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나이를 먹네요. 배가 부르네요. 2010년 12월 27일
작성자 장혜숙

세밑의 어지러운 마음.

긴 인생여정의 한 지표를 지나가며

나이를 생각하게 되었다.

이 나이.

지나가는 것인가.

돌아가는 것인가.

나이가 돌아갈 리야 없지만 생을 돌아보기는 한다.

한 때는 시몬느 베이유같은 여자가 좋았고

한 때는 시몬느 드 보봐르가 매력적으로 보였던

그 푸르른 시절이

 

약간의 현기증을 느끼며

박어진의 <나이먹는 즐거움>도 읽고 (3년 전에 선물받은)

보봐르의 <나이의 힘> (10년전에 구매한)

이런 책들을 다시 읽어본다.

어, 안 버리고 책꽂이에 그냥 꽂혀있었네.

 

환갑이라는 낯 선 단어가 나를 힐끔힐끔 쳐다본다.

애써 외면하는데 문득문득 시선이 마주치곤 한다.

그 경계선을 넘나들며 상념은 너울처럼 춤춘다.

환갑 넘었다.

아니, 아직 환갑 안 되었다. 오늘은 환갑과 거리가 좀 있다.

 

돌아보는 세월 속에 묵직하게 자리잡은  가난이라는 단어.

나의 가난, 한 개인의 가난

우리들의 가난, 공동체의 가난

그 세월을 참 행복하게도 깔깔거리고 웃으며 보냈었는데

이 풍요의 세월엔 웃음을 많이 잃었다.

웃음을 잃는 아픔.  그 보다 더 큰 아프고 아픈 마음은

잃어버린 눈물.

눈물을 잃고 눈물많은 오늘을 건조하게 산다.

눈물을 잃다?

돋기는 한다. 그렇다면 어딘가에 고여있을 것이다. 흥건히...

 

내가 깔깔깔 까르르 호호호호 웃던 시절의

어머니들 아버지들에게

지금 그런 부모가 아닌 내가 감히 나도 부모가 되었다고

이 詩를 바친다.

아직 제대로된 부모도 못된 것 같은데,

나이는 성큼성큼 걷더니 환갑이라는 경계에 서있다.

보이는 것이 많은 고갯마루인 것 같다.

부모도 보이고, 자식도 보이고, 아직 도래하지 않은 나의 미래도 보이는

그런 무렵의 세밑을 두서없는 글로, 그것도 내가 짓지도 못하고 남의 글 빌어다가 이 해를 마무리한다.

 

(세상 살피며, 조심조심 살피며 사시던 우리시대의 어머니들께 바친다.

특히, 九旬을 맞으시는 시어머님께.)

 

별국 - 공광규 지음

가난한 어머니는
항상 밀떡국을 끓이셨다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손님처럼 마루에 앉히시고

흰 사기그릇이 앉아 있는 밥상을
조심조심 받들고 부엌에서 나오셨다

국물 속에 떠 있던 별들

어떤 때는 숟가락에 달이 건져 올라와
배가 불렀다

숟가락과 별이 부딪치는
맑은 국그릇 소리가 가슴을 울렸는지

어머니의 눈에서
별빛 사리가 쏟아졌다.

(두 눈 딱감고 눈에 뵈는 것없이 앞으로앞으로 전진하던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에게 바친다. 그 달리기에 탈진한 늙은 아버지들에게.)


소주병 - 공광규


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주면서
속을 비워간다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리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 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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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상준(11 01-04 06:01)
건축은 밑에서부터 쌓아 올려 위로 올라간다고 하는데 사람의 나이 먹음도 그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전 보았던 아프리카의 눈물에서 원로가 하는 이야기를 마을 주민들이 듣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의 사회, 특히나 도시가 그들보다 더 인간적인 발전을 이룬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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