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Unteraegeri 1 2010년 11월 09일
작성자 윤석철

Unteraegeri 1                                               201011 7

 

스위스 Zug라는 도시에서 차로 30분쯤 산으로 들어온 Unteraegeri라는 마을입니다. 30여 년 전부터 참으로 여러 번 찾아왔던 마을입니다. 마을 안에 Aegeri See라는 호수가 있고, 소 방울 소리도 들리는 마을입니다. 제가 묵은 방 창밖에 호수가 눈 앞까지 들어와 있고, 조금 전 오전 10시에는 동네의 성당, 교회들이 일제히 종을 울리며 하나님 앞에 나오라고 사람들을 불렀습니다.

 

이 조그만 마을에, 꿈처럼 동화처럼 아름다운 마을에 제 스위스 친구, 30년이나 된 친구 Christoph Poincilit의 온 가족이 고통의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누구를 원망할 일도 아니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이 가족에게 일어났을 뿐입니다. 제 친구의 아들 딸 3남매가 현재로써는 치료방법이 없는 불치의 유전병에 걸렸습니다. 이름도 생소한 Niemann Pick Disease Type-C라는 병입니다. 근육이 무력화되고, 청각, 언어 능력, 지적 능력을 상실하게 되고 나중에는 모든 기억을 상실하고 생명을 잃게 되는 무서운 병입니다. 사람 몸 속에 흡수된 콜레스토롤이 정상적으로 처리되지 않고 뇌 세포 속에 축적됨으로 생기는 병입니다. 대부분 40세 이전에 생명을 잃습니다. 자료에 보니 150,000 명의 신생아 중 1명 꼴로 이병에 걸릴 확률이 있다 하는 데 실제로는 더 높을 것이랍니다. Type A B는 특정 인종에게 주로 나타나는 데 Type C는 인종 구별 없이 나타나는 뇌 신경계통 질병입니다. 영 유아기에는 발견이 어렵고 몇 가지 증상이 있다는 데 정확한 검사와 진단도 어려운 모양입니다. 눈 동자의 상하 운동이 안되므로 위를 보기 위해 고개를 틀어서 본다든지 유치원 학교 생활에서 유난히 잘 넘어진다든지 지각 능력이 갑자기 저하되기 시작하면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부모에게서 이어지는 유전병인데 부와 모 양쪽 모두에게 이런 유전 이상이 있을 때에만 발병하고 한쪽에게만 이상이 있을 경우에는 아무 이상 없이 넘어 갑니다. 생명은 처음 이 땅에 태어난 순간부터 끊임없이 자기 복제를 통해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몸을 예로 들어도 태어났을 때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은 하나도 없을 정도로 끊임없이 세포가 분열하고 (성장), 자기복제 (Replication)을 통해 생명이 유지되고 다음 세대로 이어집니다. 유전자 그림을 보셨을 텐데 나선형으로 비틀어진 사다리처럼 생겼습니다. 사다리처럼 두 기둥을 가로로 연결하는 칸이 있습니다. 한 쌍 (두 기둥)의 사다리는 부와 모에게서 이어 받은 유전자가 각자 최선의 조합을 이루어 새로운 사다리를 만들어 살다가 배우자를 만나면 그 배우자의 사다리와 내 사다리가 자식의 몸에서 또 다른 조합의 한 사다리를 이룹니다. 일반적으로 유전 인자들은 최상의 조합으로 결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이 조합의 과정에 변형이 발생하고 그 발생된 변형이 그 때부터 자손에게 이어져 내려 갑니다. 눈동자의 색깔을 결정하는 인자, 머리 색을 결정하는 인자, 키의 크기를 결정하는 인자 등등 참으로 여러 가지의 인자들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제가 말씀 드리는 이 병은 유전자 사다리의 18번째 칸에 부와 모가 똑 같은 이상이 있는 경우 치유 불가능한 병이 되어 자식의 몸에 남게 됩니다. 즉 그 18번째 칸에서 부와 모 어느 한쪽의 좋은 것을 넘겨 받을 가능성이 없어진 것입니다.

 

예전에는 모르고 살았을 것입니다. 알 수 없는 병으로 영 유아기에, 또는 청년기에 사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을 것입니다. 제가 여기에서 주목하는 것은 이런 유전자의 변형이 좋다 나쁘다라고 표현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오직 네거티브(-), 포지티브(+) 여부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의 인류는 네거티브 방향으로 변형돼 온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포지티브하게 변형될 수 있다면 네거티브하게 변형될 수도 있을 것이고 리챠드 도킨스가 얘기한 이기적인 동기에서만 유전자의 변형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땅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는 어떤 형태로든 이런 변형의 결과를 몸 안에 지니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이 네거티브인든 포지티브이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운동신경이 발달하고 지각 능력이 뛰어나고 남다른 특성을 보이는 사람들을 대표로 뽑고 환호하고 칭송하지만 그 에게는 그런 것들이 포지티브하게 나타났다고 보여집니다. 따라서 그런 변형은, 그것이 포지티브이든 네거티브이든 그 개인의 문제를 떠나 인류의 문제가 됩니다. 포지티브든 네거티브든 변형은 변형이기 때문입니다. 짝을 지어야 자식을 낳을 수 있고 그 자식 속에 나의 생명이 (정신적 의미가 아니고 유전학적으로 자기 복제를 통해 자식에게 생명이 이어져갑니다) 이어지는 인류라는 종()이 겪는 필연적 운명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문제를 극복한다는 명분으로 언젠가는 인간 개량을 시도ㅏ겠지요.  즉 짝을 지어 자식을 낳기 이전에 그 배우자의 유전자 지도를 통해 예상되는 위험을 미리 분석한 후에 짝을 지어 자식을 낳든 금지하든 결정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뱃속의 태아를 검사하여 그 아기가 태어난 후 가지게 될 유전적 결과를 미리 분석하여 출산 여부를 미리 결정할 것입니다. 우수한 유전 인자를 가진 사람들끼리, 인종끼리 결합하도록 권장하고 제도화할 것입니다. 이미 가축에게는널리 시행하고 있는 일입니다. 곡물도 유전자를 조작하여 병충해에 강하다든지 물을 적게 주어도 잘 자라게 한다든지 열매를 몇 배로 많이 열게 하거나 크게 한다든지, 썩지 않고 오래 보관할 수 있게 한다든지 합니다. 우리가 늘 듣고 보던 일입니다. 우리 식탁에 오르는 식품의 상당수가 이미 유전자를 조작한 결과물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 친구의 소망은 사람들이 이런 병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이 남 다른 것 아니라고 인식하기를 바랍니다. 물론 고통을 겪고 있는 자식들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 찢어지는 아픔을 맛보고 있지만, 자기 자식들을 고칠 수 있다는 희망마저 없는 상태이지만, 같은 일을 겪는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에 나섰습니다. 그 가족들이 겪는 고통,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 나타날 불행에 대해 준비 안된 사람들의 고통을 서로 나누고 서로 위로하고 돌보자는 운동에 나섰습니다.

어제 저녁 꽤 늦은 시간에 제가 여기 호텔에 도착했는데도 그 친구가 밤 늦게 찾아와 오랜 시간 같이 앉아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읽고 있던 영어 성경을 본 그 친구가 자기는 요즈음 구약성서를 읽고 있다면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이후,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이후, 아담과 하와를 통해 첫 잉태된 생명에 대해 왜 그렇게 생명이 이어지게 됐는지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병을 고치신 이적들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면, 예수님만 하실 수 있는 기적이었다면 너희도 가서 이렇게 하라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이라는 점을 얘기해주었습니다. 질병을 고쳤다기보다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치유하고 어루만져 주셨다는 것을 1세기적 언어로 그렇게 표현하였을 것이라는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제 친구의 세 자녀가 이런 병에 걸렸다는 것이 알려지자 친척들도 멀리하고 그렇게 가까이 지나던 이웃들도 발길을 끊더랍니다. 마을 길에서도 이미 저쪽에서 다른 길로 피해 가거나 길을 건너 마주치려 하지 않더랍니다. 이 병이 전염병이 아니라는 것은 모두 압니다. 다만 이 고통에 눈 길 주고 싶지 않을 따름입니다. 고통과 연관 맺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지요. 나에게는 그런 일 일어나지 않은 것이 감사하고, 당신에게 생긴 일은 당신의 운명이라는 생각이지요.

 

사람은 알게 모르게 가지 가지의 형태로 가슴앓이도 하고 아파하고 고통에 괴로워합니다. 가족, 교회, 이웃, 나라, 전 인류사회, 그리고 피조물 모두와 자연. 그것에 공명하고 같이 아파하신 예수님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아니고 무엇이었겠는가 생각합니다.

 

조금 있으면 그 친구 집에 가야 합니다.

제가 잘 견딜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목록편집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