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Unteraegeri 2 2010년 11월 12일
작성자 윤석철

Unteraegeri 2.                                                  Nov 11, 2010.

 

11 7, 예상했던 대로 아이들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쉽지 않다는 말은 너무 쉬운 표현이고 참으로 마음 아프고 고통스런 일이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만나고 같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친구에게는 아들 하나, 딸이 둘이 있는데 모두 어린 아기일 때부터 제가 제 자식 크는 것 보듯 10여 년간 보아왔던 아이들입니다. 그 후에는 그 집을 방문할 기회가 없었고, 친구와도 뜸하게 지나다가 작년에 다시 연락하여 만났지요.

 

아들 마티아스는 서른 살입니다.

마티아스, 나를 알아보겠니?” “야아 야아!” 마티아스는 반가운 얼굴로 저를 바라보며 괴성 비슷하게 의사를 표현하였습니다. 마티아스를 데리고 주변 산에 올라갔던 일, 여민이랑 여준이 그리고 수정 누나와 함께 한국에 와서 보물섬을 찾아 가기로 했던 일, 입을 오무리지 않고도 윗니 아랫니 사이로 쉭쉭 바람을 불어 내며 멋지게 휘파람 부는 것을 가르쳐 줬던 일, 이런 저런 일을 얘기할 때마다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야아, 야아!” 기억을 되살리는 모습이 너무 가슴이 아프고 지금도 저려 옵니다.

 

20년도 넘은 일을 기억해 내는 일은 어디에 두었는지도 모를 물건을 집안을 오통 뒤져 찾아 내는 것보다 어려울 텐데 마티아스는 용케도 즉각 즉각 기억해 내고 즐거워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습니다. 몸은 이미 제 아버지만큼 컸는데 기억은 열 살 언저리에서 멈췄습니다. 영화로 만드는 작업이 진행 중이므로 그날도 촬영자가 출장 나와서 제가 집에 들어가 마티아스를 만나는 순간부터 촬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친구와 친구의 부인은 간간이 울음을 터트리기도 하고, 손뼉 치고 웃기도 하며 아들이 기억의 파편들을 줍는 것을 대견스럽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둘째 알릭스는 27살 예쁜 딸인데 점점 나빠져 병원에 입원해 있고, 병원을 못 견뎌 참으로 힘든 나날을 버티고 있답니다. 알릭스에게 저는 한국에서 첫 손가락 꼽는 이빨 잘 뽑는 아저씨였습니다. 아무도 손 못 대고 그냥 보고만 있던 젖니를 제가 아무렇지도 않게 뽑아 주었거든요.

 

제가 남몰래 눈물 흘릴 수 밖에 없던 것은 이제 21살인가 22살 된 막내 딸 치타 때문이었습니다. 그 모든 것을 눈으로 보고 겪으면서, 오빠와 언니에게 그 병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보면서 곧 저에게 닥칠, 이미 문턱을 넘어온 병을 마주 대하고 침착하게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치타는 오빠와 언니처럼 병이 진행되지 않아 거의 정상적인 생활을 하려 노력하고 있고, 저에게 찾아온 병과 가족이 겪는 고통에 대해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의 문제일 뿐, 곧 병은 저 여린 치타도 삼킬 것입니다. 제가 지난 번에 보내 준 홍삼 액을 열심히 먹으며 (너무 열심히 먹어 벌써 떨어져 다시 가져다 주었습니다) “혹시라도…..!” 하는 가냘픈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안쓰러웠습니다. 치타에게 찾아온 증상은 이미 가끔 말이 허트러지고 단어를 생각 못할 정도인데 이제 점점 심해지고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하며 기억을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제 친구가 어렵게 생각해 낸 단어 “short-listed”의 삶을 살겠지요. 아주 사랑하는 남자 친구가 있다는 데 전날 밤에도 Zug 시내에 나가 같이 파티에 참석했다더군요. 치타는 가끔 한숨을 쉬며 먼 곳을 바라보면서도 힘겹게나마 자기의 상태를 얘기하고 애써 표정을 밝게 가지려 애쓰더군요.

 

같이 모여 식사를 하는 데 마티아스가 애를 많이 쓰며 되도록 실수 안하고 음식 먹으려 노력하더니 곧 참지 못하고 소파에 드러누워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골며 잠 들더군요. 제 나름대로 신경 쓰고 정신 집중하고 많이 피곤했던 모양입니다.

 

이 병의 대표적 증상은 이전에 얘기한 바대로 눈동자를 상하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눈 앞에 무슨 물건을 가지고 갔다가 위로 올리거나 아래로 내리면 눈 동자가 이 물건을 따라가지 못하고 머리를 움직여 바라보고 아니면 고개를 비틀어 옆 눈으로 봅니다. 이 병에 전문 치료약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다른 약이 있는데 약간 증상의 진행을 늦추는 정도로 한 사람 1개월 분이 2만 스위스 프랑, 우리 돈으로 2천 만원이 넘습니다. 의료보험으로 치료가 안돼 개인이 부담해야 한답니다.

 

제약회사들은 감기약이나 설사약처럼 대량으로 만들어서 팔아 이익을 남길 수 있는 약만 만들지 이 병처럼 몇 사람 쓰지 않는 약은 신경도 안 쓴답니다.  그런데 의외로 이태리에서는 정부가 규정을 만들어 제약회사들의 약품 광고비의 5%를 의무적으로 이런 희귀 유전병 연구에 투자하도록 강제하고 있다니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제 다른 독일인 친구가 벨기에 브루셀 EU 본부와 관련되는 일을 하고 있어서 EU 차원에서 다룰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강구할 수 있도록 서로 연락을 주선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병원이나 대학에서도 이 병에 대해 연구하거나 치료하고 계신 분들이 있을 텐데 그 분들과도 서로 연계하여 국제적으로 공동 조치를 하도록 주선하기로 했습니다. 제 스위스 친구가 독일과 스위스에 있는 환자 가족을 대표하여 12 2 EU 본부에 초청 받아 협의를 하기로 했다 하기에 생각해 낸 일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어제의 일, 오늘의 일을 잊고 살고 싶어 합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편안하기만 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 그 속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위로 겸 농담 겸 마티아스는 좋은 쪽을 택했다고 말하고 우리 모두 웃었습니다.

 

우리 몸 속에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그야 말로 그냥 받아 들일 수 밖에 없는 인류의 역사가 깃들어 있습니다. 문화와 과학과 문명을 애기하는 것이 아니고 생명체로써 인류가 걸어 온 역사를 얘기합니다. 인류가 역사를 기술하기 시작한 것이 고작 길어야 5천년 ~ 7천년 전이면 그 이전 살아 온 역사는 우리의 몸 속에 몸의 기록으로만 남아있습니다. 어둔 골목에 들어서면 본능적으로 몸을 떨 듯, 자기 생명이 위협에 처하게 되면 모든 생명체가 그러하듯 그 위험을 벗어 나고자 어떤 시도를 하게 됩니다. 그런 시도조차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저 조용히 기다리는 수 밖에 없겠지요. 주어진 시간과 기회만큼만 살면서 점점 짧아지는 남은 날들을 바라보게 되겠지요. 그런 생각으로 아이들을 보아서 그런지 마티아스의 눈은 그렇게 맑을 수 없고 서른 살 된 성인의 얼굴이라 할 수 없을 만큼 피부도 맑고 깨끗했습니다. 웃는 듯 마는 듯, 조용히 깜박이는 치타의 눈도 이미 철인(哲人)의 눈이었습니다.

 

우리 주위에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으며 살고 있습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한번도 진정으로 그 분들의 고통을 제 고통으로 아파한 적 없습니다. 안됐다고 동정하고 안타까운 마음은 들었지만 그것이 제가 겪는 일이 아니므로 한 발 물러선 상태로 바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의 경우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제 몸 속에 간직하고 있는 생명의 기록이 제 친구 가족이 겪고 있는 고통에 핏줄처럼 땅기는 것을 느낍니다. 저에게도 그것이 병으로 인식되지 않아 그렇지 얼마나 많은 변형, 돌연변이(Mutation)의 기록이 남아 있을 것인지, 또한 그것이 지금 어떤 형태로든 저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을 것이란 점을 생각하면서 생명을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피부색, 인종, 남 녀, 노 소, 언어, 종교, 습관 무엇을 기준 삼아 분류해도 사람이 사람인 것을 압니다. 개인 개인은 다 모습도 성격도 취향도 종교도 생각도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크게 같은 인간이라는 점을 압니다. 우리 인간이라는 울타리를 하나만 넘으면 거기 무수한 생명이 인간과 잇대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인간과 인간 아닌 다른 생명을 구분 짓는 경계는 더 이상 예전의 기준을 들이 댈 수 없습니다. 심지어는 생명체와 비 생명체를 구분하는 전통적 경계도 이미 허물어졌습니다. 빛도 파장이라는 것을 안다면, 모든 물질은 그 고유의 파장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면 서로 다른 파장이 공명을 일으키는 것을 이해하면 우리 생명이 일으키는 파장에 우주가 공명하는 것도 이해하게 되겠지요.

 

인간과 가장 가까운 영장류를 서로 비교하면 예를 들어 97%가 같고 3%가 다른데 3% 다르다고 우리는 그 생명을 아무 부담 없이 처리합니다. 같은 인간끼리 비교한다면, 인간의 기준으로 서로 비교한다면 우리 인간끼리도 아마 90%는 같고 10%는 다를 수 있습니다. 10% 다른 것을 이유로 우리는 다른 인간을 달리 취급하며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10% 나와 다른 인간을 말살할 수 없지요. 무엇이 생명세계 안에서 서로 다른 것을 구분 짓는 경계인지,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에게 나타나는 네거티브와 포지티브가 다른 생명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생각하며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인류가 눈을 위 아래로 움직이지 못한 지 오래 되기 때문에 인류 사회가 이렇게 된 것 같습니다. 이것이 인류라는 종() 전체가 앓고 있는 또 다른 Niemann Pick Disease Type C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까지 찍은 영화 내용을 원형으로 보관하고 있는 site를 알려 주어 들어가 보니 마티아스와 알릭스가 아직 어릴 때, 20년 전쯤의 동영상이 있더군요.

 

아이들 어릴 때 영상을 보면서 또 다른 병에 걸린 인류를 위해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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