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무관심 2012년 12월 04일
작성자 장혜숙

 

눈뜨면 제일 먼저 바라보는 것이 창 밖 남산이었다.

안방 침대에 누워서 볼 수 있으니 굳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갈 필요도 없이 남산은 그렇게 잠에서 깬 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왔다.

삼각지에서 남영동으로, 청파동으로 걸어가며 자주 눈길을 남산에 두었었다.

작업실에 가서 역시 또 제일 먼저 눈에 띠는 것은 창 밖 남산이었다.

빈 방 문을 열고 들어서며 방안을 살피는 것보다 더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남산의 모습이었다.

보일 듯 말 듯 눈록 빛이 감돌기 시작할 무렵부터, 점점 봄이 익어가는 빛깔의 변화를, 어디 봄 뿐인가 무섭게 짙어지는 여름을 지나 가을, 겨울, 그리고 또 다시 순환되는 모든 시간들을 남산을 바라보며 보냈었다.

 

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 숙제로 식물채집을 하러 남산에 오른 것이 남산과의 인연으로는 최초의 기억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식물채집을 하는 것은 자연보호에 어긋나는 일이었는데

그 이후, 도서관이 흔치 않던 시절에 남산엔 도서관이 있었고, 강남에서 시내로 들어올 때 남산 터널을 거쳐왔고, 괴테 인스티튜트가 남산에 있고, 독일 비자를 받으러 간 독일 대사관이 남산의 밑자락에 있다.

어쨌든 남산은 여러 의미로 내게 가까운 곳.

그리고 아들이 남산에서 공익근무를 하던 2년여 동안 남산은 특별한 의미로 내게 가까웠고, 툭하면 남산에 오르곤 하였다.

 

그런데 요즘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남산이 그렇게 내 주위에서 쉽게 눈에 띤 것이 아니라, 내가 남산을 찾아 바라보았었다는 생각.

그렇다. 잠자리에서 일어난 침대에서 남산을 바라보았고, 거리를 걸으면서도 남산을 바라보았고, 작업실에 들어가서도 남산을 바라보았다. 밤에는 남산 타워의 불빛이 참 곱지만 내겐 전혀 유혹이 되지 않았고, 눈길이 가지 않았다. 아들은 이미 퇴근하였으니.

나는 내게 연관 있는 시간에만 남산을 눈 여겨 살펴보았던 것이다.

 

아직도 남산은 거기 그냥 그대로 그렇게 버티고 있는데 내 눈길은 남산에 머무르지 않는다. 남산이 내게 말 걸어오지도 않고 눈에 띠지도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한 가지 깨달음을 얻은 것은 <무관심>이라는 단어.

아들이 거기 근무하고 있었을 때는 늘 내 마음은 남산을 훑어왔고, 종일토록 마음의 끈이 거기 매어있었고, 이제 아들이 그곳에 없으니 나는 남산에서 마음도 눈길도 모두 끊은 것이다.

아마도 남산에 아름다운 눈꽃이 핀다거나, 새 봄 벚꽃이 구름처럼 번져있으면 가끔 눈길을 주게 될 테지만, 이미 내 마음은 남산에서 무관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무관심이란 정말 무서운 것을 체험하고 있다. 어떤 영화가 천 만 관객을 넘어서도 그것이 나를 전혀 유혹하지 않아 나는 천 만 명중의 한 명에도 끼지 못하는 사람이어도 전혀 상관없이 잘 지내고 있다. 세상이 온통 무엇 때문에 들끓어도, 냉랭히 얼어붙어도, 내가 관심 없으면 끓는 물이나 얼음물이나 내겐 전혀 상관 없는 것이다.

무관심이라는 명제가 기독교인인 나로서는 새삼 깜짝 놀라운 깨달음이고, 내 자신이 참 독하고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밖의 기온이 어떻든 우리 집은 따뜻하고, 다이어트로 한 끼 거를 때도 있지만 원하면 얼마든지 배를 채울 수 있고, 외출할 때는 두터운 코트도 있다. 때가 되면 최소한의 생활비는 조달할 수 있고, 몸에 이상이 생기면 선뜻 병원으로 달려갈 수도 있다.

그냥 이대로 살면 된다. 별 걱정 없이 편안하다. 그런데 이런 상태가 불안함은 어쩐 일일까…….. 불안하다. 기독교인이기 때문이다. 교회에 다니기 때문이다. 교회에 다니면서 듣고 배운 말들이 많아 이 편안하고 순조로운 삶 속에서 나 외의 것에 무관심한 것이 자꾸만 걸린다.

 

아들이 남산 근무를 마치고 더 이상 그곳에 출근하지 않는 시점에서 내가 남산에 눈길이 가지 않는 것을 갑자기 알아 차렸고, 내 속에 뭉쳐져 있는 나와 무관한 것에 대한 무관심을 발견하게 되었다. 무관심은 참 무섭다. 정말 무섭다.

내 아들이 근무하던 그곳에 지금도 여전히 다른 아들들이 남아서 내 아들이 하던 일을 하며 혹독한 추위 속에 있는데 나는 그곳 일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남산과 아들>의 이야기는 아주 작고 사소한 이야기지만, 이렇게 <무관심>이라는 것에 눈이 뜬 나의 삶에 어떤 변화가 있기를 기도한다. 관심을 둬야지. 나와 관계없어도 관심을 둬야지.     

내가 춥지 않아도, 내가 배고프지 않아도, 내가 편안해도, 내 문제가 아니어도, 나 밖의 것들에, 우리 울타리 밖의 세상에 관심을 둬야지!!!

 

이 겨울, 기도가 길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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