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윤동주2 2013년 02월 15일
작성자 나눔

코스모스

윤동주

 

청초한 코스모스는

오직 하나인 나의 아가씨

 

달빛이 싸늘히 추운 밤이면

옛 소녀가 못견디게 그리워

코스모스 핀 정원으로 찾아간다

 

코스모스는

귀또리 울음에도 수줍어지고

 

코스모스 앞에선 나는

어렸을 적처럼 부끄러워지나니

 

내 마음은 코스모스의 마음이오

코스모스의 마음은 내 마음이다.

 

 

참회록

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뮬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록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사년 일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쉽게 씌어진 시

윤동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사랑스런 추억

윤동주

 

봄이 오던 아침, 서울 어느 쪼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포옴에 간신히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 떼가 부끄럼울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 주어

 

봄은 다 가고 - 동경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차운 언덕에서

서성거릴게다

 

-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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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13 02-15 09:02)
해방을 불과 6개월(1945.2.16) 남겨놓고 29살의 청년으로 감옥에서 의문사하신 윤동주시인.
우리 모두에게는 순수했던 아름다웠던 20대청춘시절이 있었죠. 다른이들에게 쉽게 말하지
못했던 불꽃같이 살았던 아름다웠던 그 시절...어느덧 세월은 흐르고 우리 각자 세파에
휘둘리고 생존하기 위해 세상에 스스로를 맞추다 보니 20대 그 시절의 그 마음 그 얼굴 그 꿈들도
다 잊어버리고 스스로에게 조금은 낯선 사람이 되어버렸지요.

문득 20대 그 시절이 그리워질 때 20대의 청춘의 삶과 시가 담긴 윤동주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시집을 펼쳐봅니다. 아름다운 시들과 그 마음과 그 사랑과 그 뜻들 가운데 우리 각자의 청춘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지요. 마음에 시원한 바람 한 줄기 붑니다^^

영원한 청년 윤동주시인을 추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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