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오늘은 김수영시인 돌아가신 날입니다. 2013년 06월 16일
작성자 나눔


김수영

나에게 30원의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 대견하다
나도 돈을 만질 수 있다는 것이 대견하다
무수한 돈을 만졌지만 결국은 헛만진 것
쓸 필요도 없이 한3.4일을 나하고 침식을 같이한 돈

-어린놈을 아귀하고 하지
그 아귀란 놈이 들어오고 나갈때 마다 집어간 돈
풀방구리를 드나드는 쥐의 돈!
그러나 내 돈이 아닌 돈
하여간 바쁨과 한가와 실의 와초조를 나하고 같이한 돈
바쁜 돈-
아무도 정시하지 못한돈-돈의 비밀이 여기있다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 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1968.5.29>

-위의 시는 김수영시인의 마지막 시입니다. 김수영 시인은 1968년 사상계 1월호에 발표했던 평론 <지식인의 사회 참여>를 발단으로 <조선일보>지상으통하여 이어령과 뜨거운 논쟁을 3회에 걸쳐 주고 받습니다. 이 논쟁은 문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킵니다. 4월 부산에서 열린 펜클럽 주최 문학 세미나에서" 시여침을 뱉어라"는 제목으로 주제 발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경주에 들러 청마 유치환의 시비를 찾습니다.(유치환 시인은 1967년 교통사고로 의문의 죽음을 당했습니다.)
6월15일 밤 11시10분 경 귀가하던 길에 구수동 집 근천에서 버스가 뒤에서 덮쳐서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서대문에 있는 적십자 병원에 이송되어 응급치료를 받았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다음날(6월16일) 아침 8시50분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나의 가난은
천상병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일도 걱정 해야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 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와서
괴로왔음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


나의 가난함
천상병

나는 불품없이 가난하지만
인간의 삶에는 부족하지않다
내 형제들 셋은 부산에서 잘 살지만
형제들 신세는 딱 질색이다

각 문학사에서 날 돌봐주고
몇몇 문인들이 날 도와주고

그러니 나는 불편함을 모른다
다만 하늘에 감사할 뿐이다

이렇게 가난해도
나는 가장 행복을 맛본다
돈과 행복은 상관없다
부자는 바늘귀를 통과해야한다.



천상병

대낮의 빛은 태양입니다
밤의 빛은 전기요 등불입니다
내가 사는 빛은 예수님이고
내가 죽는 빛도 예수님이다

삼십년만에 만난 중학 동창이
으리으리한 술집에서
내 마음을 달래주는 일
그것 또한 빛은 빛이다

빛은 어디서나 있을 수 있고
빛은 있기 어렵습니다
나의 삶이여
빛을 외면하지 말게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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