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하느님의 바보들이여 2013년 01월 15일
작성자 나눔

하느님의 바보들이여

문익환

 

어떤 일이 있어도 늙어서는 안됩니다

언제까지라도 젊어야 합니다

싱싱하게 젊으면서도 깊어야 합니다

바다만큼 되기야 어찌 바라겠습니까마는

두세 키 정도 우물은 되어야 합니다

어찌 사람뿐이겠습니까

마소의 타는 몪까지 축여주는 시원한 물이

흥건히 솟아나는 우물은 되어야 합니다

높은 하늘이야 쳐다보면서

마음은 넓은 벌판이어야 합니다

탁 트인 지평선으로 가슴 열리는

벌판은 못돼도 널찍한 뜨락쯤은 되어야 합니다

오가는 길손들 지친 몸 쉬어갈

나무 그늘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덥썩 잡아주는 손과 손의 따뜻한

온기야 하느님의 뛰는 가슴이지요

물을 떠다 발을 씻어주는

마음이야 하느님의 눈물이지요

냉수 한 그릇에 오가는 인정이야

살맛 없는 세상 맛내는 양념이지요

이러나 저러나 좀 바보스러워야 합니다

받는 것보다야 주는 일이 즐거우려면

좀 바보스러워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보스런 하느님의 바보들이여.

 

 

우리는 호수랍니다

문익환

 

하늘에선 찬란하기만 하던 별들도

우리의 가슴 속에 내려와선

서로 쳐다보며 서러워지는

우리는 호수랍니다

 

배고픈 설움으로

남의 배고픈 설움에 서로 눈물짓는

가녀린 마음들

방울방울 솟아나고 흐르고 모여

하늘이 땅이 되고 땅이 하늘이 되는

우리는 호수랍니다

 

그므밤 풀벌레 소리 들으며

서러워지던 별들

풀이파리에 이슬로 맺혔다가

아침 햇살을 받아

뚝뚝 떨어져 땅속으로 스며

실낱 같은 사랑으로 어울려

하늘처럼 맑은 우리는

호수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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