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성서학당 종강 - 시 2009년 12월 04일
작성자 성서학당

<누가 보이나요>

                                           필리스 맥코맥

간호사 아가씨

당신 눈에는 누가 보이나요?

제가 어떤 모습으로 보이나요?

심술궂고 그다지 현명하지도 않고

변덕이 심하고 눈초리도 흐리멍덩한

먹을 때 칠칠치 못하게 음식을 흘리고

당신들이 큰소리로 “한번 노력이라도 해봐요!” 하고 소리 질러도

아무런 대꾸도 못하는

당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고

늘 양말 한 짝과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리고 다니는

아무런 저항 없이 아무 생각 없이

하루 종일

씻기든 먹이든

당신이 하는 대로 맡기고 사는

그게 바로 당신이 생각하는 ‘나’인가요?

그게 당신 눈에 비친 ‘나’인가요?

 

그렇다면 눈을 떠보세요

당신은 저를 보지 않고 있어요

이렇게 여기 가만히 앉아서

당신이 하라는 대로 하고 먹으라는 대로 먹으면서

제가 누구인지를 말해줄게요

 

저는 열 살짜리 어린 소녀랍니다

사랑스런 엄마와 아빠

서로 사랑하는 오빠, 언니, 동생들도 있지요

저는 발에 날개를 단 열여섯 처녀이기도 합니다

곧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꿈을 꾸고 있지요

저는 또한 스무 살의 꽃다운 신부입니다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면서 콩닥콩닥 가슴이 뛰는

아름다운 신부 말입니다

아이를 품고 안고 있는

스물다섯의 엄마도 제 안에 있습니다

그 아이를 위해 포근한 안식처를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마흔 살의 저도 있네요

이젠 아이들이 다 자라 집을 떠났어요

하지만 남편이 곁에 있으니 울지 않습니다

제 안에는 다시금 무릎 위에 아가들을 안고 있는

쉰 살의 할머니도 있습니다

사랑스런 손자들과 나

행복한 할머니입니다

 

제 안에는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 우울해하는 저도 있습니다

저는 홀로 살아갈 미래를 생각하며 떨고 있어요

제 아이들은 자기 자식들을 키우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지나간 날들을 기억하고

그때 나누었던 사랑을 되새기고 있습니다

어느새 제가 노파가 되어 버렸네요

세월은 참으로 잔인하지요

노인을 바보로 만드니까요

몸은 쇠약해지고 우아했던 기품과 정열은 저를 떠나버렸어요

한때 힘차게 박동하던 심장은 돌덩이가 되어버렸네요

 

하지만 아세요?

제 늙어버린 몸뚱이 안에

아직도 열여섯 처녀가 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따금씩 쪼그라든 저의 심장이

다시 부풀어 오른다는 것을

젊은 날들의 기쁨을 기억해요

젊은 날들의 아픔도 기억해요

저는 기억 속에서

아직도 사랑하고 있고

지나간 삶을 다시 살고 있어요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니

너무나도 짧았고

너무나도 빨리 가버렸네요

세상 그 무엇도 영원하지 않다는 엄연한 진리를

이제 받아들입니다

 

그러니 간호사 아가씨

이제 눈을 떠보세요

그리고 절 바라보세요

겉으로 보이는 ‘심술궃은 노파’ 말고요

자세히 보세요

이 속에 있는 ‘진짜 나’를

좀 보아주세요

 

 

감상) 목사님께서 이화여고 교목으로 계실 때 유관순 생가를 방문해야 하는 일이 있었답니다. 차안에는 나이 80이 되어 보이시는 분들이 앉아 계셨답니다. 보기에도 점잖은 분들이 조용히, 정숙하게 앉아계셨데요. 그런데 또래 친구가 오니까 “지금오니 기지배야!” 하더랍니다. 깜짝 놀랐다고 하십니다. 나이 80이 되어도 또래들은 여전히 기지배로 통한다고 하시네요.

기억이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소설가 신경숙이 쓴 <엄마를 부탁해> 이 책은 엄마의 기억들을 회상하는 책입니다.

자식들은 엄마가 당연히 내곁에 있는 분으로 여깁니다.

이분이 사라짐으로 내게 소중한 분임을 자각하게 됩니다.

한 사람안에 다양한 모습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의 모습으로 고정시킬때가 많습니다.

 

하비콕스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뱀이 하라는 대로 버려두지 말아라.' 자기가 주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는데 남에게 미룹니다. 이것은 영적 태만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내가 주체적으로 판단 못하게 합니다. 광고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하지 않습니다. 행복이 유보되고 있습니다.

다른 방식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나와야 합니다.

사람들 속에 있는 다양한 모습들을 보아내고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젊은 사람이 온몸이 마비가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사람은 꼼짝할 수가 없었습니다.

창문 너머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얼굴을 찡그리고 지나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루는 그 젊은이가 밖으로 나가게 해달라고 해서 밖으로 나갑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합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매일 그 자리에 나와서 밝게 인사하는 그 젊은이에게 지나가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합니다. 상담까지 합니다.

그 젊은이가 마음을 담아 인사한다는 것, 진정성을 느끼면서 사람들의 마음이 열리고 상담하면서 치유가 일어나게 됩니다.

악조건속에서도 그는 긍정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의식은 동물들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의식은 늘 바깥을 향하고 있는데 자기의식은 나를 돌아봅니다.

자기존재의 의식을 가지고 있는 존재만 자살합니다. 동물들은 자살하는 경우가 없지요.

자기의식을 안으로 만 가지고 있을 때는 퇴행하게 됩니다.

자기의식을 바깥으로 돌리면 타인에 대한 선물로 바뀔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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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상준(09 12-05 09:12)
자본과 극단의 경쟁은 우리의 시각을 외부로 고정하도록 강요하는 거 같습니다.

그래서 최근엔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스펙'으로 환원되는 모습이 너무나 쉽게 발견됩니다.

과거 영화 '매트릭스'가 지금에 와서 명작이란 생각이 자꾸 꺼져만 갑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스펙'이란 매트릭스에 빠져 버렸습니다. 스스로 키울 수 있는 풍요를 저 버리고 외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만에 집중하는 우리 사회...

이건 우리 그리스도인만이 금을 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해 보지만,,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또다시 매트릭스를 만들고 그 속에 빠져 버려 있는 현실... 정말 안타깝습니다.

거대한 매트릭스 제국이 되어 가는 이 한국의 모습... 영화 매트릭스의 그 흑인처럼 누가 와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기준들은 '매트릭스'다, '가짜'다 라고 이야기 해 주었으면 정말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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