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4代가 함께하는 시간들 2009년 12월 01일
작성자 장혜숙

지난 주엔 두 번의 장례식이 있었다. 마음이 우울한데 손녀 나은이가 와서 나의 우울을 씻어준다. 생후 11개월된 나은이가 나에게 참 많은 것을 가르친다. 그동안 알고 있었지만 별 관심 없었던 일을 상기시켜주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을 새롭게 알게 해준다.

 

돌아가신 분을 생각하며, 나은이를 돌보며 죽음과 생명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나은이. 아직 기저귀를 차고, 음식을 끓여서 먹여주고, 목욕도 시켜주고나은이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모든 것을 다 해줘야 한다. 이제 얼마 동안의 시간이 지나면 나은이는 반은 다 퍼내버리면서도 스스로 먹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몇 발작도 떼지 못한 채 넘어지면서도 혼자 걷겠다고 고집을 부릴 것이다. 또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용변도 스스로 가릴 것이고, 다음엔 옷도 자기 맘에 드는 것을 골라서 입을 것이다. 이렇게 아이가 크면서 거쳐가는 과정은 참 신비롭고 사랑스럽고 돌보는 것이 힘들지만 보람을 느낀다.

 

나에겐 88, 86세의 두 어머니가 계시다.

나은이가 성장하는 과정을 거꾸로 생각해본다. 그리고 다짐한다. 그 과정이 거꾸로이기 때문에 참 큰 고통이 따르겠지만 하늘이 정해준 질서와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를 가슴에 새기며 감당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두 분 어머니는 나은이가 혼자 서지도 걷지도 못했던, 아니 앉지도 못했던 기간만큼의 과정을 그대로 겪으실지도 모른다. 혼자 숟가락질을 하지 못하고, 씻겨줘야 하고, 용변도 못 가리는 과정을 거칠지도 모른다. 나은이가 열이 펄펄 끓어 한 밤이든 새벽이든 가리지 않고 업고 병원으로 뛰어간 것처럼 어머니를 업고 뛰어야 할 일이 생길 수도 있다. 보채는 아이 업고 몇 날 밤을 꼬박 새우듯이 어머니의 손을 잡고 꼬박 밤을 새기도 할 것이다.

나은이는 3살이 되면 그래도 좀 의사소통이 될텐데, 어쩌면 어머니들은 3년 정도 의사소통도 안되는 상황으로 지내시게 될 지도 모른다.

 

상황이 어떤 모습일지 기간은 얼마나 될 지 알 수 없지만 나은이가 보이는 성장과정을 거꾸로 겪게 됨은 당연하다. 그 광경을 바라보고 돌보는 나의 표정은 사뭇 다르겠지……..

나은이 기저귀를 갈아주면서도 변이 묻은 몸을 닦아주면서도 예쁘고 사랑스럽고 기쁜 마음인데, 어머니들에게 똑 같은 일을 하게 될 경우 나의 마음은 짜증스럽고 표정은 어두울 것 같다. 이것이 나의 실체이다. 이것이 나의 인격이다. 그래서 미래에 대한 대비로 마음을 바르게 가다듬고 잘 감당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가 간절해진다.

노쇠하고 병약한 부모를 돌본다는 것, 그건 효도가 아니라 최소한의 빚 갚음일 뿐이다. 효자는 못되어도 빚을 못 갚은 자식은 되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을 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내가 내 자식을 키울 땐 이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었다. 나날이, 시시각각으로 성장해가는 내 자식의 현재와 미래에만 모든 관심이 집중돼 있었다. 사람은 늙는다는 생각도 안 했고, 노년에 대한 이해도 없었다. 늙어서 죽게 된다는 당연한 일도 몰랐고, 관심도 전혀 없었다. 지금 내 딸도 아마 옛날의 나처럼 이 어미의 노년에 대한 생각은 전혀 안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은이가 자라는 만큼 자기 자신이 늙어간다는 생각도 전혀 안 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나은이는 첫 걸음을 떼기 위해 자꾸만 일어서고 보행보조기를 밀며 걷는 연습을 한다. 나은이가 자라는 만큼 나은이 엄마도 어미로서 조금씩 성숙해가고 있다. 지혜로운 어미가 되기를 기도한다.

어머니는 점점 걸음이 느려지시고, 움직임이 적은 만큼 입맛도 떨어지고, 얕은 잠을 주무신다.

 

나도 서서히 늙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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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상준(09 12-03 11:12)
정말 동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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