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염치불구하고 다시 간절히 부탁 드립니다. 가능하시다면 꼭 좀 제 문제에 2009년 11월 05일
작성자 이재우

대한 답변을 주십시오.

 

 

 

 


안녕하세요. 이재우라는 하나님을 믿은지 24년째 되는


기독교 신자입니다.


몇 달전에 이곳에 제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드렸는데 지금까지 전혀


해결이 안 되고 막막해서 염치불구하고 제 이 글을 읽으시고 답변을


꼭 좀 달아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정 답변이 불가능하다면 잘 몰라서 답변을 못해주겠다라는 답변만이라도


꼭 좀 주십시오.


원래 저희 동네의 에덴교회라는 개신교 교회를 20년 넘게 다녔는데요.


제 18세 부터 지금까지(35세.)의 18년에 걸친 극심한 강박증과


하나님께 분노와 불만으로 희망이라는 것이 없어지고 죽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고(자살은 기독교 교리상 안 되는 것이니까요.


즉 자살하면 지옥에 간다 이 말이죠.)살려고


하니 지금 제 형편이 너무 고통스럽고 아무 희망이 없고 하나님께 대한


분노와 불만만 쌓여가고 있고 고2때부터 지금까지 18년의 세월이 너무나


아깝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사실 개신교에서는 소위 주입식 예배라고 해야하나요. 그런 주입식과


개인의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통제하고 맹목적으로 무조건


하나님,예수님,성령님을 찬양만 하는 예배만 하고 있다는


생각에 저는 20년이 넘게 다니는 개신교에서 오래전부터 불만이


많았고 그래서 결국 2년전에 예수원을 다녀왔는데 거기서 개신교를


중단하고 차라리 성공회로 옮기는 것이 어떻겠냐는 상담을 받아서


성공회로 갔습니다.


사실 저는 기존의 보수 개신교 분위기에 매우 신물이 난 상태라서


성공회 뿐만이 아니라 카톨릭에도 가 봤습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다 단점이 있더군요. 성공회는 교인수가 10만도 안 되는 소수종교라서


개인의 신앙생활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고 카톨릭은


교리의 많은 부분(예를 들어 1년 한 번 정도 의무적으로 신부님을 찾아가서


고해성사를 하는 장면이나 성모 마리아와 다른 성인을 지나치게 공경한다는


것등.)성경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두 교파 다,


너무나 게을렀다는 점에서 충격을 받았고 화도 많이 났습니다.


성공회주교좌성당 홈페이지의 질문답변란과 평화방송의 따뜻한 동행의


게시판란에 제 처지에 관해서 글을 올렸는데 답변을 성공회는 40일을


넘게 답변이 안 오고 평화방송은 60일이 넘도록 답변을 못 받았습니다.


사실 끝내 못받았다는 표현이 맞습니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평화방송의 경우 답변을 해 주겠다는 말만


7번정도인가 되풀이하면서(왜냐하면 답변이 너무 늦어져서 제가


사실 나중에 1주일에 한 번 꼴로 답변을 해달라는 전화부탁을 했기


때문에 말이죠.)결국에 가서 60일이 넘도록 답변이 없어서 제가


정말 화가 나서 강하게 따지자 우리가 반드시 당신의 질문에


답변을 해 줘야 할 의무라도 있냐라는 어이없는


뻔뻔한 답변을 했고 그래서 제가 더 화가 나서 따지자 전화상으로


저에게 뭐 이런 ㅂ ㅕ ㅇ   ㅅ ㅣ  ㄴ  같은 게 다 있냐는 식으로


먼저 저에게 쌍욕을 퍼부었고 이에 저도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저도 쌍욕으로 응수를 했고


그쪽에서 당황해서인지 전화를 끊었습니다.


참으로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왔습니다.


양치기 소년이 형님하고 절할 정도로 거짓말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명색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사람이 먼저 다른 사람에게 쌍욕이나


하고 있으니 말이죠.


게으름을 넘어서 ㅆ ㅓ  ㄱ 어빠졌다는 표현이 딱 맞는 직무태만도


보이고 말이죠.


성공회나 카톨릭이나 모두 말이죠.


담당하시는 신부님들이 바빠서라고 하면서 당연하게 이야기를 했는데


그럼 담당 신부님이 바쁘다는 이유로 질문 답변란이나 상담란에 대한


답변을 40일 넘게, 60일 넘게 답변을 안 하는 것이 정상입니까?


성경에 작은 일에도 충성하라고 했지요


자신의 본업이 바쁘다고 질문답변란이나 상담란에 올라온


질문들을 40일,60일 넘게 답변을 안 올릴 정도의 게으름을 넘어서


ㅆ  ㅓ ㄱ 은 정신이라면 차라리 질문답변란이나


상담란을 없애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안 믿는 사람의 사이트의 질문답변란에도 이런 식의 40일,60일이


넘도록 답변을 안 다는 경우는 보지 못했습니다.


보통 3일안에는 답변이 올라오니 말이죠.


그리고 제가 기존 보수 개신교에 신물이 난 이유중에 하나가 위에서


이미 말했듯이 맹목적인 하나님,예수님,성령님 찬양,예배와 헌신,봉사를


강조하는 분위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예수님,성령님이 절대적으로 의롭운지(사실 성경과 현실의


세상을 보면 윤리적으로 논리적으로 따져서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의롭다는 것에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사례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말입니다.)


또,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라라는 자신의 자녀를 자녀가 아닌 개만도 못한 노예로 대접을


하는지(요즘은 애완견을 기르는 경우라도 정상적인 정신상태를


주인이 가졌다면 애완견의 의사도 충분히 존중해주고


자신이 기르는 애완견에게 너는 죽을때까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오로지 나를 위해서 살라라고 이야기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개의 머리에 개 주인의 이름을 적는 행동도 하지 않고


말이죠.)왜 터무니없이 엄격한(신앙적으로 윤리적으로.)절제와


순종을 강요하는지 정말로 하나님,예수님,성령님에게


화가 너무나 많이 났었고 지금도 나고 있습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즐거운 것이 아닌 생지옥일 뿐이라는


것이 지금 저의 처지입니다.


단지 믿지 않으면  벌받고 죽음을 당하고 멸망을 당하니


어쩔 수 없이 참고 믿는 것 뿐입니다.


솔직히 말이죠.


사실 저는 기존의 보수 개신교에 비해서 성공회와 카톨릭은


윤리적으로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사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고 오히려 성공회와 카톨릭의 경우는 사람을


대하는 것이 보수 개신교보다 더 게으르고 성의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적어도 보수 개신교의 사이트의 질문답변란이나 상담란에는


40일,60일이 넘도록 답변을 안 달아주는 게으름을 넘어선


ㅆ ㅓ ㄱ 어 ㅃ ㅏ 짐을 보지 못했습니다.


보통 다음날에 답변이 오고 늦어도 3일 안에는 답변이 오니 말이죠.


하다못해 잘 몰라서 답변을 못해주겠다는 답변이라도 온다는

것입니다.


물론 윤리적으로 논리적으로 혹은 과학적으로 따져서 하나님을


믿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하나님은 절대 의로우시고 전지전능하시다라고


믿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을 비웃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다만 저처럼 믿는 사람도 많다는 것이고 모든 기독교인에게


다 위의 식의 맹목적인 신앙과 헌신을 강요하지 말아달라는 것


뿐입니다. 이렇게 믿는 사람도 있고 저렇게 믿는 사람도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닙니까?


사람은 사람의 얼굴처럼 다 제각각이니 말이죠.


그리고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저는 하나님의 능력적인 면,


즉, 하나님의 전지전능한 면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따지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신이고 전지전능하시니 과학이나 수학,논리적으로


다 따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전지전능하시니 사람의 과학과 수학과 논리도 있지만 그걸


초월하는 면도 있다는 것입니다.


또 그래야 전지전능한 것이고 말이죠.


즉, 하나님의 능력에 관해서는 과학,수학,논리적으로 따질 생각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저는 하나님이 윤리적인 면은 분명히 윤리적으로 논리적으로


따져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명하신 교리와 사람에게 행하시는 섭리에

 

관해서 말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전지전능하시니 사람의 과학,수학,논리로


다 알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지만 하나님의 교리와


사람에게 행하시는 섭리만큼은 당연히 사람이 윤리적으로


논리적으로 납득을 할 수가 있어야 됩니다.


안 그렇습니까? 이건 하나님의 능력문제가 아닌 하나님의 윤리문제이고


사람에게 명하신 교리나 사람을 대하는 하나님의 섭리문제이니 말이죠.


이 문제만큼은 사람이 윤리적으로 논리적으로 명확하게 이해를 할 수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말이 너무 길어졌는데요. 본론으로 들어가서 저의 하나님에 대한


의문과 분노와 저의 지금까지 18년을 앓고 있는 강박증에 대해서


자세하게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사실 저는 이 2가지 문제에 있어서 그동안 오랫동안 개신교,카톨릭,


성공회의 교회나 성당,기도원,피정의 집이나 상담소나 기독교 기관


홈페이지같은 곳을 많이 다녔지만 지금까지


아무 성과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방식이 보수 개신교나


성공회나 카톨릭이나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에 말이죠.


그래서 사실상 마지막 희망으로 진보 개신교의 대표적인 교회인


이곳 청파감리교회에 의지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작은 일에도 충성하라라는 성경 말씀도 있고


또 지극히 작은 소자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말씀도


있듯이 정 답변을 몰라서 하실 수 없으시면 몰라도 하실 수


있으시다면 꼭 좀 자세한 답변을 부탁 드립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저같은 경우의 사람을 저는 인터넷에서 많이 보았습니다.


저와 저같은 사람에게 근본적인 해결책을 준다는 마음으로 하실 수 있으시면


꼭 좀 자세한 답변을 부탁 드립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요.

 


제 강박증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를 하자면요.


저는 1992년, 당시 18살부터 지금까지 총 18년(정확히 말하면


17년 6개월이죠.)을 강박증에 시달렸습니다.


하루에 강박증을 앓는 시간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하루 온종일입니다.


심하면 하루 왠 종일 2~3초에 한 번 씩, 좀 나으면 하루 왠 종일


몇 분에 하나씩 강박적인 생각이 나서 힘이 듭니다.


강박증이 왜 힘드냐고 하면 저의 경우는, 강박적인 생각이


난다면 이성을 가지고 그 강박적인 생각을 떨치려고 하니까 힘이

듭니다.


강박증 자체가 힘이 든다기보다 강박적인 생각이 나면 그 강박적인


생각을 뿌리쳐야 해서 힘이 든 것입니다.


그리고 1992년에서 지금까지 강박적인 생각이 무슨 것이냐고 하면


처음 2년간인가는 신성모독적인 생각이었고(하나님을 욕하고 저주하고


안 믿고 싶은 생각.)또 다음에는 윤리적으로 나쁜 생각이었습니다.


몇 년을 이것으로 보냈습니다.


그 생각이 무엇이냐 하면은요. 예를 들어 살인,강도,폭행, 기타 성적인


나쁜 생각이 나고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마음을 동원해 의지적으로


그 생각을 떨쳐낸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2002년부터 올해까지 앓고 있는 고통에 대한 강박증은


고통에 관한 강박증입니다.


사실 이 강박증이 먼저 번의 2강박증보다 훨씬 견디기 힘이 듭니다.


이 강박증의 내용이 무엇이냐 하면은요.


예를 들어서 제가 사극을 좋아하는데요.


제가 대조영을 보고 있다고 하면 그런 사극의 경우는 특성상


전쟁장면이 많은데 제가 주인공 대조영이나 다른 사람과 결투를 벌이는


상상이 많이 떠오르는 경우가 많은데 제가 만약 대조영과 결투를 하다가


제가 져서 죽을 때 대조영의 검에 맞아 죽는다는 가정을 혹은 생각을


하게 되고(이게 통제가 안 됨.)이 경우 그 고통을 의연하게 견뎌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 생각을 해서 그 고통에 견딜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때까지 생각을 계속 하는 것입니다.


비단 사극의 결투장면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드라마나 영화나 인터넷이나 뉴스나 신문이나 다른 사람이나(사람의


경우는 크든지 아니면 인상이 험한 사람.)저서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지금 드라마나 영화나 인터넷을 제대로 할 수가 없고


저서를 읽는 것도 그렇고 뉴스나 신문을 보는 것도 그렇고


밖에 나서는 경우도 그렇고(밖에 나가면 덩치가 크던가 인상이


사납다라는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하나둘이 아니니 말이죠.)


몸을 씼는 것도 그렇고 생각을 하거나 말을 하는 것도 그렇고


(강박증을 유발하는 단어들과 생각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과 말도 마음대로 편하게 못하고 있습니다.)


밖에 나갔을때 여러 가게의 간판이나 가게에 붙어있는


그림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밖에 나갈 때 고통에


대한 강박증을 유발하는 가게나 가게의 간판이나 혹은


가게에 붙어있는 사진이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안경집을 지나가는데 안경집에 붙어있는 사람이 인상이


험하거나 날카로우면 고통에 대한 강박적인 생각이


난다는 것입니다. 또 자동차 가게같은 곳을 지나쳐도


제가 자동차에 부딪치는 생각이 난다는 것입니다.)


또 전반적으로 기계에 대한 강박증이 심해서


기계에 관련된 가게를 지나치면 정말로 고통스럽습니다.


이러다보니 밖에 마음놓고 나갈 수가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나가면 강박증을 유발하는 여러 가게를


거치면서 강박증과 싸우면서 제가 가야되는 곳이나


(예를 들면 교회의 예배.)꼭 가고 싶은 곳(예를 들어서


백화점에 제가 꼭 원하는 물건이 있어서 백화점에 가는


식.)이 고통에 대한 강박증은 먼저 번의 2가지 강박증보다


훨씬 견디기가 힘이 듭니다.


사실 제가 서울에 사는데 제 동내밖에 멀리 나간 것이


2~3년은 된 것 같습니다. 정말 마음놓고 밖에 멀리 나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푹 쉬고 싶고 또 보고 싶었던


드라마나 영화, 책,인터넷 기사를 보고 싶습니다.


노래방에도 가고 싶고 여행도 가고 싶습니다.


언제쯤이나 이런 것들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쓰면서 다시 하나님에 대한 분노가 생기는군요.


하나님 자신이 원하는대로 살지 않는다고 명색이 자녀라는


저를 도대체 어디까지 괴롭게 하실지 말이죠.


하나님의 사랑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보다 낫다고


하는데 저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어느 정상적인 부모가 자기 자식에게 너는 일평생


오로지 내가 원하는대로 살아야 한다라고 하고 이걸 어기면 너를


죽이고 시신을 물에 던지겠다고 말을 할까요?


자녀인 저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그저 자신이


사람에게 예배받고 찬양받고 순종을 받고 헌신,희생,봉사를


받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일까요?


이런 부모가 진정한 아버지라는(하나님 아버지.)이야기를 들을


자격이 있을까요?


남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은 알아도 남을 존중하는 것은


전혀에 가깝게 없지요.


남을 사랑하면 다 되는 것입니까? 존중이 없는 사랑이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감정이 격해져서 말을 엉뚱한데로 끌고 가서 죄송합니다.


다시 정상적으로 이야기를 하자면은요.


신성모독적인 생각이나 윤리적으로 나쁜 생각이 날때 그것을


뿌리치는 것보다 당연히 제가 어떤 고통에 당하는 생각이


나면(예를 들어서 제가 영화를 보고 있다고 치면 그 영화에서


주인공이든 혹은 다른 인물이던간에 어느 인물이 다른 인물에


대해서 증오심이 가득해서 지옥  ㅇ ㅔ ㄴ ㅏ 가라고 말한다면


당연히 제가 지옥에 가는 상상을 하게 되고 그러면 지옥에


떨어져도 그 고통을 견딜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때까지 계속해서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이렇게 고통에 대한 생각이 자꾸 들고


신성모독적인 생각이나 윤리적으로 나쁜 생각처럼 그 생각을


뿌리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고통에 당하는 생각이 날 때


그 고통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때까지,


즉 그 고통을 극복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때까지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뿌리치는 것인 신성모독이나


윤리적으로 나쁜 생각과는 그래서 다릅니다.


받아들이고 극복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더 힘들고 그래서 신성모독이나 윤리적으로 나쁜 생각을


대할 때보다 다른 일을 더 못하는 것입니다.


위에서 이야기를 했듯이 드라마나 영화를 보거나 인터넷을 하거나


(정확히 말해서 네이버나 다음에서 나오는 뉴스 기사들의 경우이지요.


고통에 대한 강박증을 유발할 수 있는 내용이 많이 있으니 말이죠.)


저서를 읽거나 밖에 나가거나 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입니다.


또 이 고통이 전통적인 강박적인 생각과(예를 들어서 손을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몇 십분~ 한 시간 아니면 두 시간까지 씼어야


한다는 것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강박증에 걸린 사람이 흔히 하는 대표적인 행동이고


고통에 대한 강박적인 생각이 처음에 날 때전에도 제 경우는


심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강박증이 있었습니다.)결합을 해서


원래 처음부터 있었던 강박적인 행동을 크게 늘리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목욕의 경우, 고통에 대한 강박적인 사고가 생기기 전에도


보통 3~4시간이 걸렸는데 고통에 대한 강박적인 사고와 결합이


된 후로는 보통 8시간~10시간까지 걸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머리감기의 경우를 하나 더 이야기를 하면 예전에는 머리를 감는데


솔직히 40분~1시간 정도였다면 고통에 대한 강박적인 사고가 생긴


이후로는 2시간~3시간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양치의 경우는 원래는 10~15분 정도였는데 고통에 대한 강박적인


사고가 생긴 후로는 40분~1시간 반 정도가 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몸을 씼는 것 때문에 또 다른 강박증에 의한 피로가


쌓이고 겹쳐서 더 이상 몸을 씻을 힘이 잘 안 난다는 것입니다.


매일마다 제가 해야하는 행동이나 하는, 혹은 하는 행동이 거의 다


이런 식이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올해까지 하면 이런 강박증이 거의 매일매일 하루종일 생각이 났고


그 생각들을 뿌리치거나 아니면 받아들인 후에 극복을 했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거의 한계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는 것이 한계상황에 왔다는 것입니다.


제가 강박증이 처음으로 시작이 되었을 때 이야기하자면 길지만


제가 처음에 교회를 나갔을 때가 12세였을 때인데 12세부터


13세까지는 나름대로 열심히 교회를 다니고 믿었는데 사실은


그때부터 강박적인 생각이 나기 시작해서(주로 신성모독적인


것입니다.)그래서 그것이 힘들어서 교회를 열심히 나가는


것을 포기하고 나니 그런 강박적인 생각이 거의 나지 않았고


그것이 17세때까지 이어져 왔는데 18세부터 예전의 12,13세


때와 비교가 안 될 만큼 강하게 다시 생겼다는 것입니다.


거의 매일 하루종일 생각이 나고 뿌리치고 하니 말이죠.


12,13세때는 하루에 2~3시간 정도밖에 생각이 안 났는데


말이죠.


그래서 저는 18세때 이것이 하나님이 저에게 다시 예전의


12,13세때의 열정적인 신앙으로 돌아오라는 메시지로


들렸습니다.


그러나 18세때와 12,13때와는 상황이 전혀 달라졌습니다.


초기의 12,13세때는 사실 교회를 열심히 나갔을 뿐이고 그래서


성경의 아주 기초적인 교리(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


또 삼위일체,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라는 유일신 교리,


주기도문,사도신경과 십계명 정도였습니다.)만 알았고


그래서 교회에서 흔히 말하는대로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


좋은 하나님으로 인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18세가 되고 그래서 신성모독적인 강박증에 심하게


시달릴때 제가 한 가지 생각이 난 것이 제가 매일 성경을 4장씩


읽으면(그러면 1년에 한 번을 다 통독을 할 수 있으니 말이죠.)


그 정성을 봐서 하나님이 강박증을 고쳐주시지 않겠냐는 것이었고


그래서 매일 4장씩 해서 1년동안 신성모독적인 강박증을 사투를


벌여가면서 다 읽었다는 것입니다.


다 읽고 나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기존에 제가 알고 있던 하나님에 대한 인상이 거의 송두리째


뒤집어졌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교회에서 사랑의 하나님,좋은 하나님 이미지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창세기에서 묵시록까지 하나님은 사람에게 복과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것보다 벌주고 죽이고 멸망을 시킨 것이 훨씬 많으니


말이죠.


거의 대부분이 벌주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내용이다 보니


기독교 안티들이 흔히 하는 소리대로 잔인한 하나님이 확실히


인식이 되었습니다. 또 제가 기존에 알고 있던 몰랐는데


소위,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 주 하나님을


사랑하라라는 말씀으로 대변이 되는 인간의 자아와 자존심,권리,


의사를 일체 부인하고 사람을 노예나 로보트로 대하는 소위


독재자 하나님의 인상이 확실히 생겼습니다.


또 사람에게 잔인하게 대하는 것도 그 경우는 전부 인간이


크나큰 죄악을 저질러서 생긴 것이 아니고 많은 부분은 전혀


잘못이 없거나 있다해도 사소한 죄악이거나 또 큰 죄악이라


치더라도 그 벌주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이 너무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경우에 따라 아무 죄도 없는데도


사람을 벌주고 죽이고(대표적인 것이 다윗왕 말년에 있었던


인구조사 건이죠. 아무 죄도 없었던 백성 7만 명이 3일동안에


죽었고 하나님 자신도 이걸 뉘우쳤다고 나오지만 죽은 7만 명을


다시 살려주지 않으셨지요.)또 잘못을 했다쳐도 사소한 잘못으로


벌주고 죽이고(롯의 아내가 대표적인 경우죠.)또 사람을 상을


주고 벌을 주고 죽이고 멸망을 시키시는 것이 너무나 형평성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사소한 잘못으로 죽은 대표적인 경우인 롯의 아내의


경우와 대조적으로 구약 최악의 인물의 대표적인 인물중


하나인 므낫세 왕은 벌은 받았지만 결국 구원을 받았지요.


다윗의 경우도 간음을 하고 이 사실을 숨길려고 밧세바의 남편을


죽였고 남편을 죽일려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 여러 명이 죽었지요.


사실 이 경우는 회개한다고 용서받고 살 수 있는 죄가 아니지요.


정상적인 상식으로는 아무리 뉘우친다고 용서받고 정상적으로


살 수 있는 죄가 아니지요. 상식적인 인간의 세상에서 이런 죄를


범했다면 뉘우친다고 해도 당연히 사형을 당할 수 밖에 없지요.


물론 다윗왕의 경우 거기에 상응하는 고통을 당하긴 했지만


다른 사람에 비해서 형평성면에서 완전히 어긋나 버렸습니다.


당시 어떤 사람이 간음과 사람을 죽였다면 아무리 뉘우친다고


사형이 안 되겠습니까?


또 죄질면에서 따져서 억울하게 과잉처벌을 당한 대표적인


롯의 아내와 보면 더욱 더 기가 막혔습니다.


쓰다 보니 또 길어지는 것 같에서 간략하게 쓰고자 더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안 쓰겠습니다.


어쨌든간에 저는 이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고 또 제가 예전의 12,13세때처럼 열심히 믿어야 하는


이유도 공감이 안 되었습니다.


제가 예전에 12,13세때 열심히 믿은 것은 그냥 자발적으로 열심히


믿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억지로 열심히 믿으라고 강요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으니 하나님에 대한 예배와 찬양,순종,헌신,


봉사,희생을 강요하는 하나님에게 매우 큰 부담과 분노를


느꼈습니다.


제 성격을 말하자면 저는 어릴 때부터 자유분방한 성격이고 남에게


간섭을 받는 것을 매우 싫어한 성격이었는데 말이죠.


사람의 자유와 권리와 자아,자존심,의사를 송두리째 무시하고


무조건 하루 종일 해서 영원히 하나님께 예배와 복종,헌신,


봉사,희생을 하라는 하나님의 모습이 정말로 싫었고


그래서 그렇게 해야 17년을 겪은 강박증이 나을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게 하질 못했습니다.


이게 너무나 지나친 요구이기 때문에 말이죠.


그래서 아직까지 저의 강박증을 고쳐주지 않으시고 또 앞으로도


무조건 항복하고 소위, 하루종일 영원히 하나님에게 예배,찬양,


순종,헌신,봉사,희생을 하지 않는다면 평생 안 고쳐주고


또 죽어서 거기에 대한 문책으로 천국에서 제대로 못 살든가


아니면 멸망에 처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제 생각에는


말이죠.


마지막으로 하나 더 이야기를 하자면 제가 하나님에게 분노하는


마지막 이유인데요. 제가 하나님에 대한 무조건적인 예배,찬양,


순종,헌신,봉사,희생을 하지 않는다고 17년 반 동안 저를


반지옥 상태로 내버려 두셨습니다.


근본적으로 말이죠. 물론 솔직히 말하자면 강박증의 강도를


좀 조절해 주신 것은 있습니다. 이거 인정합니다.


정말 어떨 때 강박증이 너무나 심해서 더 이상 못 견디겠다라는


생각이 들때는 잠시, 하루,이틀 정도는 강박증이 완화가


되더군요.


그러다가 다시 원래의 강박증으로 돌아가서 또 고통을 받지요.


이런 상태를 17년 반동안 겪으니 제 개인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분노가 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겠고 ㅈ ㅜ ㄱ 여


버리고 싶다라는 생각이나 하나님에 대한 쌍욕을 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하나님에 대해서 분노나 기가 막힌 부분이 하나,둘이


아닙니다.


그래서 억지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를 17년 반 동안 고통을 주셨고


아직도 항복하고 절대복종을 하지 않는다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강박증에 시달리게 하시거나 아니면 저에게 병이나 장애,


사고나 다른 사람에 의한 학대나 죽음이나 가난이나 가족을


치시는 것으로 저를 더 고통으로 몰아가실 수도 있겠지요.


뭘 어떻게 해야할지 전혀 감이 안 잡힙니다.


이제는 솔직히 희망이라는 것이 없어지고 죽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고(자살은 기독교 교리상 안 되는 것이니까요.


즉 자살하면 지옥에 간다 이 말이죠.)살려고


하니 지금 제 형편이 너무 고통스럽고 아무 희망이 없고


하나님께 대한 분노와 불만만 쌓여가고 있고 이래서


반지옥 상태로 아무것도 못하고


17년 반을 시달리고 있습니다.


제가 네이버 지식 in에 이런 저의 처치에 관한 글을 썼을 때,


어떤 개신교 성도님 2명이 예전에 네이버 지식 in에 썼던


제 글을 보시고 당신은 병을 고치는 것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로 되어야 하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때는 동의가 안 갔지만 지금은 맞는 말 같네요.


인정하기 싫지만 맞는 말 같네요.


그래서 제가 왜 성경에 나오는대로 살아야 하고,


하나님에게 불만이나 이해못하는 부분에 대해서


이해가 되는 답변을 이곳 청파감리교회에서 들을려고


합니다.


인사말을 하는 곳에서 이미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몇 달전에 이곳 청파감리교회에 전화로 문의를


했고 그래서 김기석 목사님께서 읽으시고 시간이


좀 오래걸리겠지만 답변을 달아 주시겠다고


하셨는데 목사님의 바쁜 스케줄과 목사님 따님


문제로 인하여 제가 결국 포기를 했었고


다른 곳을 알아 봤습니다.


여태까지는 어느 교파이던간에 단 한명도 답변을


못 하셨습니다.


천주교나 성공회나 개신교나 말이죠.


한계상황인 이 상황이 너무나 힘들어서 정말로


염치불구하고 다시 김기석 목사님과 아니면


다른 이 교회 성직자님에게 제 문제에 대해서


질문을 다시 하고자 합니다.


지금이라도 답변이 되었으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에 대해서 수긍이 가고 하나님에 긍정적인 생각이


되고 또 그래야 하나님과의 관계가 개선이 되어서 제가 치료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제가 지금 이 글을 e - mail로 보냅니다. 제가 말한 요구조건이


해결이 가능하다면 가능하다로 아니면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답변을


빨리 좀 해 주십시오. 만약 불가능하시다면 저의 이런 문제를


잘 해결해 줄 수 있는 다른 기독교 교회나,성당,기도원,수도원이나


아니면 외국의 성직자님이나 기독교 신학자님이나 기관이라도 꼭 좀


가르쳐 주십시오.


부탁 드립니다.


제가 하나님의 교리와 섭리에 관해서 분노와 불만이 있는 점을


8가지로 나누어서 썼습니다.


저한테 이곳의 게시판의 꼬릿말 댓글이나 아니면 리플글이나


아니면 제 e - mail로 답변을 보내 주십시오.(제 e - mail 주소는


newtype54@naver.com. 입니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제 이 본글의


꼬릿말 댓글로는 답변을 하지 말아 주십시오.)


답변과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여기시면 혹 아는 곳이 있으시면


다른 곳을 소개를 좀 해 주시던가 아니면 외국의 성직자님이나


기관이라도 아신다면 꼭 좀 소개를 해 주십시오.


제가 그곳을 꼭 가겠습니다.


제 e - mail 주소는 newtype54@naver.com입니다.

 

 

 


1. 왜 하나님은 성경을 전체적으로 봤을 때 사랑과 자비를 베푼 것보다


벌주고 죽이고 멸망을 시키신 것이 훨씬 많은지요? 사람이 죄를 너무


많이 지어서 그렇다고 하면 간단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할 수 있으시면 김기석 목사님과 아니면


다른 이 교회 성직자님의 정확하고 자세한(윤리와 논리에 맞게.)


답변을 부탁 드립니다.

 

 

 

 

 

2. 왜 하나님은 아무 죄도 없는 사람에게(예를 들어 다윗왕 말년에


있었던 온역사건.)벌이나 고통을 주시는지? 고통의 경우는 시편에


그런 시가 있지요. 그 시편을 쓴 기자는 자신이 하나님에게 벌을


받을 정도로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자신이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그래서 왜 하나님이 자신을 그렇게 내버려 두시는지, 언제까지


졸고 주무시고 계실 것인지에 대해서 따졌지요. 문제는 그 시편에서


응답이 되는 시편이 없었다는 것이고 말이죠. 보통 안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잔인한 면의 대표적인 것을 꼽는 것이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하면서 가나안 원주민을 모두 몰살시키는 것을 꼽지만 저는 이것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납득이 가기 때문에 이걸 가지고 질문을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왜 다윗 왕 말년에 아무 죄도 없는 사람 7만 명을


죽이셨는지, 또 뉘우치셨다고 하시는데 왜 다시 살려주지 않으셨는지에


대해서 정말 알고 싶습니다. 욥기에서는 욥이 고통을 당하는 것에


대해서 엘리후가 사람을 완전하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시련을 주시는


것이니 참고 기다리면 복을 주신다고 말했지요.


그러나 이 다윗 왕 말년의 온역사건은 사람을 완전하게 하게 위해서


하신 시련도 아니고 그저 벌이었을 뿐입니다.


벌로서 아무 죄도 없는 사람 7만 명을 죽이신 것인데 왜 죽이셨는지


뉘우치시고 나서도 왜 다시 살려주지 않으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할 수 있으시면 김기석 목사님과 아니면


다른 이 교회 성직자님의 정확하고 자세한(윤리와 논리에 맞게.)


답변을 부탁 드립니다.

 

 

 

 

3. 왜 하나님은 사람에게 이에는 이,눈에는 눈으로 처벌을 하라고


하셔놓고(이것은 과잉처벌을 하지 말라는 의미이지요.) 자신은


사람에게 과잉처벌을 하는 것을 전혀 꺼리지를 않으시는지요?


대표적인 예가 롯의 아내와 지옥의 경우가 아닙니까?


지옥의 경우, 반드시 흉악한 인간이 끝까지 회개도 하지 않는


경우만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지요.


정말 세상에서 법 없이도 살만한 사람이다라는 소리를 듣는


좋은 사람도 단지 예수님을 안 믿었다는 이유로 죽고 나서


지옥에 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제 경우는 저희 외할머니가 그렇고 말이죠.


예수님을 안 믿은 것이 영원히 지옥에서 지내야 할 정도로


나쁜 죄입니까?


그리고 이것은 또 형평성에도 너무나 어긋납니다.


모세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 정탐사건 후에 모두가 낙심해서 가나안을


포기하고 이집트로 돌아갈려고 하자 여호수아와 갈렙이


말렸고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죽일려고 하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진노하셔서 결국에는 20세 이상의 성인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면 한 사람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은 사건이 있는데 이때까지 이스라엘 백성은 20가지가


넘는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그러고도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20세 이상의 성인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면 단 사람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그래도


결국 구원은 받았습니다.


원래 다 죽이실려고 했지만 모세와 아론의 간곡한 청원으로


죄를 사함받고 구원은 받았지요.


그러나 지금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죽은 사람의 경우는 모세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이 체험했던 20가지가 넘는 기적을 단 한 번도


체험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20가지 중에 5분의 1인 4가지의 기적만 체험하고도


안 믿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래도 안 믿는다면 자신이 그동안 살아오면서 고통을 너무 많이


당해서 하나님에 대한 분노가 쌓였거나 아니면 성경 교리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불만이 너무 많거나 아니면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인답게 살지 못해서 이것에 실망하고


분노하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앞의 제가 말한 3가지 모두에


해당하는 사람이겠죠.


그런 사람을 제외한다면 4가지의 기적만 보고도 안 믿을 사람은


없다고 봅니다. 제가 말한 4가지의 예외 경우가 아닌데도 안 믿는


사람은 그야말로 미친 사람이죠.


왜 2천년이 다 되어가는 동안에 단 4가지의 기적도 체험하지


못해서 믿지 않고 죽어서 멸망에 처해지게 되는지


정말 묻고 싶습니다.


이런 차별이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이 세상에 아무리 흉악한 인간이라도 지옥에


영원히 지내야 할 정도로 잘못한 사람, 이 세상에


단 한명도 없습니다.


지옥에서 영원히 지내야 할 정도로 잘못을 저지를려면


자신이 영원히 살면서 영원히 죄를 저질러야 가능한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사람은 보통 100살도 못 살고 오래 산다는 사람도


아무리 오래 살아도 130살을 넘기지 못합니다.


왜 사람이 자기가 지은 죄에 비해서 터무니없이 과잉처벌로서


지옥에서 영원히 지내야 하는지 그걸 묻고 싶습니다.


흉악한 사람이나 일반 사람이나 비록 하나님은 안 믿었다고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서 법 없이도 살만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 모두가 말이죠.


에스겔서에서 하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자신은 악인이 멸망하는 것을 조금도 기뻐하지 않는다고 말이죠.


악인이 멸망하는 것을 조금도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분이(물론


반대로 신명기 끝 부분의 이스라엘 백성이 순종하지 않으면


멸하시겠다고 하고 이 경우 이왕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을 주시는 것을 기뻐하신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을 멸하시기를


기뻐하신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것의 경우에도 에스겔서와


서로 말이 맞지가 않지요.)왜 이렇게 잘못에 비해서 사람에게


지나치게 벌과 고통을 주시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에는 이라는 법을


주셔놓고 정작 하나님 자신은 법을 어기고 있지 않습니까?


법이라는 것이 법을 만든 사람이 가장 앞장서서 법을 준수해야


하는데 법을 만든 장본인이 법을 안 지키고 마음대로 행동한다면


그 법이 제대로 시행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왜 하나님이 에스겔서의 악인이 멸망하는 것도 조금도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하면서 또 구약에서 이에는 이라는 법을 사람에게


내리셔놓고 자신이 만든 법을 스스로 어겨가시면서까지


왜 사람에게 터무니없이 과잉처벌을 하시는지 그 이유를 제가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게 설명을 좀 해 주십시오.


이래서 기독교 안티들은 하나님을 잔인한 하나님으로 비판하고


욕하는 것이 아닙니까?


여기에 대해서 할 수 있으시면 김기석 목사님과 아니면


다른 이 교회 성직자님의 정확하고 자세한(윤리와 논리에 맞게.)


답변을 부탁 드립니다.

 

 

 

 


3. 왜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법을 자신이 제대로 안 지키시고 또


하나님 자신은 자신의 법을 제대로 안 지키시면서 왜 사람에게만


자신의 법을 철저하게 지키라고 강요를 하시는지요?

 

 

하나님은 이렇게 된다면 뭐든지 자신의 마음대로 다 하겠다고


하시는 것이고 이게 올바른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왜 사람에게는 과잉처벌을 하지 말라고 하셔놓고 자신은


과잉처벌을 당연하게 하시고 사람에게 연좌제를 하지 말라고


하셔놓고 하나님 자신은 자신에게 죄를 지은 사람은


3,4대까지 처벌을 하신다고 선포를 하시고 행동을 하십니까?


그리고 왜 경우에 따라서는 하나님 자신이 자신에게 범죄하는


사람을 그 3,4대까지 벌을 준다고 선포하신 그 약속조차


어기시고 에돔 사람이나 엘리의 경우는 자손대대로 영원히


저주하고 심판을 하셨는지요?


법을 만든 사람이 당연히 가장 앞장서서 법을 지키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개판이 된 가장 큰 이유가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나 돈있고 힘 있는 사람이 법을 안 지키기 때문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경우도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이 세상에서 제일 높으신


분이니 가장 앞장서서 법을 지키시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닙니까?


왜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법을 자신은 제대로 안 지키시면서


사람에게만 자신의 법을 철저하게 지키라고 강요를 하시는 것입니까?


여기에 대해서 할 수 있으시면 김기석 목사님과 아니면


다른 이 교회 성직자님의 정확하고 자세한(윤리와 논리에 맞게.)


답변을 부탁 드립니다.

 

 

 


4. 왜 하나님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잘못된 법과 교리를


말씀하셔놓고 왜 우리에게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법을 지키라고


하시는지요?

 

 


하나님의 대표적인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잘못된 법과


교리를 저보고 들라면 이렇습니다. 구약에서 창녀의 존재를


일절 인정하지 않으시고, 또 신약에서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것도 간음이라고 하셔놓고 왜 하나님은


일부다처제와 강간을 용인하셨습니까?


구약의 많은 사람은 하나님을 잘 믿어도 일부다처제를 당연하게


했고 하나님은 일부다처제를 불법으로 정하지 않으셨습니다.


또 강간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상식적으로 간음보다 강간이 더 나쁜데 간음에 관해서는


창녀의 존재도 일절 인정하지 않으시면서 왜 강간은


부분적으로 용인하셨습니까?


구약에서 어째서 이스라엘 법에서 남편이나 약혼자가 없는


여자가 강간을 당하면 강간을 한 당사자가 여자의 부모에게


은 오십 세겔을 주고(당시 노동자 3일 급여. 즉 터무니없이


적은 배상금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아내로 삼으라고 하셔서 강간을 부분적으로


용인하셨습니까?


이 경우 여자가 저 남자와 죽어도 절대 같이 못 살겠다고


하고 저 남자를 처벌해 달라고 요구하면 저 여자의 말이 맞으니


그렇게 하는 것이 됩니까?


강간을 해놓고 자신의 아내로 삼으면 그만이라는 것이


나라를 강간이 넘쳐나는 사회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또 어째서 구약에서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은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해서 이겨서 다른 나라의 여자를 자기 마음대로


범할 수 있도록 허락을 하셨습니까?


물론 이때는 그 여자에게 한 달간의 자신의 부모나 형제를


위한 애도기간을 주고 나서 차지하라고 하셨고 나중에


같이 살다가 싫증이 나면 노예로 팔지 말고


그냥 보내주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을 하면 정상이 아닌 사람을 제외하면


어느 미친 여자가 자신의 부모와 형제를 죽인 적국의 남자와


살고 싶겠습니까?


당연히 살기 싫고 그 사람을 죽이고 싶은 생각이 들겠지만


이 경우에도 여자쪽은 전혀 자유가 없이 그 사람의 아내가


되는 것이 아닙니까?


한 달간의 애도기간을 준다고 강간이 합법이 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렇게 성적인 부분에서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법을


만드셔놓고 왜 예수님 이후 우리에게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어도 간음이라고 하시고 젊은 사람이 유흥업소 여자와 같이


어울리거나(이 경우 아내나 약혼자나 애인이 없는 경우에 한함.)


또 소위 ㅍ ㅗ ㄹ ㅡ 노 잡지와 야  ㄷ ㅗ ㅇ(ㅍ ㅗ 르 ㄴ ㅗ


동영상.)을 보는 것을 죄악시를 하시고 또 서로 좋아하는 남여가


결혼전에 성관계를 하는 것도 죄악시를 하시고 심지어 극단적인


경우 자위까지 불법으로 정하신 이유가 뭡니까?


특히 성의 경우는 무조건 참는다고 잘 참아지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왜 성욕의 경우 젊은 남자는 참기 어려울 정도로 심한데


왜 일절 결혼 전에는 성관계를 하는 것이나 ㅍ ㅗ ㄹ ㅡ ㄴ ㅗ


잡지나 야 ㄷ ㅗ ㅇ 을 보는 것이나 심지어 극단적으로 자위까지


불법으로 정해서 하지 못하게 하십니까?


그리고 다음으로 하나님은 비록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중에서


죄가 있는 사람의 경우는 같은 이스라엘 백성의 노예로


7년을 살게 하시고 7년 후에는 반드시 풀어주고 7년 동안


노예로 산 날에 합당하게 물질적으로 후하게


보상금을 주라고 하셔놓고 왜 신약에서는 아예 노예제도와


신분제를 용인하셨습니까?


어째서 신약에서 종들과 상전에게 지키라는 법을 만드셔서


노예제도와 신분제를 용인을 하셨습니까?


어째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자신의 물건처럼 대하고 다루고


그 사람의 모든 자유와 권리를 다 박탈하게 하는


이 가혹한 노예제도와 신분제를 용인을 하셨습니까?


이 노예제와 신분제 때문에 역사상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람대접을 못 받고 고통을 당하고 죽었습니까?


노예제도와 신분제를 용인을 하셨으면서 우리보고는


다른 사람에게 쌍욕을 하거나 성질을 내는 것도 못하게


 금지를 하신 것이 말이 됩니까?


그리고 사람이 성인군자가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평생을


살면서 정말 미운 사람에게 쌍욕을 하거나 성질을 내는 것을


전혀 안 할 수가 있습니까?


말이 길어졌는데요. 간단하게 요약하면 왜 하나님은


일부다처제,강간,노예제와 신분제를 용인하셨는지,


또 일부다처제,강간,노예제도와 신분제를


용인하셔놓고 왜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에게 쌍욕을 하거나


성질을 내거나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거나 사랑하는 남녀가


결혼전에 성관계를 갖는 것이나 유흥업소의 여자와


어울리거나(이 경우 아내나 약혼자나 애인이 없는 경우에


한함.)ㅍ ㅗ 르 ㄴ ㅗ 잡지나 야동(ㅍ ㅗ ㄹ ㅡ ㄴ ㅗ 동영상.)


을 보거나 심지어 극단적으로 자위까지 못하게 하시는지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할 수 있으시면 김기석 목사님과 아니면


다른 이 교회 성직자님의 정확하고 자세한(윤리와 논리에 맞게.)


답변을 부탁 드립니다.

 

 

 


5.왜 하나님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에게 경우에 따라서 순교를


하라고 강요를 하시고 또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시련과


고통을 당하면 무조건 끝까지 견디라고 하시면서 견디는


사람만 구원을 하겠다고 강요를 하십니까?

 

 

 


제목그대로입니다. 하나님은 신이라서 전지전능하신데


경우에 따라서 어째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에게 순교를


억지로 강요를 하십니까?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니 꼭 사람의 순교가 아니라도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 아닙니까?


모세때와 같이 기적들을 베푸시면 순교 아니라도 얼마든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이 쉽고 올바른 길을 놔두고 왜 자신의 자녀를 일부로


죽이시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세상의 정상적인 부모라면 멀쩡한 자기 자식을 죽는 자리에


일부로 보내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또 세상의 정상적인 부모라면 자기 자식이 남에게 학대를 받거나


죽을 위기에 처하면 어느 부모가 그걸 보고만 있겠습니까?


절대로 그냥 볼 수가 없지요. 당연히 자식을 구하러 나설 것이고


자신이 죽는 한이 있어도 자식을 구할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하다고


하는데 왜 이러실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갑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니 즉, 친아들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니 하물며 양자인 우리를 순교를 못 시키겠냐라는


생각이신지 궁금합니다.


그렇다면 제가 할 말은 이렇습니다.


예수님의 경우는 다분히 어쩔 수 없어서 십자가에서


달려서 죽으신것이고(맞는 이야기이지요? 사람들의


죄문제를 해결해 주셔야 하니 말이죠.)일반 기독교인이


순교를 당하는 것은 굳이 순교 아니라도


얼마든지 복음을 잘 전하실 수 있는데도 왜 순교를


하라고 강요를 하시고 순교를 당하는 것을 방조를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또 다음으로 일반적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중에서


평생동안 별 시련이나 고통이나 순교의 위험없이


사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나름대로 고통이나 시련을 주시고 순교하라고 하시는데요.


이 경우 왜 끝까지 견디는 사람만 구원을 베풀고 못 견디는


사람은 무조건 멸망에 처하겠다고 하십니까?


사람 목숨,영혼이 무슨 1박 2일의 복불복 게임입니까?


아니면 사람 목숨과 영혼이 무슨 호랑이 ㅅ ㅐ  ㄲ  ㅣ 정도의


가치밖에 안 됩니까?


호랑이 어미가 ㅅ ㅐ ㄲ ㅣ를 낳으면 ㅅ ㅐ ㄲ ㅣ를


산 밑에서 떨어뜨려서 살아남아 올라오는 ㅅ ㅐ ㄲ ㅣ만


기르고 나머지 못 올라온 ㅅ ㅐ ㄲ ㅣ는 버린다고 하는데


사람 목숨과 영혼의 가치가 호랑이 ㅅ ㅐ  ㄲ ㅣ 정도의


가치밖에 안 됩니까?


아니면 1박 2일 복불복 게임 식의 내기정도밖에


안 됩니까?


사람이 왜 죄가 없는데 단지 정신이 나약하다는


이유만으로 멸망에 처해져야 합니까? 정신이


나약한 것이 영원히 지옥에서 지내야


할 정도로 큰 죄입니까? 의지력이 최고인 사도 바울도


에베소인가에서 너무나 큰 고통으로 살 소망이 없어질 때까지


큰 고통을 겪었고 당연히 베드로의 경우도 자신의 목숨이


두려워서 예수님을 3번을 부인했습니다. 뭐 베드로의


경우야 성령충만을 받기 전이니까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바울의 경우는 분명히 예수님을 믿고


성령충만을 받고 사도로서 활동을 할 때 당한 시련이었고


너무 힘들어서 살 소망이 없어지기까지 고통을 겪었습니다.


바울도 감당하기 힘든 시련을 왜 일반 기독교인에까지


견디라고 강요를 하십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부모님의


사랑보다 더하다고 하는데 이런 하나님의 태도는 정말로


이해가 안 됩니다.


삼국지에서 조조가 원소를 상대로 관도에서 극적으로 승리하고


난 후에 원소가 급히 도주한 때문에 원소의 진지에서


자신의 밑의 사람들중에서 원소와 비밀리에 내통한


사람들의 명단이 적힌 문서가 나왔고 당연히 그 수는


매우 많았습니다. 이걸 보고 측근들은 배신한 자들을


모두 죽이라고 했지만 조조는 이 문서를 전부 없애버리고


이것에 대해서 다시는 언급하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그 이유가 뭐냐하면은요. 진수의 정사 삼국지에(남북조

 

시대의 송나라.)주석을 붙인 배송지의 삼국지주에서

 

(중국 남북조 시대때 남송의 사람이었던 배송지가

 

당시 남송황제의 명령으로 진수의 정사 삼국지가

 

너무 간략해서 여러 가지 사실을 조사해서,

 

즉, 삼국시대에 있었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조사를

 

해서 배송지가 진수의 정사삼국지에 주석을 붙인 것입니다.)


조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원소가 강성할 때는 나보다 10배가 많은 군사력을


가지고 있어서 나도 원소가 두려웠다.


나도 그러했는데 하물며 밑의 사람들이야 오죽했겠느냐." 


즉, 이것은 악의적으로 배신을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배신한 경우이니


특별히 용서하는 것이다라는 식으로 말을 했습니다.


사랑과 자비가 가장 크다는 하나님이 옛날 봉건시대에


간웅보다 더 자비심이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는 이야기입니까?


참으로 기가 막힌 일입니다.


자식을 강하게 만들어서 제대로 된 사람을 만들려고 사람의


부모도 자식에게 고생을 시키는 경우가 있기 하지만 일부러


이렇게까지 심한 고통이나 죽음까지 강요하는 부모는


제 정신인 부모라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제 어머니가 에덴교회에 나가시는데


에덴교회 권사님이나 다른 여성성도와 같이 병원선교를


정기적으로 가셔서 저희 어머니가 저에게 말씀하신 것인데요.


환자중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중에서, 중병을 오랫동안


앓으면서 고통을 당하는 환자중에서 오랫동안 당하는


고통을 견디지 못해서 마지막에 하나님을


안 믿고 욕하다가 죽는 사람의 경우가 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왜 이렇게 자신의 자녀에게 견디기 힘든, 아니 어쩌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주셔놓고 이기는 사람만 천국으로


인도하겠다고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할 수 있으시면 김기석 목사님과 아니면


다른 이 교회 성직자님의 정확하고 자세한(윤리와 논리에 맞게.)


답변을 부탁 드립니다.

 

 

6. 왜 하나님은 세상의 말도 안 되는 범법이나 불의를


그냥 보고만 있으셔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나 일반의


착한 사람을 감당하기 힘든, 혹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으로


몰아 넣으십니까?

 

 

이렇게 되면 당하는 사람은 당하는 사람대로 생지옥의


고통을 당하고 또 죽고 또 그런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그 사람대로 고통과 벌을 받고 또 경우에 따라 지옥에 가겠지요.


어째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성도나 선한 사람이나 그런 범죄를


저지를 사람 모두가 생지옥의 고통을 겪지 않고 벌을 받지 않고


지옥에 가지 않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으신데 왜 세상의 말도


안 되는 불법이나 불의를 보고만 있으신지요?


도대체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할 수 있으시면 김기석 목사님과 아니면


다른 이 교회 성직자님의 정확하고 자세한(윤리와 논리에 맞게.)


답변을 부탁 드립니다.

 

 

 

7. 왜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다고 하시면서 자기를 믿는 사람의 자유와 권리, 자아,


자존심,의사를 송두리째 말살하시고 무조건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던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라고 하십니까?

 

 


제목대로입니다. 지금 현재 제가 겪고 있는 가장 크고 근원적인


문제중 하나입니다. 강박증과 더불어 말이죠.


하나님의 사랑이 부모의 자식 사랑보다 더 하다고


하시는데요.


그런데 어째서 믿는 사람을 제가 7번 질문란에 쓴 제목처럼


살라고 하십니까?


세상의 정상적인 부모쳐놓고 자녀보고 너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던지 나만을 위해서 살라고 하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자녀의 자유와 권리,자아,자존심,의사를 모두 말살해가면서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서 살라고 하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제정신인 부모라면 말이죠.


이게 하나님의 성도를 자녀로 대하는 하나님의 올바른


자녀 교육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여기서 만약에 답변을 하신다면 이렇게 말씀하실 분이


있으시겠지요.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고 기르셨고 또 우리의 죄를 위해서


자신의 독생자를 보내주셔서 십자가에 달아서 죽이시면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당연히 하나님의 성도는 평생, 아니 영원히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말씀하신다면 저도


할 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집에 부모가 있고 그 부모에게 어린 아들이


있다고 치면은요.


물론 그 부모는 그 어린 아들을 사랑으로 낳고 기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 부모가 물건을 살려고 잠시 집을 나갔는데 그 사이에


집에 불이 났고 어린 아들이 미쳐 빠져나오지 못하고 집에


있었는데요.


돌아온 부모가 이걸 보고 크게 놀랐고 그래서 아버지가


목숨을 걸고 집안으로 들어가서 부상을 입어가면서 극적으로


어린 아들을 구했다고 하면 그 아버지가 그 어린 아들에게


나와 어머니가 사랑으로 너를 낳고 또 사랑으로 너를 길렀고


또 오늘 내가 죽음을 각오하고 부상을 입어가면서까지


너를 구했으니까 너는 오늘부터 평생동안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던지 나와 너 어머니만을 위해서 살라고 하고


이렇게 살지 않으면 때리고 ㅈ ㅗㄱ ㅊ ㅣ ㄱ ㅗ


끝내 말을 듣지 않으면 내가 너를 쳐죽이고 너 시신을


강물에 빠뜨리겠다고 하면 그 어린 아들이 지금에서나


나중에 청소년이 되어서도 자기 아버지가 올바른


요구를 하고 있고 그래서 나는 아버지의 그 요구를


당연히 최선을 다해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감사를 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절대 감사를 못합니다. 아버지에게 분노를 가지고


원망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닙니까?


더 심하면 죽기 살기로 대판 크게 싸움이 나겠지요?


안 그렇겠습니까?


하나님이 하나님을 믿는 성도나 지금 저를 대하는 태도가


이렇지 않습니까?


이게 어째서 올바른 것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까?


또 묵시록에 천국의 생활이 일부 나오지요.


마지막 때에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빛이 나고 흰 세마포를 입고


이마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밤이 없고 영원히 왕같이


산다고 나오는데요.


천국이 화려하면 다 장땡입니까?


맨날 흰 세마포만 입어야 하고 이건 무슨 문신도 아니고


사람의 이마에다가 하나님의 이름을 새기고(개도 이마에다가

 

주인의 이름을 새기지 않습니다.)

 

밤이 없어서 서울이나 파리, 뉴욕의 아름다운 야경은 영원히 못 보고

 

쉬는 시간이나 잔치를 제외를 한다면 영원히 하나님에게 예배와

 

찬양만을 드려야 되는 것이 아닙니까?


세상에서 재미있게 누릴 수 있었던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이나

 

영화나 인터넷이나 게임이나 또 공부나 학문을

 

하는 것이나(고린도전서 13장에서 지식을 폐한다고 하시니 말이죠.)

 

그 어떤 재미있는 혹은 보람있는, 즉 자신에게 말이죠.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재미있고 혹은,  보람있는 일은

 

단 하나도 못 하겠지요.


그래도 지옥에 영원히 사는 것보다 나으니까 가긴 가야겠는데


영원히 그저 하나님을 섬기는 로보트나 노예로 살 수 밖에


없겠지요.


물론 자발적인 사람이 많겠지만 저같은 이성과 논리와 합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정말로 영원히 하나님을 섬기는 로보트와


노예로밖에 살 수 없겠지요.


아니, 어쩌면 저 같은 사람은 그래서 올바른 마음이 아니라서


멸망에 처해질수도 있겠지요.


도대체 왜 세상에서나 혹은 천국에서나 하나님의 자녀가


자유과 권리와 자아와 자존심과 의사를 모두 박탈을 당하고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만 합니까?


세상의 정상적인 부모가 자식을 이런 식으로 절대 사랑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다는 하나님이 왜 자신을 믿는


사람에게 이렇게 대하시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성도 거의 대부분 누구나 고린도전서


13장을 읽어 보셨겠지요.


어떻게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 사랑이다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는데요.


거기서 하나 빠진 것이 있어 보입니다.


뭐냐고 하면 남을 존중하는 마음 말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듯이,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 사람의 자유와 권리,자아와 자존심,의사를 모두


무시한다면 그게 제대로 된 사랑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까?


그건 어찌보면 사랑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소유욕이고 집착이


아닙니까?


다른 사람이 자신의 물건이니까 즉, 아주 비싼 물건이니까 당연히


소중하게 다루고 목숨을 걸고 자신의 물건을 지킬 것이고 하겠지만


그 물건이 자신에게 이익이 안 된다면 사랑해도 버리겠지요.


하나님의 하나님을 믿는 자녀를 대하는 방식을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거의 매번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이나 기독교 성도에게


하는 이야기가 자신의 명령을 철저하게 지키면 사랑하고 보호해주고


복을 주겠다고 하시고 반대로 자신의 명령대로 안 살면 벌을 주고


죽이고 멸망을 시키겠다고 하시지요.


자녀를 이런 식으로 대하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정상적인 부모라면 말입니다.


정상적인 부모의 경우 어느 부모가 어린 자식이나


청소년 자식에게 평생 내가 원하는대로 살라고 강요하고


자신이 원하는대로 살면 사랑하는 자식이고


원하는대로 안 살면 자식이 아니고 철천지 원수이니 벌을 주거나


죽여버리겠다고 하겠습니까?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성도를 대하는 방식이


늘 이런 식인 것에 정말 화가 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도를 자녀로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노예와 로보트로 대하는 것밖에 생각이 안 됩니다.


여기서 어떤 님께서는 하나님이 사람의 자유를 존중하셨기 때문에


자유의지를 주셨다고 주장하실지 모르겠지만 그건 아니라고 생각이


듭니다.


정말로 사람의 자유를 존중해서 자유의지를 주셨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살지 않아도 벌을 주지 않으셔야 하는데


실제는 그렇지가 않지요.


하나님 자신이 원하는대로 살아야만 사랑하는 자녀이고 아니면


철천지 원수로 생각을 하시니 말이죠.


하나님이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것은 사람의 자유를


존중해서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는 예배나 찬양이나


순종,헌신,봉사,희생을 받고 싶으셔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합니다.


자유의지가 있어야 사람이 마음에서 우러나서 하나님께


찬양과 예배를 드리고 순종,헌신,봉사,희생을 할 수


있으니 말이죠.


말이 터무니없이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이번 7번 글은 왜 하나님이 자신의 성도와 다른 사람의 자유와


권리와 자아와 자존심,의사를 모두 말살하시고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던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라라고 강요를 하시는지


제가 논리적으로 이해가 가게 설명을 해 주십시오.


여기에 대해서 할 수 있으시면 김기석 목사님과 아니면


다른 이 교회 성직자님의 정확하고 자세한(윤리와 논리에 맞게.)


답변을 부탁 드립니다.

 

 

 

8.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왜 사람차별을 하시는 것입니까?

 

 

제목대로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차별은 솔직히 어떤 때는 너무나


극단적이다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특히 예정론이 나오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때 하나님을 안 믿던 어떤 친구가 저한테


기독교 교리에 물었는데 하나님이 예정론을 만드셔서


처음부터 천국에 갈 사람과 멸망에 처하게 될 사람을


구별을 하셨다고 하는데 이게 정말이냐고 저한테 물었습니다.


하나님의 교리에 대해서 불만을 가져서 저한테


물어본 것입니다.


제가 그때 어떻게 대답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만약에


답변을 했다면 그것은 사실이라고 답을 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의 재림시에 택한 자를 모으신다는


이야기가 있고 다른 곳에서도 택한 자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요.


사실 이 이야기를 제가 기독교의 가장 유명한 작가중 하나인


김성일씨에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럴 기회가 되어서 말이죠.


김성일 작가의 답변은 예정론은 맞는 이야기인데 다만 그게 남용되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뭐냐고 하면은요. 어차피 하나님이 처음부터 천국에 갈 사람과


멸망에 처할 사람을 정해 놓으셨는데 뭐하러 전도를 하냐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으니 말이죠.


안 믿는 사람도 알고 물은 예정론은 분명히 하나님은


공평하시다라는 것을 가장 근본적으로 무너뜨릴 수 있는


질문입니다.


처음부터 멸망에 처하게 될 인물을 왜 만드셨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갑니다.


만약에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이유인 그냥이라던가,


하나님이 신이니 하나님 마음대로 하시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답변을 하신다면 하나님은 공평하지 않으시고


또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분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도 어쩔 수 없다고


봅니다. 이 부분은 왜 하나님이 사람에게 터무니없는 과잉처벌을


하시냐는 질문에도 해당이 되지요.


과잉처벌은 분명히 잘못된 것인데 말이죠.


그리고 다음으로 하나님은 확실히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과


우리 일반 기독교인과의 차별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사실 제가 성경을 보았을때 굳이 억지로 말해서 제일 우선 멸망에


처해야 하는 사람은 모세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


솔로몬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을 해 보십시오. 기독교인중에서 솔로몬처럼 하나님에게


부와 지혜를 넘치게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또 왕으로 세우셨고 또 당연히 다윗왕과 밧세바의 아들이다보니


매우 잘 생겼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다윗왕은 성경의 대표적인


미남이고 밧세바도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중


하나이니 말이죠.


이렇게 많이 받았는데 결국 나중에 하나님을 믿지 않고


우상을 섬기게 되고 또 자신은 부와 지혜와 또 권력을 받아서


더 이상 부족할 것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일반 이스라엘 백성을 가혹하게 착취하고 괴롭혔습니다.


이런 사람이 왜 멸망하지 않고 결국 나중에 구원을 받아서


천국에서 잘 살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갑니다.


하나님에게 제일 많이 복을 받아놓고도 나중에 하나님을 떠나고


또 자신이 더 바랄 것이 없는 몸인데도 불구하고 백성을


착취하고 괴롭혔으니 말이죠.


사실 기독교적 의미에서 최고의 배은망덕한 인물이 아닙니까?


솔로몬이 하나님을 떠나도 하나님은 솔로몬 자체를 치지 않으시고


솔로몬을 대적하는 사람이 나와서 솔로몬을 괴롭힌 정도로


끝이 났고 솔로몬의 죄악 때문에 이스라엘은


솔로몬 사후에 두 개로 분열이 되니 말이죠.


솔로몬이 잘못했다면 솔로몬 생전에 분열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았지요.


여기에 비하면 롯의 아내같은 경우는 너무나 억울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사람을 차별할 수가 있습니까?


지금 기독교를 믿는 사람중에서 가난에서 못 벗어나는 사람이


당연히 세계적으로 많지요. 누구는 하나님을 잘 믿어도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는데 솔로몬같은 사람은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큰 부를 가지게 되고 말이죠.


하나님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큰 부를 주시는


것을 꺼려하시는 성향이 있습니다. 큰 부를 주면 그 부를 받은


사람이 타락해서 하나님을 떠나고 잘못을 저지른다는 이유로


말이죠.


그렇다면 왜 솔로몬에게는 그렇게 큰 부를 주셨는지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이지요.


그리고 모든 사람이 다 큰 부를 누리면 다 타락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식의 논리라고 하면 역대 우리 나라나 다른 나라의


왕조는 2대를 가는 경우가 전혀 없어야 정상이 아닙니까?


처음 왕의 경우는 힘들게 고생을 해서 나라를 얻었으니


당연히 스스로 근검절제하는 풍토가 생기지만 2대부터는


다는 아니지만 대부분 고생을 안 해보고 왕자리를 이어받는


경우가 많지요.


크게 고생하지 않고 편안하게 왕자리를 물려받았으니


이것이야말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부를 얻은 것이지요.


그러면 어떤 왕조의 경우라도 2대를 못 넘기느냐?


당연히 아니지 않습니까?


부모나 선생님이나 다른 신하의 교훈을 철저히 받아서


스스로 절제를 잘 하고 자기 아들에게 잘 물려주지요.


보통 제대로 가는 왕조는 수 백년에서 길면 천년을 가는


경우도 있지요.


그리고 보통 그 해당 왕조의 최고의 위대한 왕은 보통 2~5대


사이에 나오지요.


즉 고생은 안 하고 편안하게 물려받아도 다른 사람에 의해서,


또 자기 스스로 잘 절제해서 1대의 경우보다 더 큰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 경우가 많지요.


한마디로 솔직히 말해서 하나님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는


성도에게 물질적으로 축복을 하시는 것이 인색한 것이


저는 왠지 억지가 많아 보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걸 내세워서 어떻게든 자기 자녀에게 이 세상에서


복을 안 주실려는 것으로 보여서 말이죠.


사실 물질적인 복은 천국에서보다 세상에서 훨씬


필요하지 않습니까?


천국이야 물질이 넘치는 곳이니 특별히 물질적인 복이


필요가 없지요.


그러나 세상은 물질이 제한이 되어 있는 곳이니 당연히


물질적인 복이 더 필요한 곳입니다. 물질이 더 필요한 곳에서는


타락을 이유로 안 주시고 천국에서만 크게 복을 주시겠다는


이유로 나오는 것은 왠지 억지가 많아


보입니다. 믿는 사람이나 다른 사람 모두에게 말이죠.


솔로몬의 경우와 비교하면 완전히 형평성면에서 말이 안 됩니다.


솔로몬은 세상에서도 가장 크게 받았고 결국 끝에 가서


다시 믿고 죽었고 아마 그 지위를 보아서라도(다윗의 얼굴을


보셔서.)천국에서도 큰 부를 누리고 있을테니 말이죠.


솔로몬에게는 세상에서나 천국에서나 크게 부나 다른 것을 주시고


우리한테는 물질이 더 필요한 세상에서는 스스로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떠난다는 이유로 복을 제대로 안 주시고 천국에서만


복을 주시겠다라는 것은 분명히 형평성이 없는 일입니다.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에게는 정말 더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이지요.


말이 조금 엇가나갔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왜 이렇게 차별을 하시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또 하나의 경우가 제가 2004년에 서울의 노원구인가에


있는 갈보리기도원에 한 달 정도 있었는데


그때 그 교회에 그 노원구인가의 경찰서장이 갈보리기도원에


공문을 하나 보냈는데 공문 내용이 이렇습니다.


요즘 자기구안에서 새벽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노인 성도님들이


길을 가다가 차사고로 죽는 경우가 많아서 여기에 대해서


갈보리기도원에서도 노인 성도님들에게 잘 말씀하셔서 사고가


일어나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망신입니까?


이 서장이 안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얼마나


비웃었겠습니까?


하나님이 자기를 믿는 성도하나 제대로 못 지켜서 헛되게


죽는 사람이 많이 나온다고 말이죠.


또 하나가 그 서장이나 이 소식을 듣는 다른 불신자들이나


또 믿는 사람들이나 이런 생각을 하겠지요. 하나님에게


예베를 드리고 오는 사람을 어떻게 이렇게 대할 수


있냐라고 말이죠. 저도 2004년에 갈보리기도원인가에 있으면서


이 공문을 보고 참으로 분노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에게 말이죠.


성경의 하나님의 인물은 거의 절대에 가깝게 억울하게


헛된 죽음을 당하는 사람이 없지요. 복을 받고 살던가,


높은 지위에 있거나 아니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순교를 당하던가 뭐, 이런 식이죠.


최소한 아무 의미도 없는 소위 말해서 헛된 죽음을 당한 사람은


거의 전혀에 가깝게 없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같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데 이렇게


차별하실 수 있을까요.


이런 것들을 보면서 혹시 저도 죽을 때 이렇게 의미없는


헛된 죽음을 당할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정말 이렇게 하신다면 저는 정말 참지 못하겠다고 말이죠.


이 마음이 괘씸하셔서 하나님이 일부로 저를 죽을 때 개죽음을


시키실 수 있겠지요.


하지만 저나 다른 기독교인이나 하나님이 정말로 공평하신 분이라면


최소한 이런 식의 의미없는 죽음은 안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아마 다른 복을 주시던가 상을 주시는 것도 정말 공정하게


하셨으면 하고요.


현실에서 왜 하나님이 이런 식으로 사람을 차별을 하시는지에


대해서(예정론도 그렇고 말이죠.)


여기에 대해서 할 수 있으시면 김기석 목사님과 아니면


다른 이 교회 성직자님의 정확하고 자세한(윤리와 논리에 맞게.)


답변을 부탁 드립니다.

 

 


이상입니다.


대충 짧게 쓸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또 너무 길어져


정말 죄송합니다.


진짜로 짧게 써지지가 않네요.


짧게 쓰는 재주가 부족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일부러 유식해 보일려고 길게 쓴 것은 아니니 너그럽게


이해를 해 주셨으면 정말 감사드리겠습니다.


이 8가지 하나님에 대한 분노와 불만스러운 질문에 대해서


윤리적으로 논리적으로 답변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드시고,


또 제 강박증에 대해서도 치료가 가능하겠다라는


생각이 드시면 이곳의 게시판에서 리플글로 답변을


달아 주시던가 아니면 제 e - mail로


(newtype54@naver.com.)꼭 좀 자세한 답변을 부탁 드립니다.


만약에 이곳에서 답변이 불가능하다면 다른 곳이나 혹은


외국의 성직자님이나 기독교 신학자님이나 기관을 아신다면


(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곳.)소개를 좀 해 주십시오.


정말로 부탁을 드리는데 성공회나 천주교처럼 답변을 40일,


60일이 넘게 안 달아주시는 식의 게으름을 넘어선 ㅆ ㅓ ㄱ어빠 지 ㄴ


행동은 안 해주셨으면 정말 감사드리겠습니다.


정 모르시겠다면 리플글이나 이 글의 꼬릿말 댓글로 잘 몰라서


답변을 못 달겠다고 이야기라도 꼭 해 주십시오.


염치불구하고 꼭 좀 부탁 드립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이야기를 드리자면 저희 어머니는 저와 같이


1986년에 처음으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셨고


지금까지 계속해서 다니고 있으시고 또 저희 식구중에서


가장 믿음이 좋은 분입니다.


지금 권사로 계시고 말이죠.


교회 행사나 예배는 거의 빠지지 않고 모두 나가고 있고


또 봉사활동도 자발적이거나 아니면 최소한 자신이


꼭 나가야 되는 봉사활동은 빠진 적이 거의 없습니다.


(몸이 불편해서 못 나가시는 경우는 제외하고 말이죠.)


이런 저희 어머니이니 당연히 제 문제에 대해서 소위 18년간


하나님께 제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기도를 안 하셨겠습니까?


당연히 빠지지 않고 계속 하셨지요.


그런데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지금까지


18년동안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에 저희 어머니는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역사를 하셔서 저의 강박증과 또, 하나님과 저와의 불편한


관계를 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거의 포기를 하셨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역사는 거의 포기하고 지금은


그저 병원에 입원을 해서 치료를 받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을 하고 계시고 그래서 요즘 저한테 그것때문에 닥달을


하십니다.


저는 솔직히 병원에 입원하고 싶지 않습니다.


입원해서 치료를 받는다면 강박증의 경우는 많이 호전될지


몰라도 하나님과 저와의 불편한 관계까지 병원에서 해결해


줄 수 없기 때문에 말이죠.


그리고 제 강박증의 근본원인중 하나는 하나님과 저와의


불편한 관계 때문이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지금 어떻게 해서든 기독교 교회나 성당,


기도원,수도원, 기독교 기관같은 곳에서 제 강박증과


하나님과 저와의 불편한 관계를 해결을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노력했고 지금까지의 노력은


허사였고 그래서 거의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여기 청파감리교회의 김기석 목사님이나 아니면


이 청파감리교회의 다른 성직자님에게 질문을


드리는 것입니다.


만약에 청파감리교회에서도 아무 해결책도


얻지 못하고 또 그나마 저의 지금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다른 기독교 교회나 성당,기도원,


수도원이나 기관의(외국이라도 좋음.) 추천도 받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이 하나님과의 불편한 관계해결은


포기하고 강박증만이라도 크게 완화를 시킬 목적으로


병원에 입원할 수 밖에요. 저희 어머니의 말씀대로


말이죠.


마지막으로 다시 반복해서 말씀을 드리는데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다시 말씀드리자면 제 e - mail 주소는


newtype54@naver.com 입니다.


제 이 본글의 꼬릿말 댓글로나 아니면 이 게시판의


리플글로나 아니면 제 e - mail 주소로 답변을


부탁 드립니다.(가급적 제 이 본글의 꼬릿말 댓글로는


답변을 하지 말아 주십시오.)


좋은 답변을 해 주실 수가 없다면 제가 위에서 말한


저의 지금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다른 기독교


교회나 성당,기도원,수도원이나 기관의(외국의 경우도


좋습니다.) 추천이라도 아신다면 꼭 좀 해 주십시오.


이 2가지 모두를 몰라서 하실 수 없다면 몰라서


제가 말한 이 2가지의 부탁 모두 답변을 달아줄수


없다라는 답변만이라도 꼭 좀 달아 주십시오.


꼭 좀 부탁 드립니다.


이상으로 마칩니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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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09 11-05 07:11)
와우... 엄청난 스크롤 압박이네요...

답변이 잘 안달린 이유는 아마도 정확하게 답변하기 어려웠기 때문일거란 생각이 듭니다.

전 일반 평신도입니다... 저도 형제님의 질의에 대답할 대표성을 가지고 있지는 못합니다... 아마도 이런 대표성을 갖기 어렵기 때문에 다들 답변을 쉽게 달지 못했을거라 생각듭니다.

저는 그냥 평신도로서 편하게 제 생각 몇개를 달겠습니다. 무리가 있을 수 있지만 어짜피 우리는 온전치 못한 이 땅의 사람 아니겠습니까?

일단 형제님의 고민들이 그다지 황당한 건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보고요...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고뇌없는 신앙은 진정한 신앙이 아닐 수 있다 라는 것입니다. 무턱대고 믿는게 더 위험하지 않을까요? 형제님과 같은 고민을 거쳐야 진정한 자기 신앙이 세워지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고민에 대해서는 공감이 됩니다.

고민을 하시는 게 정상 같습니다.

다 답변을 달 수 있는 능력은 없으므로 제 생각 나는 거 몇 개만 할께요....

저도 예정론 안믿습니다. 예정론은 장로교 칼뱅의 교리로 알고 있습니다. 꼭 믿어야 할 필요 있을까 싶습니다.


또 하나 전 요즘 한국교회가 믿는 신이 과연 누구신가? 하는 고민이 있습니다.

예수원 다녀오셨다고 하는데.. 예수원 설립자인 대천덕 신부님은 나봇의 포도원 사건을 말씀 하시면서... 아합과 이세벨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게 된 것은 그 바탕에 바알신 숭배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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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09 11-05 07:11)
교인들 중에 땅을 사랑해서 땅을 소유하고자 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땅에 땅을 더하고 집에 집을 더하는 분들이죠... 이 분들이 섬기는 신은 과연 누구일까요? 여호와 하나님은 아닌거 같습니다.

다윗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다윗은 집권에 성공한 왕이였습니다. 요즘 역사를 공부해 보면 역사는 '승자의 기록' 이구나 하는 것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다윗왕가에서 기술된 성경도 바로 이런 측면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즉, 일정수준 상당한 첨삭이 가능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근에 올라온 목요성서학당의 글이 도움이 되시리라 생각됩니다. 한 번 주욱 읽어 보시지요.


갠적인 의견입니다만... 그냥 드는 생각을 그대로 인정하시고 편하게 지내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또하나 생각을 너무 많이 하시는데... 제 주변에 보면 머리가 너무 좋으신 분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더군요... 생각보다는 몸을 혹사시키는 운동 같은걸 해 보심 어떨까 싶습니다. 생각이 많아 실어증 걸리신 분이 군대가서 나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뺑뺑이 너무 돌리니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고 하더군요...

글구 형제님이 가지고 계신.. 교회는 이래야, 하나님은 이래야 하는 기준을 함 내려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런 것들도 이미 관습적으로 들어온 생각일 수 있으니까요... 형제님 글에 보면 윤리,논리가 많이 나오는데 그게 진리가 아닐수도 있찌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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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신(09 11-05 10:11)
글이 너무 길어서 저도 다 읽지는 못하고 리플을 남깁니다만, K님의 말씀대로 기존의 정형화된 기독교의 틀을 깨뜨려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말씀하신 부분들은 저도 고민하던 부분들인데요, 성서의 문구 하나하나에 집착을 하면 너무나 많은 모순과 갈등이 생깁니다. 제 생각이 절대 옳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성서 속 하나님의 모습은 인간의 눈(특히나 유태인들)을 통해 본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을 감안하셔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그렇기 때문에 말씀하신 여러 부조리가 나타나는 거죠. 하나님은 인간의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선 분인데... 인격적으로 형성화하려 보니 말씀하신 부분들이 나타난다고 봅니다. 좀 더 넓고 길게 보실 수 있으면 편안해지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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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신(09 11-05 10:11)
저는 예수학당에서 이런 부분들을 배웠습니다. 한국기독교연구소에서 나온 '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와 '예수'란 책을 함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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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상준(09 11-05 10:11)
살다보니 '무엇이 진리이다' 라고 하는 주장이 상당히 위험하다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모든 것은 변한다' 라는 고대 그리스철학자의 외침이 학창시절보다 나이가 먹어갈수록 더 다가 오기도 하니까요...

정 확 한 답변을 한다는 것은 어렵겠지만 여러분들이 의견을 나눠 주시는 건 가능하리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럴때 민주주의 법칙이 좋을 거 같네요... 아고라~~ 라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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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신(09 11-05 10:11)
집에 들어와서 쓰신 글을 정독한 것은 아니고... 한번 슥 읽으면서 든 생각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기존 기독교인의 시각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글 쓰신 분께서 의문을 가지고 불만을 가지는 하나님은 거진 다 구약의 하나님이고, 앞서 말한 인격적인 하나님입니다. 인간의 시선이란 프리즘을 통해 굴절되고 왜곡된 하나님이기에 인간의 감정과 행동을 보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전승을 하면서 그리고 구약성서를 적으면서 그렇게 그린 것일 뿐입니다.
저는 항상 궁금했던 게 왜 구약에서는 그렇게 자주 나타나시고 계시도 주시고, 징벌도 하시던 하나님이 신약에 들어가면서 쏙 빠지져서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으실까? 하는 의문을 유년부 때부터 가졌습니다. 어디 가셨나? 독생자를 보내시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긴 채 침묵하시기로 작정하셨을까? 교회의누구도 시원스러운 대답을 못해 줬습니다.

나이를 먹어서 역사를 배우면서는 그 의문이 더 커졌죠.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왜 그렇게 유대 민족을 고생시키시고 핍박받게 하셨을까? 저들은 선택받은 민족인데. 하나님의 자손인데.
지금에 이르러서야 제가 내린 결론은,
구약의 하나님은 신화적인 하나님이고.
신약 시대 이후로 우리가 접하는 하나님은 바로 우리 곁에 계신,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분이다.
기존의 기독교적 사고방식과 교리(그러니까 한국 교회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복음주의적인 교리를 말합니다)로는 그분을 절대 설명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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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신(09 11-05 11:11)
그래서 글 쓰신 분께 기존의 닫힌 세계관에서 벗어나셔서
보다 넓고 멀리 보시길 권합니다.
쉽지는 않으시겠지만 기존 한국 기독교의 폐쇄적인 교리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눈으로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말하는 저 자신도 아는 것 하나 없고, 제대로 하는 것 하나 없지만
청파교회에 와서(대형 교회 다니다가 옮긴 지 딱 2년 됩니다)
참된 기독교 신앙을 배웠다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목사님 설교 파일을 다운받아 들으시고,
주보에 실린 글들을 읽어보시고,
가능하시면 한국기독교연구소에서 나온 책들을 도서관에서라도 빌려보셨으면 합니다.
당장 바뀌는 건 참 무리가 따르겠지만 서서히 배우고 깨달아가신다면 언젠가는 강박증으로부터도 벗어나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성적인 부분은 저도 상당히 고민하는 부분인데요^^(나이가 결혼 적령기를 넘어가다 보니)성서 어디에도 자위나 음란물을 보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설사 그런 내용이 있다 해도 그 시절의 이야기이지 지금의 이야기는 아니고요. 후대의 기독교에서 여러 가지 목적으로 만든 교리 중 하나일 뿐입니다. 개개인의 성향과 상황에 맞춰 살면 되고, 범법을 저질렀을 경우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면 됩니다. 만약 성서에 적혀 있는 대로 다 따라야 한다면 율법의 그 수많은 조항들을 다 따라야 하는 거가 됩니다. 우리가 바리새인도 아니고 그래야 할 필요성이 없죠. 그럴 수도 없고요. 부디 자유로와지셨으면 합니다. 부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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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신(09 11-07 10:11)
본인도 아시면서 성서 한 구절, 한 구절에 집착하시는 듯하여 안타깝네요.
신약의 어떤 부분이 잘못됐다, 구약의 어떤 부분이 잘못됐다는 거를 일일이 따지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말 진정한 신앙의 길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겠죠.
이메일로 목사님이나 그외 목회자분들께 가르침을 받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러한 성서 속 모순과 부조리를 넘어서 진정한 하나님의 형상을 보시길 기도합니다.
그게 저는 진정한 구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 믿으면 천국 가고, 안 믿으면 지옥 간다는 거 저는 믿지 않습니다.
이재우 님의 열성과 바람이면 언젠가 그렇게 되실 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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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우(09 11-07 11:11)
여러 님들의 댓글을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권혁신님. 제가 말한 하나님의 비윤리적,
비논리적인 말씀과 행동이 거의 구약이라고 하셨는데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신약도 당연히 있지요. 적어도 구약은 유대인 이외의 이방민족이 반드시 하나님을
믿어야 구원받는다는 교리는 없었습니다. 솔직히 구약시대때의 다른 민족들은
죽은 후 자신의 양심에 따라 심판을 받는다고 제가 신약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즉 선악의 문제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죠.
그런데 신약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이 오신 이후 하나님,예수님.성령님을 한 하나님이자
유일한 신으로 반드시 믿어야 하고 또 성경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구원을
받는다는 조건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뿐만이 아니라 모든 이방민족에게 말이죠.
그리고 구약보다 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어려워졌습니다.
그 유명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라는 이야기가
신약에 나온 것이고 또 구약에는 단지 실제 간음행위만 하지 않으면 간음이 아니었지만
신약은 어떻습니까? 여자를 보고 음욕만 품어도 간음이 되어버렸습니다.
또 신약에서는 단순히 다른 사람에게 쌍욕만 퍼부어도 살인자가 되어버리고 지옥에
가는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구약에서는 단지 실제 살인만 하지 않으면 살인자로서
처벌을 받지 않는데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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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우(09 11-07 11:11)
구약의 하나님이 잔인한 면이 많았다면 신약의 하나님은 사람의 자유와 권리를
철저하게 속박하는 하나님의 면모가 강하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구약에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던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고
하고 여자를 보고 음욕만 품어도 간음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신약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잔인한 면모가 안 나오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님께서도 읽어보셨겠지만 구약의 신명기의 그 유명한 신명기 28장 15절에서
68절까지의 내용을 아시겠지요. 김성일 작가가 이 대목을 무시무시한 구절이라고
했는데 저도 처음으로 성경을 읽으면서 이 대목에서 충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럼 구약의 신명기의 28장 15절에서 68절까지의 내용이나 다른 구약성경의
저주의 글이나 실제로 벌주고 죽이고 멸망을 시키는 것만 인상이 깊게 남고
요한묵시록의 경우는 인상이 깊게 안 남습니까? 오히려 김성일 작가의 경우
하나님을 믿지 않았을 때 하나님에 대해서 가장 안 좋은 감정을 가진 성경이
요한묵시록이었습니다.
요한묵시록이야 당연히 하나님,예수님,성령님을 잘 믿고 의롭게 산 사람이야
구원을 받는 내용이지만 반대로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내리는 벌의 경우도
신명기 28장 15절 68절에 못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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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우(09 11-07 11:11)
적어도 신명기의 경우는 최종적인 멸망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지요.
하지만 신약에 들어서서 최종적인 멸망에 대한 이야기가 매우 구체화되지
않습니까?
즉 지옥말이죠.
그리고 이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천국에 갈 수 있다라는
것입니까? 정말로 이 대목은 기가 막히네요. 정말 죄송하지만 말이죠.
아니 어떻게 기독교 신자가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십니까?
성경 어디에 그런 말씀이 있는지요?
기존의 성경외에 새로운 성경이 발견이 되었습니까?
그런 것이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혹시 님의 이 내용이 김기석 담임목사님의 설교에도 이런 식으로 나오는지요?
여기 청파교회의 목사님이나 전도사님들도 이렇게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님 개인의 생각일 뿐이지요?
저는 진보 개신교에 호감을 가지고 있지만 이런 면모들이 있는 것 같아서
그래서 망설여집니다.
성경의 하나님,예수님,성령님에 대한 기적이나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교리,
예수님이 우리의 죄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우리의 죄를 해결해 주셔서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교리나 또 부활교리 같은 것을 안 믿고
그냥 자신들의 인간적인 생각으로 성경을 마음대로 해석해서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믿기 싫은 이야기는 무조건 무시해 버리는 것 말이죠.
물론 안 그런 진보개신교야 당연히 있겠지만 이런 식의 진보개신교가 많아서
(특히 외국의 경우.)제가 다니는 것을 주저한 중요한 이유입니다.
정말로 청파교회 목사님이나 전도사님들의 생각도 님과 같은 생각이십니까?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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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우(09 11-07 11:11)
아신다면 꼭 좀 이야기를 해 주십시오. 이상으로 마칩니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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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신(09 11-07 11:11)
님 머릿속에서
천국과 지옥의 꽉 막힌 개념을 좀 버리셨으면 좋겠네요.
성서에 나오는 천국이란 개념이 이상하다고 계속 말씀하시지 않았나요?
지옥도 마찬가지죠? 왜 하나님께서사랑하는 자식들을 지옥에 영원히 보내냐고 질문하지 않으셨나요?
저도 님처럼 생각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예수 믿어야 천국 가고 안 믿으면 지옥 간다고.
그러나 청파교회 와서 여러 성경공부를 통해서 결정적으로 예수학당을 통해서 천국과 지옥에 대한 생각을 바꿨습니다. 목사님과 전도사님 생각이요? 글쎄 제가 뭐라 말씀드리기 어려운데...사석에서 들은 얘기도 있지만...조심스러우니...알아서 생각하시길.



님의 모순이 뭔지 아세요?
님은 계속 성서와 기존 기독교 교리에 대한 불만과 분노와 의문을 가지고 질문을 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계속 옹호하고 꽉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게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인 거 같네요.
그걸 누가 풀어줄 수 있을까요?
결국은 본인 스스로만이, 그리고 예수님과 하나님만이 해주실 수 있지 않을까 싶군요.
뭐 더 이상 저는 리플 달지 않겠습니다.
누누이 얘기했듯이 저는 님만큼도 성경을 모르고, 청파교회를 대표할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도 아닌데...
예전 제 모습과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뭐 지금도 비슷한 부분이 있네요) 몇 번 리플을 달았습니다만, 이젠 그만해야겠네요.

질문의 답을 스스로도 잘 알고 계시면서
자꾸 질문하시니 좀 많이 안타깝고요.
기존 기독교의 교리와 성서 해석의 틀을 깨지 않으면서 님께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전 세계에 존재하지 않을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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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우(09 11-07 11:11)
권혁신님. 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님께서는 제가 성서와 기존 교리에 대해서
분노와 의문을 가지고 질문을 해도 한편으로는 계속 옹호하고 꼭 움켜쥐고 놓지
않을려고 한다고 하셨는데요. 그건 모순이 아닙니다.
저야 당연히 지금 하나님이 저에게 직접 음성으로 제가 생각하고 있는 성경과
기독교에 대한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하시면서 조목조목 자세히 이야기를 해 주시면
저는 정말로 좋지요. 완전히 해방되고 정말 행복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하나님의 직접 음성이든 아니면 기독교 성직자님이나 신학자님을
통한 하나님의 답변이든간에 아무런 제대로 된 답변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이런 상태에서도 섣불리 제가 성경에서 읽은 대목을 마음대로 바꾸는 것이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아직 성경과 기독교에 대한 생각을 안 바꾸고 있는 것입니다.
결코 지금 성경과 기독교에 대해서 좋아서 생각을 안 바꾸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뀌어지면 정말 좋습니다. 저는요.
완전 해방이고 정말 행복하겠지요. 베드로서의 말씀대로 성경을 억지로 마음대로
해석하다가 멸망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하는 행동일 뿐입니다.
결코 지금 성경과 기독교에 만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말이죠.
이 점은 오해가 없으시면 정말로 감사드리겠습니다.
이상으로 마칩니다. 그럼...........
삭제
h(09 11-08 01:11)
"정 답변이 불가능하다면 잘 몰라서 답변을 못해주겠다라는 답변만이라도 꼭 좀 주십시오."에 대한 답변입니다...
'요점만 간단히 정리해서 질문해보시는게 어떨까요? 최소한 요점을 정리하는 동안에 스스로 깨달음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답글을 달아준 사람의 의견을 수용하려는 노력도 해보시구요... 말꼬리잡기식으로 자기의 생각만 계속주장하신다면 답글이 무슨소용입니까...
말하기보다 듣기에 더 노력을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답글 사절합니다" ^^
삭제
이재우(09 11-10 02:11)
h님. 말씀이 좀 그렇군요. 제가 짧게 잘 요약해서 쓸 수 있는데 일부러 장황하게
길게 썼다고 생각하십니까? 솔직히 좀 불쾌하군요. 제 글이 너무 길다고 비판을
하셨는데 그렇다면 님은 안 읽으시면 되는 것이 아닙니까? 제가 언제 님한테
답변을 해달라고 강요를 했나요? 아니면 제가 님에게 제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하게 읽으라고 강요를 했나요? 남의 글이 너무 길어서 읽기가 부담스러우면
안 읽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왜 제 문제에 대해서 제대로 답변도
안 하시면서 글이 너무 길다고 비판을 하십니까? 상당히 불쾌하네요.
제가 제 문제에 대해서 요점을 정리하면 무슨 깨달음이 온다는 것입니까?
이게 요점을 잘 정리하면 깨달아 질 문제입니까? 솔직히 기가 막히네요.
그리고 제 글이 너무 길다고 하셨는데 도대체 얼마나 길다고 하십니까?
길다고해도 책으로 치면 10페이지도 안 될 것입니다. 장편소설로 치면
말이죠. 장편소설 10페이지를 읽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입니까?
그리고 저는 말꼬리잡기식으로 저에게 답변글을 보내주신 님들의 글을
비판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이 글을 올린 것이 제 잘난 척을 할려고
올린 글입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려고 올린
글인데 왜 일부러 남의 글에 말꼬리잡기식으로 반대의견을 달겠습니까?
굳이 답변글을 단 것은 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윤리적으로
이 답변은 아니다 싶어서 혹은 이해가 안 가서 답변글을 단 것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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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우(09 11-10 02:11)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님의 지금 이런 식의 글. 상당히 예의가 없는 글이라는 것을 알아주셧으면
합니다. 글을 쓴 사람은 정말로 진지하게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하면서 해답을
주길 바라고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 제대로 답변도 안 하시면서 비판글만
남기는 것이 말이죠. 제가 지금 토론을 하자고 이 글을 남겼겠습니까?
저는 해답을 들을려고 한 것이지, 토론을 목적으로 이 글을 쓴 것이 아닙니다.
이런 고민을 털어놓는 문제에서 제대로 된 답변도 안 하시면서 글이 너무 기네,
남의 말에 꼬투리를 잡네식의 비판은 상당히 예의가 없는 것이 아닙니까?
다시 말씀 드리지만 님보고 제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자세히 읽으라고
강요한 적이 없고 님보고 제 문제에 대한 정확한 답변을 해달라고 강요한 적이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고민을 털어놓은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매너없는
답변글은 다시 안 봤으면 합니다. 죄송하지만 말이죠.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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