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치매 2012년 08월 23일
작성자 윤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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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개인적으로 만난 적은 없지만 <말코글방>이라는 글방을 통해 성함만 아는 

천양곡 (신경정신과 전문의/시카고 의대 임상강사, 시카고 중앙일보 전문의 칼럼니스트 역임/전주고-서울대 의대 졸/전주출신) 선생의 글을 읽다가 교우님들과 나누고 싶어 그 일부를 여기 옮깁니다.


- 앞 부분 생략-

 

지난 10여년 넘게 치매 연구에 들어간 돈은 천문학적 숫자다.

그러나 아직까지 생존 시의 확실한 진단(오직 사 후의 부검만이 진단이 확실), 확실한 치료약,확실한 검사 방법을 알아내지 못했다.

어느 사회학자는 아프리카의 수많은 청소년들이 죽어가고 있는 에이즈 연구에

치매 연구비의 몇 십분의 일 만 부어 넣었어도 에이즈는 아마 해결됐을 거라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외치고 있다. “늙은 백인노인들이 아프리카의 청소년보다 더 오래 살고 싶으냐?” 일리가 있는 얘기지만 병 자체를 따져놓고 보면 치매가 에이즈 보다 훨씬 무서운 병이다.

 

“ 장터로 엿 팔러 갈람니다.”

그리 크지도 뚱뚱하지도 않은 몸집, 더덕껍질 같은 주름살로 엮어진 둥글넓적한 얼굴이마치 왕년의 명배우 김승호 씨의 지게꾼이 생각나는 치매노인의 말이다.

“ 그러시죠”

“ 딸 시집갈 때 돈이 있어야 해요”

“그러시겠죠”

“근데 버스 탈 돈이 없어요. 돈 좀 주세요” 지그시 감은 노인의 움푹 파인 두 눈이 잠시 젖어든다.

“ 얼마나....”

묻는 이의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노인은 자기가 한 말을 까맣게 잊고 복도 저편으로 걸어 나간다. 보통 치매환자들의 기억은 순서 없이 토막토막,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없었던 것 같기도 하면서 흐리멍덩한 머릿속을 빙빙 돌다가 사라지고 만다.

 

노인은 소년시절에 꿈이 있었다. 코 뚫린 소의 멍에를 쥐고 이랴이랴 워워하며

논밭을 가는 농부가 되는 게 소원이었다.

그러나 막내아들인 그는 땅 한 뻠 물려받지 못했다.

젊었을 땐 홧김에 난봉꾼으로 놀다가 장가든 후 딸이 생기자 사람이 확 변했다.

생리학적으로 남자들은 애 아버지가 되면 일시적으로 테스토스테론 홀몬 분비가 떨어져 좀 더 성숙하고 자상한 남성이 된다.

번식의 필요성이 적어져 더 이상 Mate를 쫓아다니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의 책임을 맡기 위해 그는 장터의 엿장수로 변신했다.

장이 서는 읍마다 엿판을 메고 다녔다. 찰랑찰랑 엿가위 춤으로 사람들을 모아놓고 엿을 팔았다.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인생의 축소판 같은 장터에서 먼지를 뒤집어쓰며 평생을 엿장수로 살았다.

 

어느 땐 자신의 등에 얹힌 엿판의 무게가 논을 갈고 있는 소등에 얹힌 멍에의 무게처럼 느껴졌으나 딸한테 만은 가난의 대물림을 주지 않으려고 열심히 일했다.

어느 날 갑자기 장터에서 쓸어져 몇 년간 뇌졸증으로 고생하다가 결국 치매환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가난은 가능 한한 인간이 피하고 싶은 것 중의 하나다.

가난은 우리에게 강건너 불같이 자기와 상관없는 것도 아니다.

졸지에 남편을 잃은 중년과부, 사업에 실패한 사업가,

퇴직금을 몽땅 주식에 날려버린 명예 퇴직자 등 누구나 가난을 만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지배 계급은 가난한 계층을 가난 속에 계속 남겨두려 했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자들을 미워하지 않도록 세뇌화도 시켰다.

이조의 양반제도, 미국의 흑인 월페어 정책을 예로 들 수 있겠다.

 

근세에 들어 이런 가난의 대물림 정책에 반대하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운동이 일어났다. 그 결과 공산주의, 사회주의, 노동조합 그리고 고발문학 등이 튀어나왔다. 도스토에프스키의 소설 ‘가난한 사람들’은 도심의 빈민굴에 사는 중년 남자와

불행한 소녀와의 사랑을 통해 당시 사회의 부조리를 파헤친 고발문학의 하나였다.

 

지금은 세계화의 부작용 때문에 온 지구촌이 몸살을 앓고 있다.

시장경제의 자유화, 소비위주의 금융정책도 빈부의 격차와 실업율만 올려놓았다.

특히 가난을 뼈저리게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의 아우성은 미국의 월가를 점령했고 한국에도 청년 실업문제는 폭발 직전의 뇌관으로 숨어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나 정부들이 지금 당면한 문제를 쉽게 풀어나갈 뾰족한 수는 없는 것 같다. 경제의 문외한인 내 생각으론 개개인이 욕심 부리지 말고, 크래딧 카드 긁지 말고 자기 주머니에 있는 만큼 만 쓰고 사는 옛날의 기본적 생활자세로

돌아가는 게 최선이란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늙은 치매환자의 모습 너머로 사람냄새와 가난으로 찌든 장터에서 일생을 보낸 엿장수의 삶을 보고 있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딸 시집보내기 위해, 가난의 대물림을 주지 않기 위해

무거운 짐을 지고 질질 끌려가는 소처럼 그날그날의 생활에 허겁지겁 살아온 장터의 엿장수였다.

 

엿장수는 이제 거의 모든 인생살이의 기억을 잊어가고 있다.

그러나 가난만은 죽어버린 뇌세포라도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다.

가장의 멍에와 가난은 정녕 치매로 부터도 해방될 수 없는 걸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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