들으며 구석구석 세밀하게 후불탱화를 감상했습니다. 스님화가(탱화를 전문적으로 그리는 스님, 화승이라 하지요)가 아닌 당대 최고의 궁중화가의 솜씨답게 여느 탱화들과 달리 부처들의 모습이 달랐습니다. 참으로 색다른 맛이더군요.
융릉-건릉은 솔밭이 한적한 게 산책코스로 너무 좋습니다. 저는 간만에 산을 타고 싶어 일부러 길이 아닌 길을 만들어서 융릉에서 건릉으로 갔지요. 멋진 갈대숲 속에서 한참을 헤메다가 나왔습니다.
이 곳 근처에는 개신교학원 중 가장 진보적이라 하는 한신대도 있답니다. 교내 교회 건물이 독특합니다. 또 주위에 특이하게 생긴 차집도 많더군. 어떤 차집은 배처럼 생겼어요. 기차를 개조한 찻집도 있습니다. 데이트 코스로 안성맞춤이더라구요. 이성 친구랑 꼭 가 보세요. 애인없는 선후배들은 수원 오면 제가 직접 모시도록 하지요.

19일 일요일은 교회 갔다가 오는 길에 '수원 미술 전시관'을 들렀습니다. 나혜석 - 정말 불우한 근대의 여인입니다. 근대/현대의 뛰어난 여성들의 삶은 왜 이리 파행적이어야 하는지. 아, 저의 가슴이 아프더군요. 지난 주부터 30세의 나이로 요절한 전혜린님의 수필집을 읽고 있는데, 안타깝다. 이 땅의 여인들이여.우리 여후배들은 오래 살고 싶은면 절대 선각자가 되지 마십시오.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큰 시련인지...볼 만한 작품은 없구요. 대신 나혜석의 삶을 생생한 사진, 그림들과 덧붙여 잘 꾸며 놓았습니다. 그런데 수원에서 나혜석 전시회가 올해가 2회째인걸로 기억하는데, 벌써 매너리즘 냄새가 나더군요. 제 코를 별로 믿을 것이 못되기에, 관심 있으시면 한번 들러보기를 추천합니다. 4월 1주까지는 계속 전시회를 하더라구요.

저는 화요일부터 4일간 일본 출장갑니다. 다녀와서 재미있는 이야기 들려드리지요.일본은 성문화가 상당히 개방적이라는데, 무언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기대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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