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가을의 시(詩)6 2010년 11월 19일
작성자 나눔

산 속에 숨어 사는 선비1

백거이

 

산 속에 한 선비가 있으나

그의 이름은 알지 못하네

얼굴에는 걱정도 근심도 없고

혈기 언제나 화사하고 평화롭네

언제나 한적한 곳 골라서 살고

번잡한 길 가지 않네

뉘우칠 일 하지 않으니

콩잎을 먹어도 배불리 먹지 않고

거친 베로도 몸을 덮진 못했네

늘 가난과 배고픔에 시달려도

한마디 탄식의 소리도 없네

어찌 가난이 좋아서랴

속세의 정을 깊이 알기 때문이리라

그물 솜씨, 활 솜씨 자랑 말아라

난새나 학같은 선비 넓은 세상을 날고 있으니.

 

 

산 속에 숨어 사는 선비2

백거이

 

산 속에 사는 선비는

오랜 세월 도를 지키며

걸을 때는 새끼로 맨 옷을 입고

앉아서는 줄 없는 거문고를 타네

탁한 샘의 물은 마시지 않고

굽은 나무 그늘에서는 쉬지 않으며

티끌만큼이라도 의에 맞지 않으면

천 냥의 황금도 흙같이 여기네

마을 사람들 그의 품행 따르니

난초 숲에 있는 듯 향기가 그윽하네

지혜롭든 어리석든, 강하든 약하든

서로 속이고 괴롭히는 일 없네

그 선비 만나보고 싶어

길을 나서다 멈추어서네

그 선비 반드시 만나야 하랴

그의 마음만 배우면 되는 것을. 

 

 

*백거이 - 백거이는 이미 1200년 전에 20세기 한국의 시인들이 암울한 조국의 현실 속에서 괴로워하며 시를 쓰게 된 동일한 정신적 각성을 충분히 했다. 백거이는 이미 리얼리스트였고 저항시인이었고 참여시인이었고 민중시인이었다.

 

백거이의 자는 하늘의 이치를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낙천이다. 그의 본명 거이도 두루두루 편안하게 살아간다는 뜻이니 이 사람의 인생관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당시 최고의 엘리트였던 백거이는 민중성을 획득하기 위해 단호히 대중성을 선택했다. 그는 시를 갖고 민중 속으로 들어갔다. 글을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모두가 그의 시를 외워 노래했다.

 

이제 다시 1200년이 흘렀다. 그 동안 수많은 시론이 있었고 창작의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다. 쉬우면서 읽기 편하면서 문학성 있는 시에 대한 고민은 그때나 지금이나 시인들에겐 늘 화두일 수밖에 없다.

 

시가 대중들로부터 고립되고 있는 지금 다시 백거이의 창작정신을 되새겨야 할 때이다.

 

- "백거이시집 비파행"(2005,오세주옮김,백시나엮음,다산초당) 중에서..

 

 

동파에 꽃을 심으며2

백거이

 

동파에는 봄이 저무는데

나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막막하게 꽃은 다 지고

짙은 잎이 생기는 때라

날마다 종 아이 거느리고

호미 메고 가서 도랑을 턴다

샘물 끌어들여 마른 곳에 대었다

작은 나무도 몇 자나 되고

큰 나무는 한 길도 넘었다

북돋우고 심고 돌아온 지가 얼마인가

잎이 높고 낮게 서로 나란히 나 있다

나무 기르는 것도 이와 같거늘

백성을 위함이 어찌 다르겠는가

가지와 잎을 무성하게 하려면

먼저 뿌리와 둥치를 돌보아라

뿌리와 둥치를 돌보는 것이 무엇이던가

농사를 권장하고 세금을 균등히 하는 것이라

가지와 잎을 무성하게 하는 것이 무엇이던가

번잡함을 줄이고 형벌을 너그럽게 내리는 것이라

이대로 옮겨 고을을 다스리면

백성과 풍속이 되살아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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