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윤동주의 시들. 2009년 12월 29일
작성자 이광욱

십자가

윤동주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여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왔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바람이 불어

윤동주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위에 섰다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

 

 

서시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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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상준(09 12-30 01:12)
올해 제대로 읽었던 윤동주님의 시를 친교란에서 보니 더 깊이 있게 다가오네요...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란 대목이
마치 윤동주의 미래를 암시하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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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신(09 12-30 04:12)
저의 10대 전반기를 점령했던 윤동주 시인인데... 윤동주 시인의 시를 읽고 시를 몇 편 썼죠^^ 지금도 가끔 쓰지만.
저번 일본기행 때 그분이 다니시던 학교를 가서 더욱 뜻깊었습니다.
제 인생 33년 중에 가장 감격스러웠던 때 중 하나였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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