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성서학당 9 - 시 2009년 11월 13일
작성자 성서학당

<저녁 창을 바라보며>

                                    -이성선-

어두워가는 저녁

방에 앉아

창에 드리운

나무 그림자를 바라봅니다.

 

떨리는 가지 위에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는

새 한 마리.

 

그 떨림이 방안 가득

넘쳐 있습니다.

 

새는 나를 볼 수 없지만

그의 모습은 내 안에 가득합니다.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시방 내 안에 향기를 뿌립니다.

 

방에 앉아

새의 모습을 바라보는 나도

어쩌면 모르는 어느 위대한 분의 창에

그림자 비추고 있는지도 몰라.

 

그분 품속에

내 영혼의 참모습을 드리우고

살아가는지도 몰라.

 

창을 바라보는 나는 갑자기

신비의 저녁강에

나를 비추고 앉아 있는 듯합니다.

 

감상) 지은이 이성선은 시어는 쉬운데 구조적으로 복잡하지 않고 새벽이슬 같이 맑은 마음으로 살려는 의지가 좋은 시인이라고 합니다.

나무 그림자를 바라보는데 떨리는 가지위에 새 한 마리가 까불까불...

이 시인은 그 새의 움직임이 우주를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넘쳐난다’는 말에서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주적인 떨림이 되는 순간 나와 무관한 것이 아니고 나와 깊은 연관이 있지요.

말 없는 말로 우주와 통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말없는 말이 온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름에 익숙하지요.

이 시인이 보여주는 세계는 갈라지지 않는 원형적인 일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조각난 마음을 기우고 있습니다.

아마 예수님의 마음도 그랬을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하는 것은 갈라놓는 일에 익숙합니다.

아담도 당신은 내게 준 여자가 먹으라고 했다고 하지요... 가름입니다.

너와 내가 분리되는것.

새 한 마리가 까부는 모습을 보고 있는게 아니고 창에 비친 모습을 보여줍니다.

‘비추고 있는지도 몰라‘ 라고 이야기 함으로 울림을, 생각할 여지를 주고 있습니다. 단정적으로 ‘있다’ 라고 하면 우리가 감동할 부분이 없지요.

‘몰라’라고 유보적으로 이야기 함으로 많은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이성선 시인은 늘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고 합니다.

이 시도 맑지요.. 맑은 영혼을 대할 때마다 찾아서 읽고 싶어지는 시라고 마무리 하셨습니다..

 

<늦게 온 소포>

                                        - 고두현-

밤에 온 소포를 받고 문 닫지 못한다.

서투른 글씨로 동여맨 겹겹의 매듭마다

주름진 손마디 한데 묶여 도착한

어머님 겨울 안부, 남쪽 섬 먼 길을

해풍도 마르지 않고 바삐 왔구나.

 

울타리 없는 곳에 혼자 남아

빈 지붕만 지키는 쓸쓸함

두터운 마분지에 싸고 또 싸서

속엣 것보다 포장 더 무겁게 담아 보낸

소포 끈 찬찬히 풀다 보면 낯선 서울살이

찌든 생활으 겉꺼풀들도 하나씩 벗겨지고

오래된 장갑 버선 한 짝

해진 내의까지 감기고 얽힌 무명실 줄 따라

펼쳐지더니 드디어 한지더미 속에서 놀란 듯

얼굴 내미는 남해산 유자 아홉 개.

 

<큰 집 뒤따메 올 유자가 잘 됐다고 몇 개 따서

너어 보내니 춥을 때 다려 먹거라. 고생 만앗지야

봄 볕치 풀리믄 또 조흔 일도 안 잇것나. 사람이

반다시 몸만 성키 추스르라>

 

헤쳐놓았던 몇 겹의 종이

다시 접었다 펼쳤다 밤새

남향의 문 닫지 못하고

무연히 콧등 시큰거려 내다 본 밖으로

새벽 눈발이 하얗게 손 흔들며

글썽글썽 녹고 있다.

 

감상) 1행에서 문을 닫지 못하느 이유는 어머니가 들어오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어서입니다.

의지적 동작이지요. 문 닫는것을 잃어 버린게 아니라 차마 닫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3연에서는 사투리가 있습니다. ‘고생 만앗지야’ 객지에서 고생하는 이들에겐 이런 말이 피로를 풀어줍니다. 표준말은 정제되고 정제된 말입니다. 사투리는 그 지역의 정서가 고스란히 느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짧은 문장으로 우리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 주고 있습니다.

어려운 단어가 없는데 일상적 단어인데 이 말들이 빚어내는 것이 화롯불처럼 따스하고 훈훈합니다. 여기는 이념, 철학도 없습니다. 삶이 무엇인지 본질을 꿰뚫고 있습니다

인생은 계기적 실존입니다.

인생은 어느 순간 어릴때 기억이 우리를 지탱하게 해줍니다.

어릴 때 감동되었던 것 중, 내 인생이 고단하고 힘들때 나를 일으켜 세워줄 말들이 있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중요합니다. 그 이야기가 나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게 합니다. 요즘은 이야기 없이 살고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듣고 살았느냐가 우리의 정체성을 정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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