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미술관과 교회 2010년 05월 09일
작성자 장혜숙

화창한 봄날이다.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정말 환장하게 좋은 봄날이다.

미술관 밖의 벤치에 앉아 무르익어가는 봄기운을 즐기고 있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무리 지어 미술관람을 위해 실내로 들어가고 있었다.

벤치에 앉아 눈부시게 쏟아지는 햇빛을 받으며, 몸이 녹아 내리는 듯한 햇볕을 쬐며 그림에 대해, 특히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에 대해 생각해봤다.

 

화가는 이 빛을 못 본 척 무심한 마음으로 넘기지 못해 자신의 화폭에 담았을 것이다. 그냥 지나치기엔 가슴 속에 꿈틀거리는 감동이 너무 벅차서 자신의 화폭에 이 빛을 옮겨놓았을 것이다.

빛에 미친 화가는 산을 그리고, 물을 그리고, 집도 그리고, 사람도 그리고, 꽃과 나무를 그리고, 짐승도 그리고, 쏟아지는 빛 속에 드러나 보이는 모든 것들을 그림으로 그렸다.

그림을 그린 화가의 마음이 가슴에 와 닿는다. 그만큼 오늘은 우리를 사로잡을만한 봄빛이 대기에 충만하다.

 

그림을 보기 위해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는 관람객들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무엇을 보러 가는가? 이 빛을 화폭에 담고자 했던 화가의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한다면, 그림을 보면서 화가와 소통할 것이 아니라, 이 빛 속에 나앉아서 화가와 교감해야 하는 것 아닌가.

화가가 그토록 화폭에 담고자 심혈을 기울였던 이 빛을 온 몸으로 느껴야 하는 것 아닌가.

사람들은 왜 그들에게 내리쬐는 빛을 외면하고 어둑한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 그 빛을 담은 그림을 보려는 것일까.

사과나무가 꽃 봉오리를 맺기 시작하면서부터 망울이 터지고 만개할 때까지 며칠 동안이나 사과밭에 머무르면서 그린 사과나무,

그 그림을 보러 미술관에 가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당신들은 지금 사과밭으로 가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봄기운이 도는 물위에 떠있는 한가로운 배를 그린 그림을 보러 가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당신들은 지금 한창 물오른 버드나무가 그 모양 그대로 물속에 담겨있는 강으로 나가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축복처럼 내리쬐는 봄빛을 만끽했다.

 

어김없이 주일은 돌아오고 많은 기독교인들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에 간다.

지난 한 주간의 삶을 주관하신 하나님께 감사 드리고, 내게 있었던 일들을 하나님께 고하고, 참회하고 용서를 빌고, 새로운 말씀을 받아 말씀에 순종하고자 다짐하고, 공동체의 형제들과 애찬을 나누고, 사랑이 충만한 마음으로 주일성수를 한다.

거룩 거룩 거룩한 주일을 보낸다. 하나님이 계신 성전에서 신령과 진정을 다해 예배를 드린다. 하나님은 분명 성전 안 거기 계신다. 사람들은 거기 계신 하나님을 만나러 교회에 간다. 지난 주에도, 지지난 주에도, 다음 주에도, 다다음 주에도 하나님을 만나러 교회에 간다.

 

하나님 만나러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사람들 모두는 하나님이 교회 밖에도 계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흉기에 찔려 등허리 벌건 속살 드러낸 산등성이에도 계시고, 흐를 길 막혀 제자리서 몸부림치다 썩어 들어가는 강물에도 계시고, 살붙이들이 살부비적거리며 살던 오죽잖은 보금자리에도 계시고, 초근목피 연명하는 우리의 핏줄 동포 속에도 계시고, 코리안 드림을 안고 뼈가 으스러지게 일하는 천대받는 나그네들 속에도 계시고, 언제 어디에나 다 동시에 임재하시는 전능자라는 것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 계신 여기저기 다 외면하고 오직 곧은 길로 교회에 직행하는 모든 기독교인들, 그들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교회 밖에도 하나님 계시다는 것을.

 

미술관에 들어가는 관람객들이 화가가 사랑한 밖의 하늘을 바라보고 햇빛을 몸에 받는 일을 간과하지 말기를 바란다. 교회에 다니는 교인들이 교회 밖의 세상에서도 하나님을 만나기를 기도한다. 하나님은 세상을 외면하지 않으신다. 교회는 세상을 등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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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상준(10 05-09 10:05)
동감됩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씨름하여 하나님과 만나기 보다는 다른 사람에 의해 해석된 하나님을 만나는 경우를 '일반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다른 누구보다 나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세상에 나가 하나님을 만나고,,, 그것이 또한 예수를 21세기인 지금에 부활케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너무 쉽게 예수님을 먼 곳에 두고 경배만 받으시는 대상이 되게 하는 건 예수님도 원하시지는 않을거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청파교회에서의 '언제어디서나 그리스도인' 이란 말은 정말 와 닿습니다. 구호가 아닌 삶이 되도록 한 발 한 발 꾸준히 오름길 가길 다시금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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