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영원길 산책 소감. 2011년 04월 26일
작성자 이광욱
영원길 산책 소감

 

영원길은 경기도 남양주군 금곡동 홍유릉 옆의 약 3km정도 이어져 있는 산책길이다. 홍유릉 안의 울창한 나무들 사이길이니 숲길이고 문화재부근이라 개발제한구역이기에 밭과 논이 연이어 분포하고 있는 논밭길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오면 약 2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이다. 작년에 여름에 이어 가을과 겨울 계절마다 서너번 다녀갔으니 이번 봄산책으로서 영원길의 사계절을 모두 감상한 셈이다.


개인적으로 영원길을 처음 와본 것은 80년대 초반 외할머니께서 일당으로 마늘수확하러 가시는 길에 손자들을 데려가셨기 때문이다. 지난 30년 사이에 이 동네도 경기도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개발붐이 불어서 거의 모든 것이 달라질 정도로 많이 변했는데 문화재 부근이기에 영원길과 그 주변은 지난 30년 동안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해 올 수 있었다.


외할머니는 방학 때마다 오는 서울손주들을 위해서 시골의 자연과 농촌일을 틈틈이 경험하게 해 주셨다. 삼촌들에게 부탁해서 부근 마석 복숭아과수원에 다녀오고 오는 길에 천마산에 들리고 기차를 타 본 추억,금곡리 부근의 맑은 물이 흐르는 시냇가에서 물놀이도 해 보고 곤충체집을 한 추억,할머니가 가꾸시는 텃밭에서 콩과 옥수수를 수확해 본 체험 등이 있다. 외할머니는 돌아가시는 해 봄방학 때 들린 나에게 가꿀 밭들을 보여주시며 들깨와 딸기 등의 농사계획을 말씀해 주실 정도로 천상 농부셨다.


그런 할머니가 가르쳐 주신 영원길은 삶에 지친 나에게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며 산책하여 마음과 몸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좋은 산책로가 되어 주고 있다. 작년 여름에 와서 보았던 배과수원의 배열매 그리고 초록물결치던 논,푸른 신록의 나무들과 숲 그리고 가을에 보았던 누렇게 익은 논들판 그리고 아름답게 물들었던 오색단풍들 또한 겨울에 추수가 끝난 들판에 들어가 걸어보았던 추억 그리고 걷기명상을 통해 회복되었던 나의 몸과 마음!


이번 봄에는 영원길에서 초록 새싹이 나오고 있는 나무들과 아름답게 피어난 벚꽃,진달래꽃,모란꽃,개나리꽃,산수화꽃,배꽃 등의 봄꽃들과 벼농사의 처음 단계로서의 볏씨를 뿌려놓은 모판 그리고 밭농사의 시작으로서 잡초와 병충해를 막기 위해 비닐을 씌운 멀칭작업을 볼 수 있었다. 영원길에 오게 되면 이렇게 사계절에 어울리는 자연들과 논과 밭에서 이루어지는 농사의 풍경을 볼 수 있다. 경기도의 다른 지역은 개발로 인해 논과 밭이 많이 사라져서 이와 같은 풍광을 보기가 쉽지 않은데 영원길은 변하지 않은 농촌풍경을 간직하고 있어서 적어도 내게도 어린 시절의 추억과 함께 자연과 농업을 접할 수 있는 재미와 즐거움을 선사하는 보석과 같은 내가 사랑하는 장소들 중에 하나이다.


1시간에 걸쳐 산책을 마치고 단골 콩나물국밥집에서 가서 맛있는 콩나물국밥을 먹었다. 이 집도 몇 년째 다니고 있는 단골집인데 콩나물국밥만 전문적으로 팔고 있는 집으로 꾸준히 찾는 달골들이 있어서 그런지 없어지지 않고 존재하고 있어서 이곳을 찾는 나에게 먹는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점심을 먹고는 약수를 뜨러 버스를 타고 인근 봉인사로 향했다. 버스 안에서 비구니스님과 동석을 했는데 그분이 여자운전기사와 대화를 나누는데 엿듣게 되었다. 인도에서는 사람들이 많이 웃고 인정이 있다는 것과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선하게 먹는 것만큼 몸에 좋은 약이 없다는 말씀을 하셨다. 의도하지 않은 좋은 법문을 비구니스님으로부터 버스 안에서 듣게 돼서 기분이 좋았다. 약수를 떠서 바로 버스를 타고 나오는데 차창밖으로 펼쳐진 숲 그리고 나무,꽃 그리고 밭과 과수원, 사슴농장,소목장 등의 시골풍경과 불어오는 시원한 봄바람이 또한 기분을 좋게 해 주었다.


최근의 길어진 실업으로 인해 마음과 몸의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는데 이렇게 한나절 동안의 서울이라는 대도시를 탈출해서 자연을 접할 수 있고 자연 속에서 걸을 수 있었던 작은 여행이 마음과 몸에 생기를 불어 넣어 주었다. 세상 속에는 여러 어려움들과 들려오는 좋지 않은 소식들로 인해서 어두운 죽음의 힘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데 그래서 의지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내 마음까지도 어두워지고 침체와 좌절과 절망에 빠지기 쉬운 것이 현실이다.


말씀과 기도와 찬송 등의 종교활동도 내 마음에 밝은 생명의 힘을 불어넣어주는 좋은 방법이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접하고 감상하며 그 자연 속에서 산책하는 것도 또한  내 마음에 밝은 생명의 힘을 불어넣는 세속적인 방법중에 하나이다. 한편으로는 작은 여행을 다녀오는 길에 차 안에서 좋은 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로 내 마음에 밝은 생명의 힘을 불어넣는 좋은 방법이다. 이렇게 오늘 하루 영원길 산책을 다녀옴으로써 기분을 전환하고 생명의 기운으로 마음을 채울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이 길을 가르쳐주신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시는 외할머니께 감사드린다. 자본주의체제가 끊임없이 공간과 장소를 변화시키고 있는데 우리 각자가 장소애를 가지고 있는 장소들만큼은 변하지 않고 보전되었으면 한다. 세상에서의 생존의 문제들과 여러 실존적 고뇌들 가운데 지치기 쉬운 우리들에게 그래도 찾았을 때 평안함과 즐거움과 기쁨과 생명의 힘을 불어넣어주는 장소들이 여럿 존재해야 그나마 살맛이 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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