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시인 도종환 | 2011년 09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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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시사랑 | |
별 하나 도종환
흐린 차창 밖으로 별 하나가 따라온다 참 오래되었다 저 별이 내 주위를 맴돈 지 돌아보면 문득 저 별이 있다 내가 별을 떠날 때가 있어도 별은 나를 떠나지 않는다 나도 누군가에게 저 별처럼 있고 싶다 상처받고 돌아오는 밤길 돌아보면 문득 거기 있는 별 하나 괜찮다고 나는 네 편이라고 이마를 씻어주는 별 하나 이만치의 거리에서 손 흔들어주는 따뜻한 눈빛으로 있고 싶다
카이스트 도종환
젖은 꽃잎 비에 다시 젖으며 수직으로 떨어져내렸다 - 우리는 이 학교에서 행복하지 않습니다 남아 있는 꽃잎들이 그렇게 말하며 울고 있었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 행복하지 않다 카이스트 울타리 밖도 여전히 카이스트 징벌적 통보를 받고 차등 대우를 받고 탈락하고 천천히 잊혀간 꽃잎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카이스트보다 더 어린 꽃들도 불행하고 카이스트보다 더 진도가 나간 인생들도 이 밤 혼자 쓴잔을 마시며 빗발 몰아치는 숲의 나뭇잎을 보고 있다 우리는 겨우 이런 세상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흔들리는 나무 위에서 하루하루 끔찍한
은은함에 대하여 도종환
은은하다는 말 속에는 아련한 향기가 스미어 있다 은은하다는 말 속에는 살구꽃 위에 내린 맑고 환한 빛이 들어 있다 강물도 저녁햇살을 안고 천천히 내려갈 땐 은은하게 몸을 움직인다 달빛도 벌레를 재워주는 나뭇잎 위를 건너갈 때 은은한 걸음으로 간다 은은한 것들 아래서는 짐승도 순한 얼굴로 돌아온다 봄에 피는 꽃 중에는 은은한 꽃들이 많다 은은함이 강물이 되어 흘러가는 꽃길을 따라 우리의 남은 생도 그런 빛깔로 흘러갈 수 있다면 사랑하는 이의 손 잡고 은은하게 물들어갈 수 있다면
제일 도종환
사흘째 눈이 내렸다 부엌으로 들어오는 물길도 얼어붙은 채 몸을 풀지 않는다 녹지 않은 눈과 목련나무 언 가지에 잠시 몸을 얹은 채 이마를 드는 겨울 햇살을 삭풍이 다가가 자꾸 흔든다 창가의 푸른 관엽 몇 그루가 그걸 내다보고 있다 분에 담긴 몇촉의 난과 어린 싱고니움 잎도 푸르다 엄동에도 푸른 잎을 지니가 있는 게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사나운 바람 속에서 살지 않았으니 하고 말하긴 쉽지만 안팎 없이 모진 세월을 산다는 걸 알고 있지 않은가 오늘은 한 해의 마지막 날 혹한 속에서 한 평 남짓한 햇살을 마주하고 앉아 고요한 몇 시간을 혼자 보낸다 모진 세월 속에서 푸르게 자신을 지키는 이들이 있는 걸 안다 그들이 있어서 고맙다 혹한이 몰아치는데도 가까이 가보면 그들은 박하향 같은 걸 지니고 있다 작은 것에도 크게 위안받는 날이 많아졌다 눈구름은 머리 위를 떠돌고 숲에는 곧 그늘이 들겠지만 이 오후의 고요한 온기가 조금만 더 연장되면 고맙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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