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예수 포럼 후기-홍세화 씨 특강 2009년 09월 26일
작성자 권혁신

 

이번 주 월요일에 있었던 예수 포럼 홍세화씨 특강 후기입니다.

 

홍세화 씨에 대해 위키에서 찾아보면.

홍세화(1947년 12월 10일 ~ )는 대한민국의 언론인, 평론가이다. 1979년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프랑스 망명생활 중 쓴 책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로 국내에 알려졌으며, 2002년 귀국하여 아웃사이더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다. 2009년 현재, 한겨레신문 기획위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진보신당의 당원이기도 하다.

저서로는

 

공저로는

등이 있습니다.

저와는 인연이라고까지 말하기는 좀 우습지만 제가 1999년 한겨레 신문사 출판팀에서 아르바이트 할때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이 책이 출간되어 저자 사인할 때(몇백 권을 사인하셨다는)  서고에서 뵜던 기억이 납니다. 

 

 

먼저 김준우 목사님의 인사 말씀과 김기석 목사님의 소개 말씀이 있었고, 홍세화 씨의 특강이 시작됐습니다.  전체를 다 녹취한 것이 아니고 요약한 것을 다시 정리하면서 기억을 떠올려서 썼고요.  중간에 졸아서(T.T) 붕 뜨기도 했습니다. 이해해 주시길. ㅎㅎㅎ 

 

반갑습니다. 저는 교인이 아닙니다. 종교가 없어요.

처음엔 연락받고 주저했습니다. 교인도 아닌데 예수포럼에서 말한다는 게 어줍잖았습니다.

좀 더 열린 자세로 공감대를 가질 수 있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이 들고, 평소에 주장하는 바가 똘레랑스, 열린 자세를 표방하고 있고 그런 자세로 이야기를 나누면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프랑스에 아벨 피에르 신부라는 분이 계신에 프랑스는 카톨릭이 60몇 프로이고 그 분이 20여 년 동안 가장 존경받고 사랑받습니다.

그분의 말씀 중에 "세상 사람을 둘로 나누어야 한다면,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나누어진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18세기 인물 중에 온건한 지롱드파에 속했던 인물 중에 콩도르세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생각하는 사람과 믿는 사람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다.

오늘 한국 사회에 콩도르세의 생각이 오늘 한국 사회에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너무 믿는 사람이 생각하는 사람을 지나칠 정도로 압도하고 있습니다. 성찰미숙이 성찰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사회 현상이나 정치적인 지형에서 드러나는 기독교의 일부 흐름이 바로 생각하는 사람과 믿는 사람의 구분에 있어서

믿음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어서 성찰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콩도르세는 중세 이전의 인간과 근대의 인간을 나누기 위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만. 이성의 성숙이란 면에서 귀담아 들어야 할 것입니다.

 

프랑스에서 이주노동자로 살면서, 자주 들은 소리가 똘레랑스였습니다. 데모크라시란 말만큼 들었습니다. 그래서 주목하게 됐고,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 공존의 미학, 똘레랑스가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부족합니까?

우리가 차이를 볼 때 역사적인 배경도 있어 보입니다. 공존의 경험이 부족합니다. 차이가 있으면 극복해야 하는 관계에 너무 익숙해져 있습니다. 특히 현 정권 들어 더욱 두드려져 보입니다. 똘레랑스의 반대는 엔똘레랑스. 불관용입니다. 우리는 다르면 극복하는 데에만 익숙합니다.

생활 속에서 공존의 관계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특히 교육 과정에서 필요한데 불행하게도 경쟁 관계에만 익숙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단어가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학습입니다.

배우고 익힌다는 뜻이죠.

그런데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는 그 반대를 익히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반인권적인 현실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지적 인종주의라는 말도 없이 지적 인종주의가 되어 버렸습니다.

지적 인종주의는 학습 능력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고 차별하는 것이죠.

그래서 제가 더욱 교육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똘레랑스는 프랑스 말이지만 우리에게도 의미가 큽니다.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한국사회에서 얼마나 부족한지 보겠습니다.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군자는 다르지만 어울리되 소인은 같지만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Tolerance는  라틴어 'Tolerare:참다'에서 나왔습니다. 보통 관용이라고들 번역하는데저는 관용(寬容)이 아닌 용인(容忍)이라고 번역하고 싶습니다. 관용은 주체가 위에서 내려보며 허락하는 듯한 뉘앙스가 있습니다.

똘레랑스는 차이를 하는 근거로 하지 마라는 성찰이성의 요구입니다.

 

 

우리의 역사는 다수가 소수를 강제해 온 역사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어떤 차이를 만나는가?

여/남 차별이 있습니다. 성적인 차이를 우열로 나눕니다.

이성애자/성소수자 억압이 있습니다. 성적 취향이 다른 사람을 배제합니다. 정상, 비정상으로 구분합니다.

장애인/비장애인은 말할 것도 없지요. 아예 안 보이는 곳에 장애인들을 감추어 두죠.

또 사상의 문제가 있습니다. 국가보안법을 기준으로 선악으로 나눕니다.

종교의 문제는 단군상 참수, 명동 성당 앞 기독교 포교 활동  등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혹자는  한국의 종교만은 똘레랑스가 있는 거 아닌가? 하는데 현상은 그러하나 아직 동원하지 않아도 사상과 출생

지의 차이로 효과를 낼 수 있었기 때문에 기득권 세력이 개신교를 동원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 정권은 동원할 전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 대중의 이성의 성숙도를 봤을 때는 종교도 선악으로 나누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출생지역(국내외, 지역)에 따른 차별이 있습니다. 외국과는 다릅니다. 외국인에 대한 이중적 태도를 보입니다. 제1세계 출신들에게는 잘해 주고, 제3세계는 깔봅니다. 우열과 선악의 의식이 혼합되어 있습니다.

 

제가 얼마전 주례를 본 한겨레 신문사 기자가 있는데요. 두 사람이 3년을 사귀었는데 신랑이 광주고 신부가 구미 출신이었습니다. 출신지역의 문제 때문에 부모들이 결혼을 반대했는데 결국은 허락하고 말았습니다. 

지역 감정의 문제가 요새 들어 조금은 바뀌었습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 덜합니다.

 

이성은 도구적 이성과 성찰적 이성이 있습니다.

인류가 아직도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점에서 성찰 이성보다 도구 이성이 훨씬 강합니다.

인간은 합리적 동물이라기보다는 합리화하는 동물입니다.

사람의 생각이 별로 바뀌지 않습니다. 고집. 모순에 부딪힐 때 수정하지 않고 고집을 부립니다.

 

특히 종교전쟁은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반성적 성찰이 없습니다.

종교가 얼마나 차이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19세기까지 몇 세기에 걸쳐 전쟁을 벌였습니다.

 

동성애의 경우 서구에서도 조금밖에 인정되고 있지 않습니다. 유럽 4개국만 법적으로 허용됩니다. 나머지 국가도 동거권은 인정됩니다.

 

사상의 차이가 한국은 종교에 비해 심각합니다. 한국전쟁 당시 한반도 각지에서 학살이 일어났습니다.

유럽은 16세기에 일어난 일이 우리는 20세기에 벌어졌습니다. 반성적 성찰 필요합니다.

민주주의의 성숙 정도에 따라 과거 청산 정도도 결정됩니다.

한국은 반민족 세력의 힘이 강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것이 물신적인 관념입니다.

 

다른 이와 다르다는 것에 안도해야 하는데, 성찰이성에 눈 뜨지 못한 사람은 비교우위를 차지하고 만족하려 합니다.

한국 사회의 성숙도를 보는 것은 성적 소수자가 법적 지위를 획득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극단주의자는 뉴라이트이고 광신자이며 사익추구집단입니다.

 

소수의 힘에 힘입어 진실, 정의가  그나마 여기까지 왔습니다.

 

출신지가 천형(天刑)인데 천혜(天惠)가 되어야 합니다. 적극적 똘레랑스가 필요합니다.

호남 출신 아이가 전라도 사람이지?라는 질문의 다른 뉴앙스를 느끼면 우리는 문제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아직도 지역감정이 살아 있기에 일해공원 같은 괴물적 현상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가 아닙니다.

적극적 똘레랑스는 단호함입니다

엔똘레랑스에 대한 단호한 반대입니다.

아직까지 지역차별 등의 문제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유럽 같으면 진작 문제가 되었을 지적 인종주의 문제가 불거지지 않고 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 조는 바람에 좀 내용을 건너 뛰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내용의 강의가 이어진다고 하니 많은 분들이 함께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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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걸(09 09-26 10:09)
글씨가 겹쳐 보여서 내용 읽기가 좀 피곤하네요.

포인트 키우는데 한 가지만 더해서 줄 간격 좀 조절해 주시면 안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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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신(09 09-26 11:09)
포인트는 줄였습니다만,
줄 간격은 어떻게 조절하는지 모르겠네요.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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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상준(09 10-01 02:10)
아 좋은 정리였습니다. 정리의 달인이시네요... 안그래도 그날 참여 못해 아쉬웠는데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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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09 10-05 03:10)
저는 '복사'한 다음 '메모장'에 옮겨다 놓고 읽었답니다...^^ (궁여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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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더니(09 10-05 03:10)
줄 끄트머리에 잘려나간 한두 글자까지 볼 수 있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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