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가을의 시(詩)4 2010년 10월 25일
작성자 나눔

가을냄새

헤르만 헤세

 

다시 한여름이 우리를 떠났네

어느 늦폭풍우 속에서 죽어 갔지

비는 참을성 있게 철철 내리고 젖은

숲에서는 두렵고 쓸쓸한 향기가 나네

 

철 잊은 상사화가 풀밭에서 파리하게 굳고

버섯들이 솟구치듯 밀려 나와 무성해지고

어제만 해도 측량할 수 없이

넓고 환하던 우리 골짜기 가려지고 좁아지네

 

빛에 등 돌린 이 세상은

좁아지고 두렵고 쓸쓸한 향기가 나네

우리는 무장을 하네

생명의 여름 꿈을 끝내는 늦폭풍우에 대비하여.

 

 

구세주

헤르만 헤세

 

자꾸자꾸 그 사람이 태어난다

경건한 귀에다 말한다 먼 귀에다 말한다

우리에게 가까이 오고 우리에게서 새롭게 상실된다

 

자꾸자꾸 그는 외롭게 솟아야 한다

모든 형제들의 고난과 동경을 부담해야 한다

늘 새롭게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

 

자꾸자꾸 신은 그만 떠나가겠다고 한다

천상의 것은 죄악의 골짜기로

정신은 영원한 정신은 살 속으로 흘러들려 한다

 

자꾸자꾸 이즈음의 날들에도

구세주는 오고 있는 중이다 축복하려고

우리의 불안,눈물,물음,탄식에

고요한 시선으로 응답하려고

그렇지만 어린이들의 눈만이 그 시선을 감당할 수 있기에

우리는 감히 마주 보지 못하는 그 시선.

 

 

새벽빛

헤르만 헤세

 

고향,청춘,인생의 아침 시간

백 번 잊어버리고 잃어버리고

너로부터 나에게로 늦은 소식 하나 온다

바람에 불러서 그렇게 모든 심연에서 솟는다

폐허가 되어 영혼 속에 잠들어 있는 심연에서

감미로운 빛 네가 샘이 새롭게 태어나서!

 

언젠가와 오늘 사이에서

우리가 자주 자랑스럽고 부유하게 여겼던

삶 전체가 이제는 헤아려지질 않는다 나는 몰두하여 다시 귀 기울인다

이렇게 젊은 이렇게 영원히 늙은

동화의 샘이 만드는

잊힌 옛 동요들의 선율에

 

모든 먼지 너머에서 또 모든 혼란 너머에서

너는 빛을 내는구나 미망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노력의 모든 수고 너머에서

소리 높은 샘이여, 맑은 새벽빛이여.

 

목록편집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