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윤동주 2013년 02월 07일
작성자 나눔

서시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자화상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새로운 길

윤동주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십자가

윤동주

 

쫓아오는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왔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바람이 불어

윤동주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위에 섰다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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