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성서학당 종강 - 히스기야 2009년 12월 04일
작성자 성서학당

성서학당 마지막 강의의 핵심어는 히스기야입니다.

전쟁하기에 급급했던 지도자들로 인해 평등공동체의 이상이 어떻게 파괴되고 굴절 되었는지 성경을 통해 확인하고, 그 중에서도 히스기야 왕은 다른 왕들과는 달리 남북왕조의 마음의 통일을 이루는데 큰 공헌을 하게 되는 것을 성경을 통해 돌아봅니다...

 

솔로몬이 후궁이 많고, 지혜가 있었다는것은 그시대가 반민중적인 시대의 자료임을 볼수 있습니다.

르호보암을 따르는 지파가 2개 지파, 여로보암을 따르는 지파가 10개 지파입니다. 영토적으로 북왕국이 많습니다.

북왕국을 복속시키려고 르호보암이 여로보암과 전쟁을 벌이려고 합니다.

르호보암은 정병 18만명을 징집합니다. 성경에는 과장 된것이 많습니다.

베드로가 설교했더니 삼천명이 회개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주후 60년에 전세계 기독교 인구를 이천명을 보고 있습니다. 그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요? 이것은 기독교의 전파가 천천히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르호보암이 북왕국을 치려 할때 여로보암은 더많은 사람을 징집합니다.

남왕국의 르호보암은 다윗,솔로몬 시대 때 확보했던 물자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훈련된 정병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북왕국은 착취당한 사람들, 훈련된 군인이 없었습니다. 오합지졸이지요.

그래서 르호보암이 전쟁을 치를려고 합니다.

이때 스마야 예언자가 등장합니다.

 

열왕기 상 12장 22~24

그러나 그때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유다왕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과 유다와 베냐민의 모든 가문과 그 밖에 나머지 모든 백성에게, 이 말을 전하여라. 나 주가 말한다. 일이 이렇게 된것은 내가 시킨것이다. 너희는 올라가지 말아라. 너희의 동족인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지 말고, 저마다 자기 집으로 돌아가거라.“ 그들은 이러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모두 귀향하였다.

 

남북왕조가 전쟁을 벌이려고 할때 남왕국 예언자 스마야가 “전쟁하지 말아라.”라고 합니다.

원수 놈이 아닌 동족과 싸우지 말라고 합니다.

예언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두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왕실 예언자, 재야 예언자

왕실예언자는 왕이 하는 일에 대해 하나님이 승인해 주었다고 합니다. 왕이 하려고 하는일을 예언자가 추인해 줌으로 백성들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왕실 이데올로기가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알려 줍니다.

화가 아닌 복을 예언합니다.

거짓예언자는 듣지도 않은 것 들었다고, 보지도 않은것 보았다고 이야기합니다.

복을 외치니 인기가 있었습니다.

재야 예언자는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카리스마에 사로잡힌 사람입니다. 그것은 분노와 위로로 나타납니다.

분노는 나라가 하나님 뜻대로 안가고 거역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느끼는 것입니다. 그것은 개인적인 분노가 아닙니다. 그래서 예언자를 pathos파토스, 하나님이 심판한다고, 망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듣기 좋은 소리 안합니다.

위로도 합니다. 제 2이사야에서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이야기 하십니다.

그들이 감내해야하는 일들을 아시기에...

아모스 같은 예언자도 있지만 호세아 같은 예언자도 있습니다.

 

미국의 어느 감독이 호세아를 아래와 같이 설명합니다.

여기서는 성서가 부족적 신앙을 넘어서 사랑의 하나님을 표현합니다.

호세아 이야기를 합니다.

호세아는 나이 들었고, 고멜은 젊은 처자입니다.

처음에는 호세아가 고멜에게 맞추어 줍니다.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이 많은 호세아는 다 맞추어 줄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아내인 고멜이 바람을 피웁니다. 고멜도 영원히 매력적인 것은 아니였습니다.

늙게 되자 아무도 그녀를 찾는 사람이 없게 됩니다. 용도패기된 것입니다. 노예시장에 버려지게 되지요. 호세아가 노예시장에 가보니 고멜이 있었습니다.

호세아가 고멜을 삽니다. 왜 호세아가 고멜을 샀을까요?

그것은 고멜의 존엄함을 되돌려 주기위해서입니다.

호세아가 고멜을 사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마음이다.

그녀의 잃어버린 존엄을 찾아 주기위해서....

우리는 인간적 존엄함을 잃어 버린지 오래입니다 .

 

호세아는 상처 입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예언자입니다.

왕실 예언자는 거짓 예언자입니다.

참 예언자라고 하는 사람은 민족적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활동합니다.

남이냐 북이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모스가 북쪽에 올라가 예언하니 아마시야가 ‘너는 너의 동네로 가라’ 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예언자는 그것을 넘어섭니다.

 

르호보암이 여로보암을 복속시키는데 실패합니다.

르호보암이 끈질깁니다.

여로보암으로서는 늘 불안합니다.

그래서 이집트의 힘을 빌어서 남왕국을 약화시키려고 합니다. 이집트 히삭을 불러들여 나라를 치려고 합니다.

히삭은 남왕국을 칩니다. 전쟁은 왕들에게 좋습니다. 전리품을 얻어 자기 부를 쌓기 때문입니다.

전쟁을 확대해 나갑니다. 팔레스타인 전역을 유린하게 됩니다.

여로보암이 히삭에게 부탁했을 때는 또 다른 약속이 있습니다. 그것은 막대한 전쟁비를 대는것입니다.

남과 북이 같이 약화됩니다. 약화된 틈을 타서 외세가 강화되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동서 교통로의 요지입니다. 동쪽 상인들이 앗시리아를 넘어 이스라엘을 통과해서 이집트로 갔습니다. King's how way 킹스 하우 웨이 상인들이 많은 물건을 싣고 가는 것을 볼때 꼭 왕의 행차처럼 보였기 때문에 왕이 대로라고 했습니다.

이 때 통과세를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이 부를 쌓아가는 방법은 이 상인들에게 통과세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계속되자 다른 곳으로 다니게 됩니다. 그래서 재정이 바닥나게 되지요..

이렇게 해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솔로몬시대에 착수했던 모든것이 중단됩니다. 분단상황의 난점입니다.

 

열왕기상 14;30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이 살아 있는 동안에 그들 사이에는 늘 전쟁이 있었다.

 

여로보암이 죽고 나서 나답이 왕이 됩니다.

15장에서 아비야가 유다왕이 되면서..

 

열왕기 상 15:17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올라와서 라마를 건축하고 어느 누구도 유다왕 아사에게 왕래하지 못하게 하였다.

 

라마는 예루살렘에서 북방으로 10키로 떨어진 곳. 목전까지 온것입니다.

유다왕 아사는 스스로 방어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여로보암이 이집트에게 원군을 청한 것처럼 남왕국은 시리아에 원군 청합니다.

 

열왕기 상 15: 18

그러자 아사는 주님의 성전 창고와 왕실 창고에 남아 있는 모든 은과 금을 모아 그의 신하들의 손에 들려서 다마스쿠스에 있는 시라아의 헤시온 왕의 아들인 다브림몬의 아들 벤하닷에게 보내면서 말하였다.

19절 나의 아버지와 그대의 아버지가 서로 동맹을 맺은 것과 같이 나와 그대도 서로 동맹을 맺읍시다. 여기에 그대에게 은과 금을 선물로 보냅니다. 부디 가셔서 이스라엘왕 바아사와 맺은 동맹을 파기하시고 그를 여기에서 떠나게 하여 주십시오.

 

아람왕은 전쟁을 하고 싶었습니다. 북부 갈릴리는 비옥한땅입니다.

전쟁 물자를 대 주면서 전쟁을 하라고 합니다.

아람은 유다의 청을 받아 기습 공격합니다. 갈릴리 지방을 침탈합니다. 아루묵강(?확실하지 않습니다. 메모가 잘 안되었네요..) 동편지역을 시리아왕에게 떼어주는 비극을 맞게 됩니다.

 

열왕기하 14장

남왕국의 아마시아는 갈릴리에서 사해까지 흐르는 강을 요르단강이라고 합니다.

사해로 들어간 물은 흘러나가는 데가 없다고 합니다. 해발 -400미터가 낮습니다. 그래서 물이 증발됩니다. 1990년 요르단과 이스라엘이 물 협정을 맺습니다.

이스라엘은 계약 맺고 15년이 넘도록 물 한방울 준적이 없습니다.

산업용수로 퍼다 써서 사해의 크기도 줄어들었습니다.

 

외세를 의존했다가 망한 사람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유다왕 아하스입니다. 그 때는 바벨론이 최대세력으로 발현하기 전일입니다.

시리아는 영토를 다마스쿠스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시리아를 아람이라고도 했습니다.

에브라임은 앗시리아를 치고 시리아를 칠 생각을 합니다.

시리아는 자기를 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리아와 에브라임이 연합해서 앗시리아를 치자고 합니다. 그리고 에돔, 블렛셋까지도 다 끌여들입니다. 남왕국 유다한테 ‘너도 가담해라‘ 고 합니다. 유다는 자기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멀리 떨어진 것처럼 생각이 되어 아람, 에브라임 연합에 동참하지 않습니다..

아람, 에브라임 연합이 남왕국을 쳐야 후한이 없겠다고 생각하여 쳐들어갑니다...

남왕국은 사면초가가 됩니다. 그래서 남왕국은 앗시리아에게 손을 내밉니다.

 

이사야 7;1

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인 유다왕 아하스가 나라를 다스릴 때에 시리아왕 르신이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 왕 베가와 함께 예루살렘을 치려고 올라왔지만, 도성을 정복할 수 없었다.

 

유다를 겁줄려고 했습니다.

이사야 10장에 보면 앗시리아가 쳐들어 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하스 왕의 마음이 사시나무 떨듯 떠는 모습이 이사야에 나와 있습니다.

아하스가 할 수 있는일은

그 때 당시에는 전쟁시 그냥 구해주는 것은 없었다…

 

열왕기 하 16장 7절

아하스는 앗시리아의 디글랏빌레셀왕에게 전령을 보내어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임금님의 신하이며 아들입니다. 올라오셔서 나를 공격하고 있는 시리아 왕과 이스라엘 왕의 손에서 나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선민을 자부했던 그들이 ‘나는 임금님의 신하이며 아들입니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8절

그런 다음에 아하스는 주님의 성전과 왕궁의 보물창고에 있는 금과 은을 모두 꺼내어 앗시리아의 왕에게 선물로 보냈다.

 

원군을 보내달라고 하고, 금은 보화도 보냅니다.

앗시리아가 시리아를 칩니다. 그래서 그후에 시리아가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북왕국도 앗시리아에 망합니다. 남왕국왕 아하스는 앗시리아에 잘보여야 겠기에 왕을 찾아갑니다.

앗시리아의 종교제도들은 대단했습니다.

앗시리아의 문화라는 것이 촌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마어마한 문화입니다. 보고 놀랬습니다.

아하스는 제사장에게 메시지를 보냅니다… 제단의 모형 신전 모형을 보고 똑같이 만들라고 합니다.

그래서 야훼 신앙이 무너지게 됩니다.

앗시리아가 남왕국에게 계속 요구해서 맥없이 바벨론에게 무너지게 합니다.

믿을 사람 하나 없지요...

결국은 북왕국이 앗시리아에 의해 망합니다.

 

그래도 희망의 조짐이 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망하고 나니까 앗시리아는 직접통치를 안합니다…

앗시리아의 정책 때문에 살수 없는 난민이 남쪽으로 내려옵니다…

그러자 남왕국의 히스기야 왕이 난민들을 따뜻하게 맞이합니다. 일자리를 주고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정책문서까지 만듭니다. 그것이 신명기입니다. 히스기야가 난민들의 역사를 받아들입니다. 남왕국이 중심이지만, 북왕국의 역사도 기록하게 합니다. 놀라운 사람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레위기 출애굽법전에서는 고아, 과부, 나그네 라고 이야기합니다.

신명기 법전에서는 제일 먼저 나그네부터 나옵니다. 난민을 지칭합니다. 이것이 정책의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고 백성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북왕국의 난민에게 일자리주고 품어주고 있습니다.

히스기야를 통해 마음의 통일을 이루어 나가기 시작합니다.

두 나라의 마음을 하나로 할 수 있을까 생각한 끝에 출애굽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남북왕국이 유월절을 치루어야 되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사발 통로 보냅니다. 나라 곳곳에 유월절을 같이 지내자고…

북쪽에 있는 사람들은 콧방귀를 뀌는 사람, 감동해서 내려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유월절의식을 감동적으로 치룹니다.

유월절 날짜가 있었는데 준비하는 날에 맞출 수가 없었습니다.

한달 늦추더라도 북쪽 사람들이 같이 참여하게 하기 위해서 날짜도 늦춥니다.

그래서 북쪽사람들이 같이 참여하게 하여 같이 치룹니다. (역대하 30장1~3절에 있는 내용입니다)

일주일하고 감동적이어서 또 합니다.

히스기야를 통해 분단되었던 남북왕조가 마음으로 통일이 됩니다.

이것을 제도적으로 통일한 사람이 요시야입니다.

히스기야 옆에 이사야 예언자가 있었습니다. 히스기야에게 그런 영감을 주었던 것이 이사야였습니다.

화합하도록 한것입니다.

역대하 30장 13절~27절까지는 유월절을 성대히 지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분적으로 보면

20절 주님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백성의 아픈 마음을 고쳐 주셨다.

23절 축제의 연장입니다. 남북이 하나되는 바탕이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기억을 통해 만들어낸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길로 돌이킬 수 있었던 것은 이사야 같은 위대한 예언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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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상준(09 12-05 09:12)
우리나라에도 히스기야같은 지도자와 이사야와 같은 예언자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혼자서는 어쨌든 갈 수 없을듯 합니다. 하나님의 영에 충만한 사람이 이 땅에서 나오길 소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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