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씨 뿌리고 왔습니다. 2011년 05월 17일
작성자 권혁신

 

 

저번 주말에 저는 충북 음성에 있는 농촌선교원에 다녀왔습니다.

금요일 저녁에 가서 토요일 저녁에 돌아오는 1박 2일 일정이었는데요.

예상보다 훨씬 깡촌(?)이더군요.

 차를 타고 한참을 들어갈 뿐더러...

화장실은 푸세식...

편의점은커녕, 슈퍼도 없는...

진짜 시골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저보다 2~30살가량 나이 많으신 귀농 희망자분들(물론 저보다 조금 어린 친구들도 있었습니다)과 하룻밤을 함께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만 새벽 3시 30분에 난데없는 전화가 오는 바람에...

잠을 설치고... 물론 주변에서 코 고는 분들이라든지, 바닥이 뜨거우면 잠을 못 자는 제 약점도 한 몫 했고요.

그렇게 해서 새벽 6시가 조금 넘어 일어나서 일을 하려고 보니 계속 졸더라고요.

(중간에 농기구 운전할 땐 아예 풀밭에 엎드려 자기도 했습니다만)

하필 그날은 목사님 주일 설교 말씀대로 씨 뿌리고 파종 심는 날이었습니다.

별 생각 없이 엉터리로 심고 왔는데(씨앗의 세 배 높이의 흙을 덮어야 하는 건데 설명을 제대로 듣지 않고서는 땅을 마구 판 다음에 심고서는 흙을 잔뜩 쌓은 겁니다) 주일 아침 목사님 설교 들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일까 고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끊임없이 말하는 사람, 남을 숨 막히게 하는 사람, 잘난 척하는 사람, 자기중심적인 사람, 가식적인 사람, 신령한 척하는 사람, 권위적인 사람, 요구가 많은 사람, 입만 열면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 따분한 사람….

내가 이런 사람인 게 아닐까 스스로 돌아보게 됐습니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런 거 같았습니다.(특히나 좋아하는 사람에게까지)

목사님이 말씀하시고자 한 요지는 그것이 아니겠지만 그것부터 신경이 쓰이더군요.

바로 하루 전에 진짜 씨앗을 뿌리고 왔지만...

정말 중요한 씨앗은 뿌리기를 외면하는 것이 아닐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요새 전세대란을 몸소 체험하고 있습니다.

저와 누나 두 사람이 살 집 한 칸 장만하는 게 이리도 어렵다는 걸...

그것도 억 소리 나는 정도의 돈은 필요하다는 것도 배우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가장 집값이 싸다는 우리 동네인데도 그렇습니다.

어제는 선교회 모임을 가다가 교회 근처 복덕방에 붙은 메모를 보고 오늘 다시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하마터면 저도 청파동 주민이 될 뻔했지요.

그러나 누나가 반대하더라고요. 지금 일하는 곳에서 너무 멀다고...

그래서 몇 군데 안 돌아보고 다시 와서 이번엔 누나가 일하는 곳 근처를 둘러봤습니다.

한 군데는 너무 낡았습니다.

다른 한 군데는 넓고 깨끗하고 다 좋은데 한참을 올라가야 합니다. 바로 산 옆이어서 마을 버스 종점입니다.

 

결국은 원점으로 돌아와서 집 근처를 돌아봤습니다.

거기서도 맘에 드는 곳을 찾지 못해 백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누나에게 신경질을 부렸죠.

그나마 괜찮은 곳을 발견했는데,

누나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언제 나갈지 모른다고 계약을 포기한 것입니다.

 

어이가 없었던 저는 알아서 하라고, 다만 서울 밖으로 나가면 따로 살자고 했습니다.

제가 잘한 것은 절대 아니란 것을 알지만,

사실 누나가 너무 까다롭기도 하고...

또 하루 종일 돌아다니면서 몇 군데 보지도 못해 지쳐버렸습니다.

이 이야기랑 씨 뿌리는 이야기는 별 상관이 없지만...

그냥 적어보고 싶었습니다.^^

이럴 때엔 이런 마음과 참을성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 집안의 가장, 또 한 업체의 대표, 혹은 한 작품을 써나가는 작가로 일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강하게 듭니다.

 

참 부끄럽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하고...

그래도 별 수가 없지요. 그냥 살아가는 수밖에. 조금이라도 변하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그리고 저의 마음과 또 만날 사람들의 마음에 씨를 뿌리려고 해야겠습니다. 음성의 그 밭에 제가 엉터리로 심은 씨앗 중에서도 몇 개는 새싹을 튀울 것이고...

이 세상에도 새싹이 돋아날 테지요.

그런 소망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이 전세 지옥의 서울 하늘 아래에서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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