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빛과 색갈 2010년 02월 04일
작성자 장혜숙

교회 개방과 무료 강좌에 대한 생각을 써봅니다.

아울러 새해, 이미 한 달은 지났지만, 새해의 개인적인 각오와 다짐도 하면서 여러가지 생각들을 합니다.

 

푸른 어린이도서관에서 어린이 영어교실을 하고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무료입니다. 성인 일본어 강좌도 있습니다. 아마 일년 쯤 해오고 있지요. 3개월에 15,000원입니다. 그동안 미술도 해왔고요. 몇가지 강좌가 있었는데 강사선생님들은 모두 무상으로 자원봉사하고 있습니다. 강사들의 자질은 세간에서 잘나가는 비싼 강사들 보다 훨씬 더 훌륭합니다. 이렇게 받은 달란트를 나누는 봉사자들이 있고, 교회도 장소를 제공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교회 세미나실은 일주간 내내 여러 기관의 각종 모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름엔 에어컨을 틀고 겨울엔 히터를 틉니다참석자들은 화장실도 가고, 주방에서 차도 준비하여 마십니다.  단순한 장소의 제공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지요.

 

교회개방은 마땅히 해야할 일입니다. 그러나, 신중해야합니다. 감당할 수 있어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교회화장실을 개방한다고 합시다. 그러면 교회는 좋은 교회가 될테지만, 성도들이 다함께 관리를 분담하지 않는다면 관리인은 혼자서 화장실 청소에 매달려야할 것입니다.

우리가 당번을 정하여 관리인과 함께 화장실 청소를 감당한다면 화장실 개방도 할 수 있겠지요.
마당에 정수기를 두고 지나가는 이의 목마름을 해결해주는 일도 있습니다.

이 역시 많은 성도들이 마당청소나 정수기 관리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관리인 혼자서 다 감당하게 됩니다.

적극적인 봉사가 아니더라도 현재 교회를 드나들며 교회 안팎에 떨어져있는 휴지 조각 하나라도 자발적으로 줍는 아주 작은 일에도 선뜻 나서는 교우들의 수는 적습니다.
무엇보다도 성도들의 봉사정신이 먼저 성숙해야할 것입니다.
앞으로는 받은 시간과 달란트의 무상나눔과 장소개방이 좀더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가야겠지요깨달음이 있는 자들의 자연스러운 실천이니까요.
누구 한 사람에게 더 많은 짐을 지우지 않는다면, 여럿이 함께 기쁨과 즐거움으로 감당한다면, 새로 시작하는 일에 불편한 심기를 가진 사람들이 없다면 교회에서 해야할 일은 정말 많습니다.
그러나, 새롭게 일을 시작한다는 것이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답니다.
교회에서 종종 물건을 판매할 때가 있지만 아직도 무인판매를 못하고 있습니다. 손실을 감당하고라도 시행하면 되지만 그 일로 인해서 혹시 상처가 되지 않을까 염려해서입니다.
일부러 날을 잡지는 않는다해도 주일 점심 애찬을 노숙자들과 함께 나누는 일도 좋겠지요. 더럽고 냄새나는(함부로 말해서 죄송) 사람의 옆에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서 친절하게 이야기를 나눌 성도들이 많다면 말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성도들이 슬쩍슬쩍 피하게 된다면 우리는 갈등하고 상처가 될 것입니다.
추운 날 교회 앞을 지나다니는 이들에게 뜨거운 차를 나누어 주는 일은 그리 어렵지도 않을 것 같지만 극히 적은 소수의 봉사자들에게 과중한 짐을 지우고 그것이 스트레스가 되고 봉사가 즐겁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봉사가 즐거운 경우도 있습니다.

교회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이 와서 편히 쉬는 곳이기도 하지만, 무거운 십자가를 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봉사가 과중되면 이런 생각도 나지요나는 교회에 왜 오나?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러 오나, 무거운 십자가를 지러 오나?

답은 너무나도 간명합니다.

영적인 짐을 내려놓아 편안함과 쉼을 얻고, 육적인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몸이 십자가를 지면 영혼은 참 고요와 평안이 오기 때문이지요. 영혼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면 몸이 지고 있는 십자가의 무게는 당연히 가벼워지는 원리입니다. 교회에 다니면 이 두가지를 다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변해야 합니다. 그러나, 변화는 늘 문제를 야기합니다목적이 좋은데 수단과정에서의 잡음과 상처는 감수해야한다는 의견이 있는가하면, 안하면 될 것을 지금까지도 그래왔는데 괜히 평지풍파를 일으킨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당연히 두 가지 의견이 공존하고 다 수렴하며 나가야하겠지요.
어찌 말하면 신중하고 사려깊어 언행에 조심하는 것이고, 어찌 말하면 말은 옳게 하면서 행동은 하지않는 비겁함입니다. 사려깊음과 비겁함의 손등과 손바닥을 우리는 내 손에 함께 가지고 있거든요.
우리가 조금씩 성숙해가면서, 십자가를 질 각오도 점점 키워가면서, 기도하는 중에 무언가 알듯 모를듯 조금씩 변화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누구 한 사람에게 더 많은 짐을 지우지 않고, 여럿이 함께 기쁨과 즐거움으로 감당하며, 관행에 얽매이지 않는 일에 불편한 심기를 가지지 않게 될 날이 오기를 기도합니다.

 

빛의 삼원색은 가산혼합으로 합치면 더욱 밝은 빛이 됩니다. 색의 삼원색은 감산혼합으로 합치면 더욱 어둡고 탁한 색이 됩니다.
우리 크리스챤들은 색깔의 사람들이 아니라 빛의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이 섞이면 더욱 밝은 빛을 냅니다.

그런데, 이것이 참 중요하지요. 빛과 색깔의 경계.

만약 우리가 색깔이라면 섞이면 섞일수록 혼탁하여지고 검은 빛을 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빛, 참 빛이 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아직 완전한 빛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색깔의 상태가 남아있기 때문에 색깔의 섞임으로 겪는 혼탁함이 있는 것입니다.

참 빛으로 되기 위해 기도합니다.

여러 빛이 섞여서 더욱 밝아져 눈이 부신 참 빛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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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걸(10 02-04 01:02)
더럽고 냄새나는 ==> 이 부분에서 생각나는 일이 있어요. 꽤 오래 전에 교회 근처에 커피전문점이 하나 있었죠(대략 남영역과 마주 보이는 위치). 아마 초겨울이었을거예요. 약속시간까지 잠깐 뜨는 시간을 보내러 들어갔는데 카운터에 있던 주인이 저를 보자마자 손을 절레절레 흔들면서 쫓아와 문 밖으로 끌어내려 하더군요. 손에는 천원짜리 한 장이 들려 있었고.... 제가 목발을 짚은데다 오래 입어서 색이 바랜 코트와 칭칭 감은 목도리를 보고 구걸하러 온 행려자 쯤으로 지레 짐작한거죠. 시쳇말로 손님 떨어지니 얼른 가라는 몸짓.... 너무 당혹스럽고 어이없기도하고 왠지 서러워서 지갑을 열어 보이며 말했습니다. 나 돈 있다고, 잠깐 시간이 남아서 차 마시러 온거라고... 겉모습만으로 섣불리 판단한 게 미안했던지 주문한 차에 곁들여 먹으라고 과자까지 챙겨다 주더군요. 그 때 알았어요. 부모, 형제 다 있고 배울만큼 배우고 먹고 살만한 나도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의 눈에는 그저 불쌍하고 꺼려지는 존재구나.... 하지만 정말 솔직히 말하면 아직은 저도 친교실에서 한 끼를 해결하는 그 분들 옆에 앉아 아무렇지 않게 밥 먹으면서 따뜻한 인사를 건넬 자신은 없네요. 옆에 앉아서 밥은 먹을 수도 있겠지만 그 이상의 무엇이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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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신(10 02-04 05:02)
항상 느끼는 거지만 제가 청파교회에 대해서 아직도 모르는 게 더 많은 거 같습니다~ 일본어 강좌도 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지금도 하고 있는지는 몰랐네요. 이미 하고 있는 강의라면 더 확대되고 홍보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주변 많은 교회들도 동참하면 좋겠고요~ 저도 봉사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봉사하고 싶고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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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10 02-05 03:02)
좋은신 글 잘 읽었습니다.^^
빛의 색을 보여주는 프리즘이라는 도구가 생각나는군요~
저희 모두 빛의 삶이 되길 기도합니다.
누군가에게 프리즘이 되는 삶이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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