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정지용시인의 신앙시들. 2013년 05월 12일
작성자 나눔

나무

정지용

 

얼골이 바로 푸른 한울을 우러렀기에

발이 항시 검은 흙을 향하기 욕되지 않도다

 

곡식알이 거꾸로 떨어져도 싹은 반듯이 위로!

어느 모양으로 심기어졌더뇨? 이상스런 나무 나의 몸이여!

 

오오 알맞는 위치! 좋은 위아래!

아담의 슬픈 유산도 그대로 받었노라

 

나의 적은 연륜으로 이스라엘의 이천 년을 헤였노라

나의 존재는 우주의 한낱 초조한 오점이었도다

 

목마른 사슴이 샘을 찾어 입을 잠그듯이

이제 그리스도의 못박히신 발의 성혈에 이마를

적시며

 

오오! 신약의 태양을 한아름 안다.

 

 

은혜

정지용

 

회한도 또한

거룩한 은혜

 

깁실인 듯 가느른 봄볕이

골에 굳은 얼음을 쪼기고

 

바늘같이 쓰라림에

솟아 동그는 눈물!

 

귀밑에 아른거리는

오염한 지옥불을 끄다

 

간곡한 한숨이 뉘게로 사모치느뇨?

걸식한 영혼에 다시 사랑이 이슬나리도다

 

회한에 나의 해골을 잠그고져

아아 아프고저!

 

 

정지용

 

누워서 보는 별 하나는

진정 멀고나

 

아스름 다치랴는 눈초리와

금실로 이은 듯 가깝기도 하고

 

잠 살포시 깨인 한밤에

창유리에 붙어서 엿보노나

 

불현듯, 솟아나듯,

부리울 듯, 맞어들일 듯,

 

문득, 영혼 안에 외로운 불이

바람처럼 이는 회한에 피어오른다

 

흰 자리옷 채로 일어나

가슴 위에 손을 여미다.

 

 

갈릴래아 바다

정지용

 

나의 가슴은

조그만 갈릴래아 바다

 

때없이 설레는 파도는

미한 풍경을 이룰 수 없도다

 

예전에 제자들은

잠자시는 주를 깨웠도다

 

주를 다만 깨움으로

그들의 신덕은 복되도다

 

돛폭은 다시 펴고

키는 방향을 찾었도다

 

오늘도 나의 조그만 "갈릴래아"에서

주는 짐짓 잠자신 줄을

 

바람과 바다가 잠잠한 후에야

나의 탄식은 깨달았도다.

 

 

그의 반

정지용

 

내 무엇이라 이름하리 그를

나의 영혼 안의 고은 불

공손한 이마에 비추는 달

나의 눈보다 값진 이

바다에서 솟아올라 날래 떠는 금성

쪽빛 하늘에 흰 꽃을 달은 고산식물

나의 가지에 머물지 않고

나의 나라에서도 멀다

홀로 어여삐 스사로 한가러워 - 항상 머언 이

나는 사랑을 모르노라 오로지 수그릴 뿐

때없이 가슴에 두 손이 여미여지며

구비구비 돌아나간 시름의 황혼길 우-

나 - 바다 이편에 남긴

그의 반 임을 고히 지니고 걷노라.

 

 

다른 한울

정지용

 

그의 모습이 눈에 보이지 않었으니

그의 안에서 나의 호흡이 절로 달도다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낳은 이후

나의 날은 날로 새로운 태양이로세

 

뭇사람과 소란한 세대에서

그가 다만 내게 하신 일을 지니리라

 

미리 가시지 않었던 세상이어니

이제 새삼 기다리지 않으련다

 

영혼은 불과 사랑으로! 육신은 한낱 괴로움

보이는 한울로 나의 무덤을 덮을 뿐

 

그의 옷자락이 나의 오관에 사모치지 않었으나

그의 그늘로 나의 다른 한울로 삼으리라.

 

 

*정지용(1902-1950)

충북 옥천 출생, 휘문고보 졸업후 일본으로 유학하여 동지사대학 영문과 졸업,

휘문고 영어교사로 16년간 재직, "카톨릭청년"잡지 편집고문, 시문학동인으로 1930년대 시단의 중요한 위치에 섬, 윤동주시인이 정지용시인에서 많은 영향을 받음, 해방후 이화여대에서 국문과교수로 재직, 경향신문 주간으로 활동, 1950년 한국전쟁때 사망. 윤동주사망(1945.2)후 5년후 정지용도 사망(49세,윤동주시인보다 15살 위임), 그리스도인 시인들에게 불운했던 시대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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