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우리가 꽃들에게 지은 죄 (2) 2012년 02월 05일
작성자 장혜숙

<우리가 꽃들에게 지은 죄 2>

 

날씨가 제법 겨울답다바깥이 추우면 안도 춥고, 바깥이 따뜻하면 안에서도 덜 추운 것이 맞는 법 같은데 우리집은 바깥이 추울 때는 안의 난방을 더 많이 하고, 바깥이 안 추울 때는 보통의 난방으로 거의 일정한 실내온도를 따뜻하게 유지하고 산다.

그 온도의 수치는 공개하기에 좀 부끄러울 정도의 높은 겨울 실내온도이다.

그래서 지금 90노모에게 몸녹일 전기제품을 마련해드리고 전체온도를 낮출까 많이 생각중이다.

그만큼 우리집 실내온도는 내가 용납할 수 없이 높아서………

 외출에서 돌아오면 방긋웃는 꽃송이들이 나를 맞는다지금 피어있는 꽃은 활짝 핀 덴드로비움과 목을 쭈욱 내뽑고 피어난 꽃기린이름을 잘 모르지만 석곡 한 종류가 진분홍빛으로 피어있다. 계화나무와 레몬트리도 그 향을 한껏 자랑한다.

계화나무는 초겨울 선선할 때 피는데 아직 조금 남아있고, 레몬은 지중해성 기후에서 일년에 다섯 번까지도 수확한다.

추위를 뚫고 돌아온 집에서 이렇게 나를 맞는 꽃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그러나 곧 그 꽃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동설목은 겨울에 피는 꽃이지만 겨울을 잘 느끼지 못하는 우리집에서 지금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다.

화분에 물을 줄 때마다 꽃을 피우지 못하는 식물들에게, 철모르고 꽃을 피어낸 식물들에게, 모두에게 다 그저 미안할 뿐이다. 나는 화분 가꾸기에 마음을 많이 쏟는다. 마음을 두는 만큼 내가 식물들에게 잘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겹쳐서 들곤한다.

때맞춰 정성껏 물을 주고, 흙이 굳은 것 같으면 작은 화분이지만 숟가락으로 흙을 뒤엎어 갈아주고, 한정된 흙 속에서 살고 있으니 필요한 대로 영양제도 주면서 키우는데 이것만으로 식물들에게 다 잘해주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나는 가끔 나의 화분들, 거기서 사는 식물들에게 그저 미안한 마음이 든다.

 식물은 제 철에 따라 햇빛도 쬐고 비도 맞고, 추운 겨울에 떨기도 해야 건강히 자라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다. 다년생 화초들의 봄 꽃은 40일 정도의 겨울잠을 자야 좋은 꽃이 핀다고 한다.

나무들은 추위가 시작되면 다음해에도 계속 살기 위해 잎을 다 떨궈버리는데, 그 원리를 무시하고 따뜻한 겨울환경 속에서 추위도 모른 채 지나도록 하는 것, 이것이 내가 식물들에게 저지르는 만행이다.

가끔 방문객들이 오면 잎이 푸르고 싱싱한 나무나, 때아닌 꽃이 아름다운 화분들을 보고 아주 좋아하며 잘 가꾼다고 칭찬까지 한다. 순전히 사람의 입장에서만 그런 것이다.

아열대 기후에 익숙한 식물들이 아니고서는 따뜻한 아파트 실내에서 겨울을 나는 나무나 화초들은 그 따뜻한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 것인지,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는다. 한 여름에 푸르고 싱싱한 잎을 보곤 감탄하지 않더라도, 추운 겨울 실내에서 싱싱한 잎을 보면 감탄한다. 식물들의 생태환경이야 어떻든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좋은 것이다.

 

이름 모를 석곡의 진분홍꽃 몇 송이는 11월 초에 개화하여 지금까지 피어있으니 참 이상한 일이다우리 가족은 그 꽃을 보며 이런 말장난을 한다. “얘는 자기가 생화인 걸 잊어버렸나? 정말 지가 무슨 조화인 줄 아나봐.”

시들지 않는 꽃이 고맙다가도 걱정이 되고, 강한 생명력을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지지않는 그 꽃을 불안한 마음으로 살펴보곤 한다.

레몬 열매는 콩알만큼 자랐다. 몇 개는 꽃잎이 말끔히 떨어졌고, 몇 개는 말라붙은 꽃잎이 그대로 부스스한 모습으로 붙어있는데 그냥 놔두고 보는 중이다.

처음 우리집에 온 해에는 열매를 맺지 못했다. 다 내 잘못이다. 꽃은 많이 피었었는데그 향기에 우리는 얼마나 행복했었던가.

문제는 꽃이 질 무렵에 생겼다. 후줄근하게 말라가는 꽃이 지저분하여 시들기 시작한 꽃은 다 따버리고 나무를 깔끔하게 잘 정리했다. 꽃이 자연적으로 낙화할 때까지 그대로 두어야 열매가 맺는다는 것을 생각지 않고 보기좋은 상태가 지난 것을 미리 다 제거해버린 것이다.

이 또한 얼마나 인간중심적인 사고방식인가. 꽃들의 생태리듬을 뚝 끊어버렸으니 얼마나 미안한 일인가. 지금 레몬 나무는 말라서 지저분한 꽃이 가지 여기저기에 붙어있지만 나는 그냥 그대로 두고 본다. 내 눈에 띠지 않을 정도로 작은 열매가 그 꽃에 붙어있으리라는 기대감 때문에.

몇 개의 열매는 콩알만큼 큰 상태인데, 다 크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레몬나무에 노란 열매가 매달려있는 모습을 미리부터 그려보곤 한다.

열매가 노랗게 익기 시작하면 나는 누군가에게 말 걸기를 할 것이다.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고, 레몬처럼 상큼한 인사말을 건네고, 레몬이 꽃피고 열매 맺고 익어가는 시간의 타래를 풀어놓아야지. 말 걸기의 시초는 레몬이 노란 빛을 띠기 시작할 무렵이 핑계가 좋을 것 같으니

지중해성 기후에서 생육이 적합한 레몬 한 그루 화분에 심어두고 그 나무에겐 고문을 하며, 내 마음은 꿈을 꾸며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머지않아 봄이 오고 꽃이 피면, 목적없는 일에 시간을 절대로 투자하지 않는 이웃들에게도 우리집 식물들에게서 얻는 여유를 나눠줘야겠다.

주말에 시간 있으세요? 우리 집에 와서 차 함께 마셔요.”

무슨 일 있으신가요?”

아니요, 아무 일도 없어요. 그냥꽃이 피어서.”

꽃들은 꽃잎을 열고, 나는 마음을 열고 입을 열고 대문을 활짝 열어두는 봄이 되면 좋겠다. 그것이 나의 화분들에게, 나의 식물들에게 조금이나마 미안한 마음을 씻는 일이 될 것 같다.

 계절을 잊고 혹사당하는 철모르는 우리집 화분들, 겨울이나 봄이나 사람에 의해 갖추어진 기온은 똑같지만 해바라기하는 시간이 달라지고, 창을 통해 들어오는 볕이 달라지니 그들도 봄을 느낄 것이다. 인공의 조건이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을 그들의 생체 시계는 세포에 새겨져 있어 때가 될 때마다 신호를 보내줄 것이다.

오늘, 우리집 식물들은 <입춘>이라는 메시지를 다 받은 것일까?

 

2012년 입춘절기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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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숙(12 02-05 06:02)
글을 쓰면서 줄을 바꾸면 왜 여기서는 꼭 한 줄이 떼어서 기록되는지 모르겠네요. 다만 줄을 바꿨을 뿐인데 문단을 나눈 형태로 올라가니 답답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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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아(12 03-11 09:03)
시스템의 문제이지만 그래서 또 더 많은 행간을 읽어내는 묘미까지 느끼고 갑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근데 입춘이 언제 였는지....종종 들러서 좋은 글 읽고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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