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성서학당 10 - 시 2009년 11월 24일
작성자 성서학당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

                                        김사인

하느님

가령 이런 시는

다시 한번 공들여 옮겨 적는 것만으로

새로 시 한 벌 지은 셈 쳐주실 수 없을까요

 

다리를 건너는 한사람이 보이네

가다가 서서 잠시 먼 산을 보고

가다가 쉬며 또 그러네

 

얼마 후 한 사람이 다리를 건너네

빠른 걸음으로 지나서 어느새 자취도 없고

그가 지나고 난 다리만 혼자서 허전하게 남아 있네

 

다리를 빨리 지나가는 사람은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이네

 

라는 시인데

(좋은 시는 얼마든지 있다구요?)

안되겠다면 도리없지요

그렇지만 하느님

너무 빨리 읽고 지나쳐

시를 외롭게는 말아주세요, 모쪼록

 

내 너무 별을 쳐다보아

별들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내 너무 하늘을 쳐다보아

하늘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덜덜 떨며 이 세상 버린 영혼입니다.

 

* 이성선 시인 (1941~2001.5)의 <다리> 전문과 <별을 보며>

첫 부분을 빌리다.

(글씨체가 다른 부분이 이성선 시에서 뽑은 것입니다)

 

감상) 옮겨적는, 것만으로 와 옮겨적는것, 만으로는 다릅니다.

시인들은 문장부호 같은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완전히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위에서 분절을 둠으로 앞엣것을 유심히 읽게 합니다. 시는 언어의 사원입니다. 시어는 우리가 다 아는 말을 씁니다. 어휘가 늘어나야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 확장됩니다.

시어는 일상어입니다. 일상어를 가지고 시적 감동을 만들어 냅니다. 감동이란? 마음이 움직이는것. 내 마음의 뭔가가 감해서 움직이게 하는것입니다.

 

호이나키 (생태 환경영성가) 가 현대인이 잃어버린 3가지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첫째, 장소 관련성을 잃어버렸다.

-옛날에는 내가 사는곳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 마을에서 일어나는 대소사가 나와 관련이 있었지요. 요즘은 앞뒤집이 모릅니다 내가 살고 있는곳의 책임이 없습니다.

둘째, 시적 감수성을 잃어버렸다. -일상적 삶속에서 우리 마음의 뭔가를 불러 일으킵니다. 우리 마음이 삭막해 집니다. 우리 삶 자체가 시입니다. 뭔가 시를 쓸때는 객관화 하는과정과 그 사람의 삶과 연루되어야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성선의 맑은 시를 똑같이 쓸수 없지만 옮겨 적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연민이라고 하는것은 그의 마음과 내마음이 일치되는것입니다. 어려운 일입니다.

 

 

길에서 중요한 것은 길을 가는동안 만나는 사람 풍경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멈춥니다. 목적지까지 가는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가는 행위가 목적입니다. 도로는 빠른 시간안에 도착하는것이 도로의 목표입니다. 길은 제 의미를 잃어버렸습니다. 길에는 이야기가 있어야 합니다. 루쉰= 노신 선생이 길은 처음부터 존재하는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다닌 그 길에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현대인들의 삭막해진 것은 이야기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길의 이야기를 회복하자는 의미에서 만든길이 제주의 올레길.. 지리산의 둘레길...

 

우리가 길을 외롭게 했다. 시를 외롭게는 말아주세요. 누구에게 한말입니까? 하나님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시를 빨리 읽고 지나치지 말아주세요라고 이야기하는 까닭은? 이 시인의 시작행위는 하나님 앞에서의 자기 삶입니다. 하나님 우리도 대충대충 보지 말게 해주세요라는.. 모쪼록은 부디 그렇게 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

이시는 앞서 세상을 떠난 이성선 시인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투사되었습니다.

 

 

<2월, 남녘 교회>

                                    박두규

다산초당 길목의 남녘교회에 가니

아무도 없고 예수님 혼자 놀고 있었다

갑자기 편해진 마음에

32년 전에 했던 기도를 해보았다

마당엔 새순을 피우기 위해

봄물을 가지 끄까지 끌어 올린

탱탱한 나무들이 보였다

 

스스로 봄이기를 기도했으니

이제 겨울코트부터 먼저 벗어야겠다

이 텅빈 교회처럼

저 알몸의 나무들처럼

비어 있지 않고서야 누구를 맞이할 건가

스스로 무엇을 피울 수 있을 것인가

 

남녘들을 슬고 온 바람 한 줄기가

교회의 첨탑에 감긴다

세상 어디에도 거처할 곳 없는 것이

한순간 머물다 간다

 

감상) 그를 기도로 이끈 것은 텅빈 교회.

교회 건물은 그냥 잘 짓는것이 아니고 신학이 있어야 합니다.

결국은 사람들에게는 자기의 영혼을 비추어 보도록 하는것이 거울인데 그것이 고요입니다.

겨울 코트속에 포함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욕심, 자아, 등을 벗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비어있기 때문에 누구를 맞이할 수 있고, 비어있기에 무엇을 피어낼수 있는것입니다.

뭔가 담으려면 비어 있어야 하지요.

3연의 바람의 신세와 시인의 신세가 같습니다.

우리교회도 뜨거운 열정도 있어야 하지만 고요함도 있어야 합니다.

떠돌던 사람들이 고요하게 외투를 벗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교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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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상준(09 11-27 11:11)
시가 없어진 마음이 너무 휑하다는 느낌에 요즘은 작은 시집을 한권 들고 다닙니다. 그런데 그 시들을 산문처럼 읽고 있는 저를 발견했는데 이 시들을 보니 조금 찔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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