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아주 작은 이야기 2012년 11월 16일
작성자 장혜숙

 

친구들을 만났다. 참았던 이야기를 쏟아낸 것처럼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공식석상에서, 그리고 한 밤을 지새운 잠자리에서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이야기를 하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놨다직업에서는 이미 은퇴를 한, 그리고 내년 2월엔 모두 은퇴할 거의 은퇴가 끝나는 우리 모임이다.

고마움도 많고 가끔은 서운함도 있는 며느리 사위 이야기, 저절로 말문이 터지는 손자손녀 예쁜 이야기, 성공한 자식자랑, 여자들이 한 밤을 지새우면서도 나오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나이 값 하느라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두터워졌고 우리들의 대화에 삼가야 할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혼기를 훨씬 넘겼지만 아직 미혼인 자식, 혼인은 했으나 몇 년 째 아기를 갖지 못한 자식, 번듯한 대학 졸업하고 아직 실업 상태인 자식을 둔 친구들이 여럿 끼어있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서로 화제를 조심해서 올리는 것이다.

 

저녁 식후 공식석상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아직 현역에 있는 친구들에게는 참 반가운 소식일 것도 같은 정년 연장이야기. 그런데 모두들 좋아할 것 같은 이 대목에서 친구들의 목소리는 커졌다. 전업주부인 나로서는 이해가 잘 안되었지만 분위기의 흐름을 파악하게 되면서 그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다.

일손을 놓고 황망한 시간을 경험하게 될 연령대인 우리들 모임에서 반기지 않는 정년 연장은 뜻밖이었다. “자식들이 취업도 못하고 놀고 있는데, 청년 실업이 지금 얼마나 심각한 지경인데 정년연장이야? 우리가 할 일 나눠서 젊은 애들 일자리 줘야지.” 이런 목소리는 화까지 섞여있어서 정말 청년 실업에 대한 심각성을 더 깊이 깨닫게 되었다. 우리 모두는 은퇴의 당사자들이기 때문에 이러한 발언에서 청년실업의 심각성은 더 크게 느껴졌다. 연령대에 따라 적합한 일은 서로 다르지만, 어쨌든 내가 사회활동 더하는 것보다 자녀 세대들에게 일자리 주는 것은 더욱 절박한 소망인 것이다.

금년에 전시회를 한 사람이라고 불려 나가서 나도 이야기할 순서를 갖게 되었다. 나는 <>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애틋하고 아련한 그리움으로 아직도 가슴 한 켠에 자리잡고 있는 젊은 날의 <>. 모두들 잊지는 않았겠지? 잊었다면 다시 꿈을 꾸기 시작하라. 우리는 새로운 꿈을 가질 수 있는 나이. 꿈꾸던 일을 실행하라. 내가 꿈을 이루는 그 순간 누군가가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한다. 그러니 모두들 누군가의 새로운 꿈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를 했다. 친구들은 모두 약속했다. 은퇴 후의 꿈을 꾸기로.

 

다시 잠자리에서 나눈 이야기들. 사전 의료의향서와 사전 장례 의향서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다.

사전 의료의향서는 희생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을 때 연명치료(생명 유지 장치, 통증 조절 조치, 인위적인 영양공급)에 대한 나의 의견, 그리고 그 적용시기(뇌기능의 심각한 장애, 질병 말기, 노화로 인한 죽음 임박)에 대한 나의 결정을 미리 작성하고 공증해두는 일이다.

사전 장례의향서는 부고, 장례식, 부의금, 조화, 염습, 수의, , 시신처리에 관한 일들을 어찌 해야 할 지 나의 장례식을 자식들에게 미리 부탁해두는 일이다.

자손들이 그런 문제로 갈등하지 않도록, 그리고 나 자신이 죽는 순간까지 죽음 이후까지 스스로 내 인생을 설계할 권리를 누리는 차원으로 이 두 가지를 준비하자는 뜻에 모두들 한 목소리로 공감했고, 인터넷에서 자료를 다운받아 공유하고 실행하자는 이야기였다

 

평생을 열심히 일했으니 이제 자유롭게 쉬고 나머지 인생을 즐기면 되는 것일까…………

이제 내가 꼭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해본다. 정말 나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이렇게 하고 싶고, 가능한 그런 기회를 만들고 싶다. 별 것도 아닌, 전혀 특별할 것도 없는 <>이다. 지금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밥을 잘하는 일이다 .

뿔뿔이 흩어진 자식들과 함께 모여 다시 시간을 낼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땐 나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는 달리 아주 성실한 밥상을 차리고 싶다. 함부로 먹고 사는 나 자신과 자식들에게 이제는 제대로 된 참살이의 밥상을 마련하고 싶다.  밥상 뿐만 아니라, 생활도 새롭게 훈련을 하고 싶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 자세를 바르게 앉는 것, 물과 전기를 절약하는 일, 이런 간단한 일들을 착실히 지키며 지내는 시간을 마련하고 싶다.

이제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은 한시적으로나마 다시 바른 엄마가 되는 것, 올바른 생활방식이라고 여겨지는 방식대로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어린이를 바르게 교육하듯이 다시 살아보는 것, 이것이다.  일년에 며칠 씩 모여 가족 공동체의 바른 생활 수련을 하면 좋겠다.  그 때 내가 맡은 일을 기꺼이 할 것이다. 불편해도 바른 삶의 방식으로.

운명이다. 젊어서도 늙어서도 엄마이고 주부이고 부엌데기이고, 그 끈을 놓지 못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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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아이엄마(12 11-17 11:11)
저의 10년후의 모습도 글쓰신분과 닮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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